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에서는 이미 끝난 봄꽃이 강원도 산속 연구소에서는 한창이다. 연분홍 철쭉과 분꽃나무, 미나리냉이와 지천으로 깔려있는 덩굴꽃마리의 하얀색 꽃과 졸졸 흐르는 개울이 어울려 천상화원이다. 정신없이 바쁜 중에 잠시 꽃 보는 망중한이 좋았는데 며칠 전 내린 짓궂은 봄비에 꽃이 다 떨어졌다. 잠간 꿈같은 봄날이 간다.

꽃이 피고 싹이 나오니 식물의 꿀과 잎을 먹는 나비들도 동기화를 한다. 따뜻하고 바람 좋은 날을 선택한 산호랑나비, 호랑나비, 꼬리명주나비와 사향제비나비가 7개월간 월동하던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다느라 바쁘다. 자연의 그물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곤충과 식물이 순서를 정해 궁합을 맞추며 잘 진행하고 있다.

산호랑나비 우화

수온이 오르자 물속에서도 난리다. 때마침 생태교육을 받고 있던 준우네 가족과 함께 멸종위기종 물장군 야외 실험실에서 월동하던 왕잠자리 수 십 마리가 수초에 몸을 기대어 껍질을 찢고 나오는 진풍경을 관찰했다. 곤충학자가 꿈인 준우는 물론이고 엄마, 아빠도 신비로운 자연현상을 목격하며 연신 탄성을 지른다. 사실 30여 년을 곤충과 함께 살고 있는 곤충학자인 필자도 전 과정을 관찰, 촬영한 일은 처음이라 1시간여 계속되는 왕잠자리의 우화과정을 보며 모두가 황홀경에 빠졌다.

준우네 가족과 탐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왕잠자리 변신

땅속 생태계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온도가 오르고 봄비가 땅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고 흙이 부드러워지면 그 속에서 월동하던 멸종위기곤충인 소똥구리와 애기뿔소똥구리가 곧 깨어날 시간이다. 똥에서 번식하는 파리 애벌레인 구더기를 죽이고 먹이를 정량화 하기 위해 영하 40도로 냉동 보관하던 소똥으로 식사를 제공하며 겨울잠을 깨운다.

소똥구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애기뿔소똥구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영하 40도로 냉동 보관 중인 소똥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소똥구리’라는 이름은 소똥을 먹기 때문에 붙여진 ‘소똥’과 굴린다는 뜻의‘구리’가 합성된 단어로 이름만으로도 그들의 생리와 생태를 이해할 수 있는 곤충이다. 곤충도 인간과 같은 동물이므로 풀도 먹고 고기도 먹고 풀과 고기를 형편 되는대로 잡식으로 먹는 놈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이상한 식성은 다른 동물의 똥을 먹는 분식성(粉食性) 곤충이다. 왜 하필 다른 동물이 먹고 버린 찌꺼기인 똥을 먹으려 할까?

소똥구리 연구는 더럽고 냄새나는 ‘똥’을 주무를 수밖에 없고 실험 과정 중에 쇠파리와 소등에, 모기에 뜯기는 일은 다반사다. ‘똥’이라는 힘들고 특별한 소재를 대상으로 하는 극한 직업으로 세계적으로도 전문학자가 희소한 까닭이다.

한우의 고장인 횡성에 연구소가 소재하여 자연스럽게 소똥구리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리고 한우 브랜드와 멸종위기종을 연계하면 생물다양성 보전도 하고 지역경제도 활성화시킬 수 있어 소똥구리에 대한 우호적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소똥구리 증식을 2005년부터 시작했다.

사료로 키우는 소똥은 불량식품이라 멸종할 수밖에 없어 건강한 똥을 구하기 위해 20년 째 소를 키우고 있다. 6,500만 년 동안 지구를 청소하는 경이롭고 훌륭한 곤충들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가슴 아파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막상 시작해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5천여 평의 방목지를 관리하며 오직 풀만 먹이면서 소 2마리 키우는 일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라 ‘내가 먼저 멸종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소똥구리가 눈에 아른거려 접을 수도 없다.

자식의 먹거리인 볼 하나를 만들기 위해 똥 더미를 50번 이상 오르락내리락하는 암컷 소똥구리의 지극정성을 보면 감동 그 자체다. 소똥을 동그랗게 말아 볼을 만들고, 멀리 굴려갈 때 볼을 빼앗으려는 다른 수컷과 난투를 벌이며 치열한 쟁탈전을 지켜보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반복적이고 강도 높은 육체적 노동으로 지치지만 생명을 살리고 있다는 자부심에 재미와 감동을 더해 이제껏 지탱해 왔지만 그래도 너무 힘이 들어가는 일이다.

