기온과 일조량, 수분 조건이 적당한 5월은 대부분의 식물과 곤충이 번식과 성장을 앞 다투는 '생명의 계절'이다. 생명이 움트고 숲이 깊어져 아름다웠던 5월도 이제는 끝자락. 그래서 더욱 눈부시다.
생물 이름에는 그 생물에 대한 ‘과학적 정보’뿐 아니라 ‘문화적 의미’까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름만으로도 생물의 삶을 상상할 수 있고, 그 생물과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이해할 수 있다. 특별히 메이(May)는 종의 발생 시기나 생태적 특성을 반영하는 접두어로 사용 되고 있다.
‘오월의 꽃’ 메이플라워(Mayflower)는 산사(山寺)의 고요함을 뜻할 것 같은 ‘산사나무’를 말한다. 하얗고 조밀하게 피어오른 꽃송이에서 퍼지는 향기는 짙고 깊다. 사람에게는 은은한 향수가 되고, 벌이나 나비에게는 꿀을 제공하는 고마운 나무다.
가을이면 붉은 열매로 새들을 먹여 살리기도 하고 인간 세상에 스며들어 술이 되기도 한다. 특별히 과실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름이 예뻐서 굳이 한 잔씩 마시곤 하는 전통주 ‘산사춘’은 산사나무의 붉은 열매로 제조한 술이다.
오월의 꽃 메이플라워도 있지만 ‘오월의 곤충’ 메이플라이(Mayfly)는 5월에 발생하는 하루살이를 일컫는다. 하루살이의 학명 에페메롭테라(Ephemeroptera)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ephemeros(하루밖에 살지 않는)와 pteron(날개)을 따왔다. 그 이름부터가 ‘하루밖에 살지 못할 것 같은 덧없음을 나타내는 곤충'이라는 뜻으로 육상 생활은 하루 이틀에서 길어야 일주일 정도로 매우 짧다.
하루살이는 하천이나 강바닥에 쌓인 식물 부스러기를 걸러서 먹는 1차 소비자이면서 물고기나 새의 먹이가 되는, 수서 생태계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주춧돌 종(Keystone species)이다. 생태적으로는 긍정적인 지표종이지만, 최근 몇 년 간 도시인들에게 골칫거리가 되었다. 도심 하천이나 강 주변의 인공 환경이 동양하루살이에게 최적의 서식과 번식조건을 만들어 대발생하면서 해충이 되었다.
계곡을 끼고 있는 연구소도 5월, 해 질 무렵부터 초저녁 사이에 수컷들이 집단으로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일제히 공중으로 솟구치는 장면을 매년 본다. 그러나 연구소 주변에서는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난리는 없다. 동양하루살이 발생 시기와 때를 맞춘 강력한 포식성 곤충인 잠자리가 물속 애벌레 시절부터 공중에서 하루살이를 사냥하는 발생 시기까지 생애주기를 동기화했기 때문이다. 가시측범잠자리나 왕잠자리 종류가 동양하루살이를 보는 족족 잡아먹으니 대 발생할 틈이 없다.
유튜브 동양하루살이 짝짓기 비상
조용히 숨죽여 없는 듯 살면 미움을 덜 받을 텐 데 왜 극성스럽게 몰려다니며 혐오 곤충이 되었을까? 하루살이들이 떼 지어 비상하는 까닭은 동시 우화(Synchronous Emergence)로 천적들이 먹다가 지치게 하는 포화 전략(Predator Satiation)이다. 즉 수천에서 수십만 마리가 동시에 날아올라, 일부가 잡혀 먹히더라도 종을 보존하는 생존 전략이다. 동양하루살이의 생존 전략은 계속될 것이고 그나마 잠자리 같은 천적이 살 수 없는 환경이므로 발생 시기에 맞춰 빛으로 유인(Light trap)해 밀도를 조절하는 수밖에는 없다.
유튜브 물속에서 하늘로 잠자리의 변신
식물이나 곤충의 종 이름은 아니지만 오월을 대표하는 문화⦁생태적 이름은 "메이퀸(May Queen)". 계절의 여왕 또는 봄의 여신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상징으로 가장 뜨겁게 생명이 폭발하는 5월을 일컫는다.
