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올 겨울 유난히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11월 기습적으로 내린 물기 가득한 눈으로 실험실 여러 곳이 무너졌고 남아있는 몇 군데 실험실을 지키려 온종일 눈을 털어내고 온풍기를 틀었지만 소용없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과 거의 한달 이상 영하 20도 내외의 추위로 눈이 꽁꽁 얼어 하우스를 내리 누르니 배겨낼 재주가 있나? 촘촘히 기둥을 만들어 20년 간 잘 버텨주었던 실험실이 결국 다 무너졌다. 우수(雨水) 절기에 맞춰 비가 내리면 그 동안 쌓였던 눈도 녹고 추위도 조금 누그러질 텐데 계절을 거꾸로 가려는지 한파경보가 발효되고 다시 추워졌다.

유튜브: 기진맥진 눈 털기 제설의 진화

 

눈 덮인 연구소 전경(2025년 2월20일)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눈 덮인 연구소 전경(2025년 2월20일)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제주의 봄은 이미 문턱을 넘었다. 아직 코끝은 시리지만 바람은 온화하고 땅은 부드럽다. 제주로 출발하던 지난 주 13일, 산골짜기 연구소 아침 온도가 영하 15도였는데 1시간 비행기 타고 제주에 도착하니 영상 7도. 온통 잿빛의 이 참담한 시절을 보내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는데 잠시나마 화려한 색상에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꽃과 푸릇푸릇한 잎을 보며 행복한 봄을 서귀포에서 만났다.

2월 13~14일 이틀에 걸쳐 제주 여미지식물원과 한라수목원에서 ‘서식지외보전기관 방문의 날’이 열렸다. 전국의 ‘서식지외보전기관’들이 일 년에 3~4차례 만나 멸종위기종 증식이나 복원 사례를 발표하고 기관 간 정보를 공유, 교류하며 방문 기관을 견학하는 행사다. 땀과 먼지로 얼굴이 얼룩진 채 끊임없이 공부하며, 멸종위기종을 자기 분신처럼 대하는 동지들의 모임이라 만날 때마다 늘 애틋하다.

서식지외보전기관 ‘기관 방문의 날 기념 촬영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서식지외보전기관 ‘기관 방문의 날 기념 촬영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개회사하는 필자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개회사하는 필자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서식지외보전기관? 이름도 특이하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거듭 읽으며 뜻을 새겨야 겨우 알 수 있다. 서식지(사는 곳) 외(밖)에서 보전하는 기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단어가 생소하고 어려우니 일반 대중에게는 당연히 익숙하지 않지만 심지어 환경부의 담당 공무원조차 ‘서식지외보전기관’이란 단어의 뜻도 정확히 모르고 한 번에 또박또박 발음하지 못한다.

멸종위기식물 비자란 (사진 한라수목원)/뉴스펭귄
멸종위기식물 비자란 (사진 한라수목원)/뉴스펭귄
멸종위기식물 암매 (사진 한라수목원)
멸종위기식물 암매 (사진 한라수목원)
멸종위기식물 콩짜개란 (사진 한라수목원)
멸종위기식물 콩짜개란 (사진 한라수목원)
멸종위기식물 한라솜다리 (사진 한라수목원)
멸종위기식물 한라솜다리 (사진 한라수목원)
멸종위기식물 대흥란 (사진 강희혁)
멸종위기식물 대흥란 (사진 강희혁)

서식지외보전기관이란 생경한 단어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개념을 담은 용어로 명칭을 대체하자고 환경부 담당 공무원에게 여러 번 지적해도 그냥 무관심. ‘멸종위기종 보전 기관‘ 하면 단박에 알 수 있고, 이렇게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너무 단순한 의제인데 왜 이제껏 고쳐지질 않을까?

멸종위기종은 물이나 공기, 환경오염, 미세먼지 등 국민들이 체감하는 것보다 감도가 떨어진다나!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인지. 위에서 결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참 어이없다. 보존해야 할 소중한 미래의 자산이며,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국가유산인 멸종위기종이나 생물다양성을 소홀히 대하는 환경부 시각이다.

