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엊그제 천리포수목원의 수목원 전문가 과정 서른세 명 학생들이 서식지외보전기관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방문했다. 멸종위기종 증식, 보전 현장 학습인데 하필 장대 같은 세찬 비가 쏟아지고 갑자기 뚝 떨어진 쌀쌀한 기온 때문에 학생들이 불편해할까 걱정을 했다.

게다가 연구소 진입로가 좁아 버스가 통행하지 못해 1.5km의 산길을 승용차에 5명씩 꽉 끼여 짐짝처럼 실려서 이동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까? 이래저래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멸종위기종 실험실에 들어서자마자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호기심을 드러내는 학생들의 관심과 활기찬 반응에 큰 걱정을 덜었다.

자기만한 몸집을 가진 무당거미를 보자 폴짝 날아와 한입에 꿀꺽 삼키는 금개구리 사냥 장면을 귀엽다며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다. 전 세계에서 한반도에만 서식하는 금빛 찬란한 한국 고유종이 왜 멸종위기종으로 내몰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지 안타까워한다.

*유튜브: 거미 잡아먹는 갓 개구리

앞다리 갈고리로 먹이를 꽉 움켜잡고 길고 뾰족한 주둥이를 물고기 몸에 찔러 체액을 쪽쪽 빨아 먹는 물장군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물고기는 물론 자신보다 훨씬 큰 황소개구리나 물뱀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먹성과 짝짓기 후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동종포식의 잔인함에 또 놀란다. 그런데 이렇게 강한 놈이 왜 멸종위기종인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한다.

*유튜브: 황소처럼 큰 황소개구리를 물장군이 먹고 있어요

땡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는 날에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열흘 내내 알을 품고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는 물장군 수컷의 부성애는 잔인함과 어울리지 않는 착한 본성인데. 어째 잘 연상되지 않는 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

알을 품고 보호하는 물장군 부성애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알을 품고 보호하는 물장군 부성애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먹고 나온 찌꺼기인 똥을 먹는 소똥구리란 곤충을 처음 보고 더럽고 지저분한 동물의 똥을 왜 먹지? 라며 그들의 생활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똥을 굴리고, 똥을 땅 속으로 끌고 들어가 동물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소똥구리가 똥으로 뒤덮일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랑스럽다 한다. 천리포수목원 근처에 있는 태안 신두리 사구의 소똥구리 복원 현장도 관심 있게 관찰해 보겠다고 다짐을 하니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초식동물인 소나 말이 풀이 아닌 사료를 먹고 각종 살충제에 오염되면서 신선한 똥을 더 이상 구할 수 없어 소똥구리가 멸종의 길로 들어섰다. 건강한 소똥을 먹이로 주기 위해 소를 키우는 고단함을 이해하고 ‘고생하신다’고 격려해주는 학생들의 따뜻한 휴매니티를 느꼈다. 분류군이 다르다고 해서 생명을 사랑하고 기르는 일이 다른 것은 아니어서 아마도 멸종위기 식물을 보전하며 그들과 부대끼며 몸으로 느꼈던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멸종위기종 I급에 세계적으로도 보호를 받는 워낙 귀하신 몸이라 한 개체씩 관리해야 하는 붉은점모시나비. 나뭇잎에 한 알, 한 알 점점이 붙여놓은 붉은점모시나비 알을 보고 치밀한 개체 관리라며 칭찬을 해주는데 내심 싫지 않다. 알속에 몸을 웅크린 채 부화를 준비하며 180여일을 지내고 있는 애벌레가 얼마나 답답할까? 인간적인 걱정을 하다가 한겨울에 부화하여 영하 48도까지 견디는 내 동결 물질을 지니고 발육한다는 사실에 너무 신기해한다. 굳이 아무도 택하지 않는 추운 겨울에 성장하는 까닭은 뭘까? 궁금해 죽겠다는 호기심 어린 표정이 귀엽다.

나뭇잎에 붙인 붉은점모시나비 알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
나뭇잎에 붙인 붉은점모시나비 알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

붉은점모시나비의 특별한 저온성 생리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치주염이나 아토피 피부염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으로 사용 가능한 물질을 찾아 논문을 발표하고 특허까지 받았다는 사실에 환호한다. 전혀 접하지 못했던 멸종위기 곤충이나 과학적 사실을 접하며 ‘왜 멸종위기종을 귀하게 여기고 지켜야 하는지 이유를 알겠다’ 한다. 사사롭게 오가는 대화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좋은 기회였다.

곤충은 대중적 인기가 있는 생물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갖가지 모양과 현란한 색채를 지닌 곤충들을 관찰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멸종위기종 생물들의 생태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물들과 수다를 떨다가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벌레가 정말 그렇게 훌륭한지, 생물다양성이 그렇게 중요한지? 멸종위기종을 정면으로 응시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까지 쉬어갈 틈이 없다.

곤충 생물다양성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곤충 생물다양성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까닭도 모르고 스멀스멀 사라져가는 저 생명들을 어찌할 지? 어떻게 하면 멸종위기생물의 아픔을 느끼면서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체감할 수 있을지? 어쩌면 그들을 이해하고 되살리려 노력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혹시 방법이 틀렸거나 오해해서 오히려 이들의 멸종 속도를 더하는 게 아닌가?

과학자로서 성취감도 있고 30여 년 간 멸종위기생물을 보전해 보겠다고 온 힘을 다했지만 무한 반복에 그치는 단조로운 일상에 힘이 빠지고, 지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 이럴 때 멸종위기종 보전의 어려운 길을 가겠다고 공부하러 온 학생들의 기운을 받아 어느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교육하다(Educate)는 이끌어낸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멸종위기종 증식과 보전에 관해 이미 기본적으로 준비가 되어있던 학생들이라 지식을 주입하기 보다는 현장 연구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스스로 올바른 접근 방법을 찾아내도록 도와주었다. 따스한 정서로 생명을 표현하는 학생들을 보며 자연을 이해하고 그들과 조화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는 장한 모습을 보았다.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지식을 나누고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는 소중한 기회였다.

생물 다양성교육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생물 다양성교육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단체 사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단체 사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연구와 교육이 별개가 아니며 연구보다 연구를 계속할 학생들의 과학적 사고를 꺼내주는 교육이 오히려 더 값진 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지칠 수 없고 지쳐서도 안 되는 일이 미래의 생명을 일구고 보장하는 교육이므로 더 이상 힘이 빠져서는 안 된다. 잠간의 만남이었지만 서른세 명 학생들이 스스로 생명에 대한 질문을 마음속으로 생각해보면서 창의성과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이들의 생각이 꺾이지 않고 계속 연구자나 전문가로 남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어야 한다. 멸종위기종 관련 일을 하는 인력이 멸종되어가는 요즘, 인적 투자만큼 중요한 요소가 없다. 지금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이 오직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하고 연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국가유산이고 사회적 가치재인 멸종위기종과 미래의 생물자원인 생물다양성을 지켜야하는 국가가 최소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멸종위기종의 고통을 깊이 받아들이며 자신의 길을 조용하고 성실하게 걸어가려는 학생들에게 공감하고 박수를 보낸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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