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어제 아침 기온이 영하 4도. 세월이 흘러 직장에서 은퇴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동아일보 선 배 40분이 필자의 연구소로 가을 소풍을 오신다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60대 후반부터 80대, 추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연령층이라 혹시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이 되었다. 연구소 들어오는 길이 좁아 대형 버스는 큰길가에 세워놓고 약 1.7km를 걸어야 하는데 오르막이라 무척 힘이 든다. 승용차 1대로는 수송이 어려워 서울에서 아들이 하루 휴가를 내고 승합차를 렌트해 준비하고 있었지만 추운 날이 마음에 걸렸다.
길이 넓어지면 날개가 퇴화되어 걸어 다니는 곤충에겐 바다 같은 큰 장애물이 생기는 일이고, 도로가 깔리면 길 건너던 개구리, 삵, 고라니 등 수많은 생물들이 로드 킬 당할까 비포장, 좁은 길을 고수했다.
몇 년 전 주민들 강요에 밀려 억지로 시멘트 포장은 했지만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라 많은 인원의 접근은 어렵다. 생태와 환경을 위한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생태계의 중요한 조각인 사람은 생각하지 못해 연구소를 방문하려는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차를 타지 못하신 분들은 산행을 했다. 산책하기 딱 좋은 거리, 딱 좋은 날씨라 아주 상쾌했다는 선배들의 위로를 받으니 홀가분해졌다. 산 속 연구소의 오후, 선후배 동료들이 다시 모여 긴 세월의 이야기로 꽃 피우다 생태를 마주한다. 세상의 무거운 이야기들을 주고받다가 멸종위기종 곤충을 만나자 세상 이야기가 다 시들해진 것 같았다.
“똥이 그렇게 좋을까? 매일 똥을 만지작만지작해서 경단을 만들어 힘들게 굴리고” “저 경단을 먹기도 하고 새끼들 키우는 집 만드는 거라며”
“근데 왜 굳이 더러운 똥이야?” 길가에 널렸던 소똥구리가 멸종되어 가고 있다니? 소똥구리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어릴 적 생각에 살짝 흥분하여 목소리가 올라가고 말 속도가 빨라진다. 소똥구리를 키우기 위해 10,000여 평 방목장을 조성해 소를 방목해 키운다는 필자를 보고 혀를 끌끌 찬다.
“둥글게 만든 똥덩어리를 몸을 뒤집힌 자세로 뒷발로 미는 놈 또 한 놈은 옆이나 뒤에서 균형을 잡고, 두 마리가 밀고 당기며 열심히 굴리는 데, 한참 동안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면 괜히 내가 용이 쓰이지”
“힘내라, 힘! 응원이 절로 나왔지“
”여름이면 작은 바구니와 대나무 뜰채를 들고 동네 친구들과 함께 저수지로 달려가 물고기를 잡았지. 뜰채를 살짝 들어 올렸을 때 철썩거리며 튀어 오른 물고기와 개구리 틈에서 눈을 반짝이며 시커먼 놈이 나를 째려봤는데“
무섭기도 하고 기껏 잡아놓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물고기보다 더 많았던 물장군을 재수 없다며 바구니를 뒤집어 물속으로 놔주면 스르륵 여유롭게 사라지던 그 많던 놈들이 이제 멸종위기종이라고?
이렇게 아름다운 붉은점모시나비가 우리 곁을 떠나? 영하 48도에도 끄떡 없이 3억 5천 만 년이나 잘 살다가 왜 이제 없어지는 거야? 궁금증이 폭발한다.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아토피도 치료할 수 있고, 치주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제압할 수 있다고? 벌레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네. “하찮게 여기던 벌레로부터 인간의 질병을 구제할 물질을 찾고 특허까지 받았다니 장하이 아주 수고했어” 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니 악전고투를 하며 버텨 온 30여 년 세월이 아깝지 않았다. 객관적 사실을 우선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다 보니 칭찬에 인색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선배들로부터 ‘잘했다’ ‘고생했다’는 격려는 천군만마!.
소똥구리와 물장군 그리고 나비 애벌레까지 멸종위기곤충에 대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자연과의 친밀감을 보이는 선배들을 뵈니 덩달아 좋았다. 완전 고립 된 깊은 산 속에서 존재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멸종위기종에 미쳐있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놀랐는데 생물 연구에 진심인 후배를 보니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응원을 해준다.
카톡으로 날아온 선배의 메시지.
‘만나서 반가웠소.
그간의 열정, 집념, 노력, 성취에 박수를 보냅니다.
金基萬. KIM keyman’
“옛날엔 말이야…” 장난감으로 갖고 놀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던 생명들. “이 친구들이… 이렇게 됐나.” 짧은 한 문장 속에 놀라움과 허탈함, 그리고 묵직한 그리움이 섞여 있었다. ‘우리가 알던 자연이 정말로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구나.’ 탄식이 들려온다.
한때는 손만 뻗으면 만날 수 있었던 존재들이, 이제 실험실의 몇 개체 혹은 박물관의 표본 속에 갇혀 멸종위기종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살아있는 연구 현장을 관찰하면서 직접 확인한 소똥구리의 경단 하나가, 과학 논문보다, 환경 보고서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멸종위기종에 대한 감정들이 전달돼서 좋았다.
이야기들이 쌓였다. 우리가 했던 모든 대화의 주인공은 소똥구리였고, 물장군이었고, 나비였다. 누군가는 동네 저수지에서 만난 물장군 이야기를 꺼냈고, 또 다른 이는 산 속에서 힘겹게 뒷걸음치며 경단을 밀어 올리던 소똥구리를 떠올렸다.
다 좋았다. 따뜻한 날도 오랜만에 만난 건강한 선배들도.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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