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늦가을 텅 빈 것 같은 허무함과 다소 을씨년스러운 공간에 또 다른 생명들이 빈자리를 찾아와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겨울의 귀한 손님 겨울철새.

찬바람 불어 가을인가 싶어 하늘을 보면 수백 마리씩 대열을 맞춰 이동하고 있는 기러기 떼를 만난다.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물결치듯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날던 가창오리와 두루미와 고니가 생각나 천수만으로 주남저수지로 달려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였다.

도감에서만 보던 놈들을 새롭게 만나거나 쌍안경을 통해 보는 새들의 화려한 깃털과 비상을 직접 보는 탐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멋진 경험이라 늘 흥분이 됐다. 철새도 철새지만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강가로, 바닷가로 자연과 교감하는 여행을 할 수 있으니 또 기대할만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동아일보의 생태 환경 프로그램인 ‘전국 자연생태계 학습탐사’의 단장으로 7년 간 행사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제작했다. 여름⦁겨울방학을 이용하여 매번 공부할 주제를 선정하고, 교육부에서 선발 된 15명의 생물교사를 심도 있게 가르치기 위해 조류는 경희대 원병오 교수, 식물은 서울대 이창복 교수를 모셨다. 현장에서 일선 교사들을 지도하시는 일 이외에 생물 지식이 일천한 나를 위해 기꺼이 특별 과외를 시켜주셨고, 특별한 애정으로 생물학적 지식의 세례를 흠뻑 주신 은사님들이셨다.

이웃에 살던 원병오 교수님과는 각별해 수시로 들락거리며 가르침을 많이 받았고 일본 이즈미, 러시아 극동의 마가단까지 탐조 여행을 동행했다. 철새로 맺어진 원병오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잘 다니던 동아일보를 그만두고 고단한 생물학자의 길로 나섰다. 아직 열정이 식질 않았으니 운명이 아니었나 싶다.

고 원병오 교수님과 일본 이즈미에서.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고 원병오 교수님과 일본 이즈미에서.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지난 주 수요일, 첫 눈이 내렸다. 눈 치울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첫 눈이고 아직 동심은 살아있어 반가웠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니 눈 폭탄! 보통 이른봄에 내리는 물기 많은 눈은 일상이어서 그 때쯤에는 실험실에서 장대를 들고 밤 새워 눈을 털어내며 겨우 버텨왔는데 이번은 관측 이래 11월 최대 폭설이라니 전혀 예측을 못했다. 무릎 위 까지 덮인 눈으로 걷지 못할 정도였으니 젖은 눈의 무게가 얼마나 됐을까? 지붕에 쌓인 눈을 버티지 못하고 멸종위기종 실험실이 폭삭했고 소똥구리 축사의 천장이 뚫렸다.

 

길 옆 나무 수 십 그루가 찢어지고, 쓰러졌고 전신주가 뽑히면서 전선이 끊겼다. 전기가 나가고 덩달아 지하수 펌프도 작동이 되질 않아 물도 끊긴 채 꼼짝 못하고 2박 3일을 산속에서 보냈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실험실 천장의 젖은 눈을 장대로 밀어내고 통행로를 내느라 정신없이 보내면서도 토요일 ‘독수리 식당’ 오픈 행사에 참석 못할까 큰 걱정을 했다. 한전으로부터 큰 나무는 치웠다는 소식을 듣고 교행이 어려운 비좁은 산길에 쓰러진 나무 가지를 치우고 모래를 뿌리며 겨우겨우 길을 만들어 파주 행!

4시간 여 열심히 달려간 경기도 파주 장산 전망대 들판은 세계적으로도 몇 천 마리밖에 남지 않은 독수리로 가득 차 있었다. 장단반도는 겨울 철새의 이동 경로이기도 하지만, 민간인의 접근이 제한되는 민통선이라서 독수리가 방해받지 않고 월동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논바닥에 앉아있던 300여 마리의 독수리 떼가 먹이를 주자 사람에게 다가온다. 거리낌 없이 사람을 대하고 대포 같은 망원 렌즈를 달고 펜스 앞에 길게 서있는 카메라에도 방해받지는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며 일체화 된 식구 같은 느낌이다. 독수리식당엔 독수리도 손님이지만 까치도 까마귀도 흰꼬리수리도 손님이다.