식성도 독특하고 행동이 신기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생태적 역할은 더욱 크다. 아무데나 싸는 야생동물의 똥을 냄새로 찾아다니며 먹어치워 냄새를 없애고 똥을 멀리 굴려가거나 땅 밑에 묻는 과정을 통해 자연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돕는다. 똥을 지하로 끌고 들어가면서 공기를 통하게 하며 똥 속에 있던 식물의 씨앗을 뿌리고 널리 퍼뜨려 토양침식과 홍수를 막는다.

야생동물의 똥에 가장 먼저 달려오는 파리 종류는 알 대신에 애벌레를 낳으므로 성장 속도가 빨라 소똥구리의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각 종 질병을 매개하는 해충 중에 해충으로 인간에게 큰 피해를 끼친다. 소똥구리 배 쪽 가슴과 다리 연결 부위에 응애(편승 응애)를 태우고 다니면서 파리 애벌레인 구더기를 잡아먹게 하여 파리 발생을 막고 자신의 먹이를 확보한다. 결과적으로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질병 매개 충인 파리를 없애주니 인간의 건강까지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뿔소똥구리와 편승 응애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완벽한 천연의 살균 소독제며, 정화 처리 생물인 소똥구리가 멸종되고 있다. 소똥구리는 같은 무게의 황금만큼 가치가 있다는데 우리나라의 소똥구리, 왕소똥구리는 이미 멸종 돠었다. 멸종위기종 Ⅱ급으로 지정 된 애기뿔소똥구리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있고 개체 수가 현격히 떨어져 바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보호해야 할 뿔소똥구리는 방치하고 있다.

몽고에서 들여 온 소똥구리를 2년 째 증식⦁실험 중이고 멸종위기종 Ⅱ급 애기뿔소똥구리, 장차 멸종 될 뿔소똥구리를 연구소에서 증식 중이지만 증식된 개체조차도 마음 편하게 방사할 곳이 없으니 과연 언제까지 살릴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뿔소똥구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뿔소똥구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우리가 자연이다!” “우리가 생명이다!” “우리가 멸종위기종이다!”

전국 224개 환경·시민단체가 결성한 멸종위기종대선정책연대는 멸종위기종 보호와 생물다양성 보전을 6월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의제로 끌어올리기 위해 연대를 구성하고 지난 9일 출범식을 열었다. 멸종위기종을 정책 의제화하여 구체적 제안을 하자는 멸종위기종대선정책연대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출범식에 참석했다 .

멸종위기종대선정책연대 출범식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종대선정책연대 출범식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 위기종 증식과 보전을 20여 년 간 하면서 “내일이면 다 사라질지 모릅니다” “보호가 필요합니다.”“지금 아니면 늦다.”를 입에 달고 다니지만 행정편의의 벽에 부딪히고, 개발 논리에 가려지고, 정치, 경제의 우선순위 뒤로 밀려나면서 수 없이 많은 좌절을 했고 거의 포기할 지경에 다다랐다.

멸종위기종 피켓을 들고 광화문거리를 행진하면서 문득 생각이 많다. 멸종위기종을 지키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고 세상의 질서를 인정하고, 생명의 권리를 존중하자는 뜻인데 왜? 무엇 때문에? 누굴 위해서?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출범식에 참석하여 수많은 활동가들, 생태학자들, 시민들을 만나 뜨거운 에너지를 받았다.

오랫만에 만난 전재경 박사와 함께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오랫만에 만난 전재경 박사와 함께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종 모형을 쓰고 있는 김지현 자연의 벗 팀장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종 모형을 쓰고 있는 김지현 자연의 벗 팀장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종대선정책연대가 제안하는 3대 분야 20개 과제는 단순한 보전 정책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전환적 사고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실행 로드맵으로 대선 후보들은 이 제안을 단순한 공약이 아니라, 국가생존전략으로 인식하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논의가 수렴된 정책제안서를 비전으로 수용해야 한다.

소똥구리 에피소드!

국립생물자원관 개관식 때 노무현 대통령 연설문 작성 멤버로 참여했다. 생물자원은 바로 곁에 무심히 지나치는 것부터 챙겨야 하고 점점 사라져가는 소똥구리와 소똥구리에 내재한 천연활성 물질을 예로 들며 연설문에 넣자고 강변했는데 결국 ‘똥’이라는 단어가 너무 혐오스럽다 라는 이유로 퇴자를 맞았다. 아마도 ‘그 때부터 소똥구리가 멸종의 길로 가지 않았나’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해본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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