서식지외보전기관은 자연 서식지에서 보호가 어려운 멸종위기종들을 서식지 밖에서 체계적으로 증식·관리하고, 필요시 증식된 개체를 자연으로 방사하여 서식지의 생태계를 복원하는 연구 기관이다. 단순한 생물 보호시설이 아니라 미래 생태계 회복과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기관으로 생물다양성 보전과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인 씨드 뱅크(Seed bank)역할을 하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발음도 어렵고 이해도 안가는 단어 때문에 내용이나 가치를 잘 모르고 있다.

멸종위기종은 무엇이고 왜 이토록 지키려 애를 쓸까?

생태적 약자인 멸종위기종은 사람으로 치면 암환자처럼 위험한 질병을 앓고있는 중환자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서 자격 있는 전문 의사나 간호사의 보호아래 진료와 수술을 받아야하며 끊임없이 약을 복용해야 한다.치료뿐만 아니라 식사, 배변, 이동 등 일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간병인도 필요하다.

가만히 있으면 더 빨리 죽고, 위기에 적극 대처해도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멸종위기종을 속절없이 보낼 수는 없다. 생태계 유지, 경제적 가치, 과학적 연구, 문화·예술적 가치는 물론 윤리적 책임까지 고려하면, 멸종위기종 보전은 "자연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굳이 가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병약하고 장애가 있는 사회적 약자에 갖는 배려에 이유는 없다. 멸종위기종을 걱정하고 살리려는 긍휼지심이 다르지 않으니 인간과 함께 다른 생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생태문명’의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분·초를 다투며 수많은 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서 멸종위기 생물들을 보전하기 위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천녹색연합에서 “굶주리고 있는 백령도 야생 황새 먹이비용 마련을 위한 긴급 후원”을 요청하고, WWF(세계자연기금)Korea에서는 ‘하루 500원, 동전 하나로 호랑이를 살리는 첫 걸음’이라는 구호로 호랑이와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눈표범’과 북극의 ‘북극곰’ 까지 지역이나 종을 구별하지 않고 멸종위기종 보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북극곰 살리기 캠페인 (사진 이강운 대기자, WWF Korea SNS)
북극곰 살리기 캠페인 (사진 이강운 대기자, WWF Korea SNS)

생물자원은 영토와 마찬가지로 생물 주권 확보의 핵심적인 성장 동력이라는사실 때문에 전 세계가 전력투구하여 수행하고 있는 분야다. 생물자원의 핵심인 멸종위기종 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총 764억 원을 투입하여 최근인 2018년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라는 조직을 개원했다. 약 1000억 원에 달하는 비용만 낭비한 블랙 코미디 같은 포항 석유에 비하면 그나마 잘 한 일이다. 국가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멸종위기종 보전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갖고 있다. 우리 국민 88%가 “돈이 들어도 멸종위기종 보호하겠다며 개인적으로라도 돈을 지불하겠다”는 멸종위기종 보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 사람의 욕심으로 남아나는 게 없을 것 같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생물종들이 멸종 될까?를 걱정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작은 실천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연구소를 찾은 교육생들에게 소똥구리가 멸종되었다 설명하면 얼마 전까지 장난감으로 갖고 놀았는데 언제 없어졌냐며 깜짝 놀란다. ‘조금 있으면 참새나 까치도 멸종위기종이 되겠네요’ 라며 진심어린 관심을 표한다. 멸종위기종 보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멸종저항 운동이 본격화되는 것 같아 큰 힘이 된다.

멸종위기종 소똥구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
멸종위기종 소똥구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

UN 생물다양성협약(CBD)에서는 생물다양성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고 IUCN(국제자연보전연맹)에서는 멸종위기종의 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국가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멸종위기종을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자연환경보전법에는 생물다양성을 국가유산으로 관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생물다양성 보호는 단순한 생물종을 넘어 보존해야 할 국가와 인류의 자연유산으로 인식하는 까닭이다.