흰꼬리수리(사진 임진강생태보존회 노황호 제공)/뉴스펭귄
흰꼬리수리(사진 임진강생태보존회 노황호 제공)/뉴스펭귄

독수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준 위협(NT, Near Threatened)' 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썩은 시체를 먹는 독수리의 위산은 사체에 있는 거의 모든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무력화 시킬 정도로 산성도가 높다. 독수리의 먹이 활동은 방치된 사체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인 브루셀라, 결핵, 탄저균 등의 확산을 억제할 수 있다. 독수리 개체 수 급감은 생태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 환경과 경제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썩은 고기를 먹고 자연을 정화시켜 다른 생명체가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독수리를 꼭 지켜야 할 이유다.

눈밭에서 먹이 먹는 독수리(사진 임진강생태보존회 노황호 제공)/뉴스펭귄
눈밭에서 먹이 먹는 독수리(사진 임진강생태보존회 노황호 제공)/뉴스펭귄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내는 독수리는 사냥하는 종류(Eagle)가 아닌 동물 사체를 먹는 부식성 조류(Vulture)로 새 중에서 몸집이 가장 크다. 시체는 쉽게 만날 수 있는 먹이 감이 아니어서 먹잇감을 만나면 최대한 배를 채워서, 다음 먹잇감을 얻을 때까지 몸 안에 비축된 지방으로 견뎌야하기 때문에 몸집이 커야 한다. 또한 먹이를 멀리서 찾아야 하므로 시력도 좋아야하고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면서 오랜 시간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독수리(사진 임진강생태보존회 노황호 제공)
독수리(사진 임진강생태보존회 노황호 제공)

거대한 몸집과 뛰어난 시력 그리고 상승기류를 이용할 수 있는 비행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독수리는 왜 멸종위기에 처했을까?

독수리의 비상(사진 임진강생태보존회 노황호 제공)/뉴스펭귄
독수리의 비상(사진 임진강생태보존회 노황호 제공)/뉴스펭귄

독수리의 특화된 전략에도 불구하고 먹이를 구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졌다. 서식지 파괴로 주요 먹이원인 야생의 사슴이나 영양 같은 유제류가 감소하였고 농약으로 폐사한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다가 2차 농약중독에 걸려 위험성이 높아졌다. 굶어 죽거나 오염된 먹이를 먹음으로써 독수리가 급감하여 멸종의 길로 들어섰다.

기후변화도 원인이다. 독수리는 기온이 높고 습도는 비교적 낮은 지역에서 주로 서식한다. 높은 온도가 상승 기류를 생성해 독수리가 적은 에너지로 멀리 비행할 수 있도록 돕지만, 습도가 높아지면 상승 기류를 약화시켜 비행과 먹이 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온도와 강수량 습도 패턴이 변하면서 독수리 서식지가 더욱 줄어들어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몽골에서 3000km를 날아 우리나라로 오는 독수리 대부분이 아직 번식할 수 없는 미성숙 개체들이다. 안전하고 오염되지 않은 먹이를 제공하는 일이 멸종에 처한 독수리를 살리는 중요한 일이 됐다.

9년 전부터 몽골에서 날아오는 독수리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임진강생태보존회. ‘굶주린 아이들에게 한 끼 밥을 주는’ 심정으로 밥상을 차린다며 무심히 이야기하는 회원들에게서 독수리를 통해 실천하고 있는 ‘멸종위기종 보전’의 따뜻한 마음을 느낀다.

임진강생태보존회 회원들.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임진강생태보존회 회원들.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그러나 환경부의 멸종위기종 보전과 생물다양성 관리나 정책은 한참 미달이다. 멸종위기종과 생물다양성 보전책임을 이행하는 것이 환경부의 첫 번째 의무이지만 제대로 못할 거면 민간에서 하고 있는 보전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 벼랑에 서 있는 멸종위기종을 어떻게 보전할지, 생물다양성을 어떻게 확보할 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현실적 최선을 찾아야 하는데 행사와 숫자 놀음만 하고 있다. 멸종위기종 보전의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민간단체에게 언제까지 자발적인 봉사를 칭찬만 하며 방치할 것인가!

서울 목동 영도초등학교 5학년 고은호 학생. 맹금류를 좋아하다가 독수리 먹이주기에 동참했고 이제는 가장 바쁜 파수꾼이 되었다. 멸종위기종 독수리 잘 보살펴서 건강하게 다시 몽골로 보내겠다는 은호가 기특하고, 든든하다. 

고은호 학생과 기념 촬영.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고은호 학생과 기념 촬영.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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