5월에는 극적으로 변화하는 자연생태계의 모습을 잘 관찰할 수 있다. 특히 곤충은 종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껍질을 벗고, 모양을 바꾸며 ,날개를 달고 나오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짧게 머물다 사라지지만 식물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물에게 영향을 미치고 생물학적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가파른 변화의 선봉에 서서 생태계 전반을 뒤흔드는, 곤충은 자연이 보낸 진짜 메이퀸들이다.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말에 부화하여 애벌레로 6개월, 고치 속 번데기로 2주 간 약 190여 일을 살던 멸종위기종 I급 붉은점모시나비가 날개를 달고 나오고 있다. 약 일주일간의 짧은 생애를 살며 짝짓기 후에 100여 개의 알을 낳고, 알로 시작되는 다음 생을 시작할 것이다.
유튜브 바람불어 좋은 날
애벌레 먹이식물인 족두리풀도 충분하고 흡밀(吸蜜)할 진달래도 꽉 차 있는 좋은 서식지였는데 갑자기 종적을 감췄던 애호랑나비가 몇 년 만에 연구소에 다시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애지중지 키우던 애호랑나비가 마지막 애벌레 시절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 껍질을 벗고 번데기로 탈바꿈하여 내년 봄 다시 나비로 환생해 세대를 이어갈 것이다.
지난 5월 20일은 ‘세계 꿀벌의 날’이었다. 꿀벌은 보통 꿀벌속(―屬 Apis)에 속하는 양봉꿀벌 한 종(種)을 가리킨다. 양봉 산업의 핵심인 꿀벌 1종만 살리자는 ‘세계 꿀벌의 날’은 생물다양성 보전의 의미로 지정한 날이지만 사실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약 20,000종 야생 벌들의 중요성이 간과되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직 양봉꿀벌만이 세상의 중심이고 인류를 위해 이들만 존재한다면 괜찮다는 너무 편협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벌을 보호하는 것이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다양성 전체에 대한 잘못 된 접근이 얼마나 심각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다. 꿀벌과 야생벌은 먹이와 서식지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경쟁 상대다. 잘 짜여 진 생태계의 그물에 양봉꿀벌 한쪽 편만 들어주는 인간의 간섭으로 먹이도, 공간도 독차지하면 양봉꿀벌 이외의 종은 자연히 멸종의 길로 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 꿀벌의 날’, ‘생물다양성의 날’ ‘멸종위기종의 날’ ‘환경의 날’ ‘지구의 날’ 환경 관련 기념일들이 수두룩하다. 캠페인과 교육 프로그램으로 환경과 생물 종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배려를 유도하는 일은 그나마 다행이다. 환경 관련 기념일로 국민적 관심을 끌고 다음 행보로 진심으로 보전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실행해야 할 시점이다.
환경과 생물에 대한 관심이 실천적 보전운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구조 변화가 선결되어야 가능하다. 제도는 존재하나 실효성은 거의 없는 법과 규정을 손질하고 예산과 실행력이 부족해 현장에서는 효과 없는 정부 정책을 실행 가능하도록 수정해야 한다. 준비 된 시민이 있고, 책임 있는 전문 인력(생물학자, 복원전문가)이 있으니 이를 지원하고 활용할 행정, 기업이 각자의 자리를 책임 있게 점검하고 연결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태계를 퍼즐로 비유한다면, 각 생물 종은 퍼즐의 한 조각이다. ‘빠진 이’인 멸종위기종을 복원하고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모난 돌’ 같은 외래종은 숨을 죽여야 조각을 제대로 맞출 수 있다. 양봉꿀벌 같이 한 종에 대한 과도한 집중으로 다른 종들에 대해 무관심해지면 멸종을 부추기는 악수다. 스스로 견제와 균형을 맞추는 생물다양성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자연친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때마침 대선후보의 공약집에 멸종위기종을 증식⦁보전하기 위해 국제 수준의 생태계 및 생물다양성 보전 정책을 약속했다. 물론 정책을 이행하는 로드맵을 구축하고 협력하여 약속이 실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멸종위기종과 생물다양성에게 조금 체면이 섰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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