멸종위기종 보전은 오랜 시간과 막대한 예산, 그리고 분야별 전문가가 투입되어야하기 때문에 국가가 주도해야 하는 공익적인 산업이다. 그러나 구체적 실천 계획 없이 멸종위기종을 지키겠다는 다짐은 관념론으로 흐르기 쉽다. 반드시 ‘실천’이 전제된 로드맵이 있어야 하는바, 전문성-예산-지속성이 한 몸을 이룰 때 비로소 성과가 나올 수 있다.

2025년 현재 29개 기관이 멸종위기종 36%에 이르는 종을 보호하며 연구 및 복원의 큰 축을 맡고 있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을 활용하면 멸종위기종 보전의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있다. 생물을 다루는 생물학은 시간의 학문이라 오랜 기간 연구 수행해야지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분야다. 인공지능으로 생물 관리를 대체할 수도 없다. 생물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정해진 일정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이들을 빈틈없이 관리하고 증식, 복원할 수 있는 전문가와 25년 간 축적되어온 노하우와 멸종위기종을 자기의 분신처럼 아끼는 열정으로 무장한 서식지외보전기관은 멸종위기종 증식, 복원 사업을 실제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기관이다.

전문성과 지속성은 증명이 되었으므로 예산만 해결하면 된다. 멸종위기종 보전은 국가가 선도적으로 관리 주도해야 하는 가치재로 온전히 공익적인 가치만을 생각해야 한다. 최선이 아닌 사력을 다해야만 겨우 유지할 수 있는 멸종위기종의 증식과 보전만도 숨이 찬데 환경부는 재정까지 책임지며 봉사를 해달라 강요하고 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서식지외보전기관에 대한 국고보조금의 비율을 국고보조금 50%, 자부담 50%로 제한하고 있다. 이런 법적 체계로는 멸종위기종 보전에 전력을 다 할 수가 없다.

잘못된 구조인줄 알면서 흐지부지 이제껏 고착화된 당연한 현실적 처방이라며 법을 들먹이는데, 그걸로 원인을 제거할 수 없다. 서식지외보전기관 중 정부 출연 기관이나 지자체가 아닌 개인이나 법인의 경우 상업적 수익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멸종위기종을 증식 보전하면서 운영비를 50% 지급하며 자기일 다 한 것처럼 주장하나 수익 모델이 전혀 없는 개인에게 50%를 감당하면서 멸종위기종 살려내라니 세계 어디에도 없는 비상식적인 시스템이다.

누구의 아버지나 엄마이고 미래세대의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될 것임을 생각하며 공무원의 한계를 탓할게 아니라 갖고 있는 최대한의 권리를 활용하여 멸종위기종과 미래를 지켜야 할 것 아닌가! 내가 소극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내일 지구가 더 더워지고, 더 많은 생물을 죽일 수 있다 생각하면 방법이 없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름만 바꿔도 법률을 조금만 수정해도 될 일이다

환자의 집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비로소 고통의 원인을 이해하고, 거기에서부터 치료와 처방이 비롯된다는 왕진의사 양창모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옹색한 살림, 턱이 높은 문지방, 난방이 잘 안 되는 방, 종일 쪼그리고 앉아하는 밭일, 가족이 있으나 멀리 있거나 같이 늙어가는 판이라 도대체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 약 복용 방법을 알려드렸지만, 한글을 몰라서 제때 챙겨 드시지 못하는 어르신... 진료 한번 받으려면 반나절 걸려서 굽이굽이 버스를 타야하는 오지의 삶’ 직접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환자들의 안팎을 꼼꼼히 챙겨보면서 환자를 온전히 치료한다는 양창모 선생. 산골 왕진은 1년에 2000여회에 달한다고 한다.

한번 내려와 봐라. 가까이서 보라. 제발 책상 앞에 앉아있지만 말고.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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