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인간이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라는 뜻으로 창조주가 만들었다는 ‘나비‘. 나비는 천덕꾸러기로 하대 받는 다른 벌레와는 달리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곤충이다. 또한 중국 철학자 장자의 꿈 이야기처럼 "내가 나비였던가? 나비가 나인가?"라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로 삶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나비는 누구?
나비는 나비목에 속하는 곤충으로, 나비목(Lepidoptera)은 날개 표면이 작은 비늘로 덮여 있는 곤충을 말하며 나비와 함께 나방도 여기에 속한다. 가루가 날리는 날개 비늘로 색과 무늬를 만들어 동족을 확인하여 짝을 짓고 보호색으로 위장하여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그리고 방수를 할 수 있는 기름 성분의 날개로 쏟아지는 비를 또르르 떨어뜨린다. 꽃이 피는 속씨식물이 나타나면서 나비목 곤충의 종 다양성을 크게 확장한 것으로 추정되며 식물과의 공진화, 시간대와 행동 특성의 변화를 통해 나비, 나방의 2그룹으로 나뉘었다(종 분화,Speciation).
각기 다른 시간대인 낮과 밤으로 활동 시간이 분리된 환경이 가장 극적인 종 분화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빛이 없는 어두운 밤이 주 활동 시간인 나방은 화학적 감각 기관인 더듬이를 최적화했다. 같은 종끼리 의사소통을 위해 분비하는 화학물질인 페로몬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깃털모양의 더듬이나 기다란 실 모양의 더듬이를 이용하여 짝을 찾고 먹이를 추적한다. 낮에 활동하는 나비는 만지고 부딪히는 물리적 접촉이 가능한 곤봉 모양의 더듬이로 의사소통을 하며 짝을 찾는다.
나방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밤을 선택했고 고치를 만들어 생존율을 급속도로 높였다. 대부분 나방은 천적의 공격으로부터 일부 알이라도 생존할 수 있도록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알을 대량으로 낳는 전략을 택한다. 특정 먹이나 환경 변화에 의존하지 않아 자원이 고갈되거나 기후 변화나 서식지 파괴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나비는 특정 환경이나 자원에 의존하며 생존하는 생물이다. 낮에 활동하면서 천적으로부터 공격당할 위험이 크고 별도로 자신을 보호할 집(고치)이 없다. 나비들은 애벌레가 먹을 특정한 식물 잎 표면에 하나씩 하나씩 적은 양의 알을 끈적끈적한 풀 성분으로 붙인다. 안정적이고 변화가 적은 환경에서는 잘 버틸 수 있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추위와 더위가 매년 불규칙하게 이상 발생하는 기후변화나 자연의 도시화로 서식지가 파괴 되는 최근의 급격한 변화는 감당할 수 없어 멸종의 길로 갈 수 있다.
전체 나비목의 약 90% 이상을 차지하는 나방은 약 15만~16만 종, 나비는 약 1만7천~2만 종이다. 단순히 종의 수를 비교만 해도 나방이 훨씬 더 다양하며 적응력이 뛰어나다. 나방과 나비는 서로 다른 생태적, 행동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진화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곤충 그룹이다. 같은 조상에서 진화하여 나방에서 나비로 갈라진 생물군으로 여겨지며, 속씨식물이 출현한 이후 꽃을 따라 밤에서 낮으로 활동 시간대를 옮기면서 나비로 종 분화가 된 것으로 보인다.
나비에 꽂혀 곤충 연구소를 만든 지 28년.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 관련 일을 해 오면서 자연스레 나비에 대한 관심이 컸고 20년 전 멸종위기종 붉은점모시나비를 만났는데 아주 특별했다. 나비인데 엉성한 고치를 만들고, 애벌레 먹이식물인 기린초가 아닌 주변의 돌, 흙덩어리 등에 아무렇게나 알을 낳는 행동은 나방의 생태적 특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낮에 활동하며 곤봉 모양의 더듬이는 나비다. 나비와 나방의 특징을 일부 공유하며, 최초 발생한 나비의 원시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나방에서 나비로 가는 진화 방향의 연결고리쯤으로 생각되었다.
붉은점모시나비가 속해있는 속(Genus)의 이름도 파르나시우스(Parnassius). 파르나시우스는 고대 그리스의 파르나소스 산(Mount Parnassus)에서 유래되었다. 파르나소스 산은 태양의 신 아폴론(Apollon)과 예술, 시, 음악의 신 뮤즈(Muses)가 머물렀던 신성한 산이다. 붉은점모시나비는 높은 산 파르나수스 산의 신성함과 신(神)들의 "영감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비유된 것 같다. 영명 “Alpine butterfly”도 높은 산에 살며 추위를 태생적으로 대비해온 붉은점모시나비를 이른다. 유전자를 분석하지 않아도 이름만으로 한겨울에 발육하는 생활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사물이나 사실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한테 보이고 싶은 그 사물의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구한 생명의 진화사를 갖고 있는 붉은점모시나비가 어쩌면 내 눈에 띄고 싶지 않았나 싶다. 억지처럼 보이지만 나도 기다렸고 붉은점모시나비도 나를 기다렸을 것이라며 운명적 만남을 즐겨 이야기 한다.
멸종위기종은 모든 생물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방법으로는 증식하기가 힘들다. 숱한 세월 동안 그들의 생리, 생태를 파악하여 생존에 최적화된 특성을 맞춰 매뉴얼을 확립하는데 붉은점모시나비는 다른 멸종위기종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생활사 중 초여름부터 겨울 초까지 거의 6개월을 알로 생활하니 알 관리가 그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가장 힘든 과정이다. 그런데 붉은점모시나비는 나방처럼 아무 곳에나 알을 낳는 바람에 알을 찾아내어 부화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하는 일이 첫 번째 작업.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을 수 있는 실험실을 만들어 그 안에서 여기저기 뿌려놓은 알을 수거한다. 산란한 지 하루만 지나도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개미나 집게벌레가 알을 까먹고, 붉은점모시나비 알에 기생하려는 기생파리는 득실득실하다. 온도가 떨어진 새벽이나 해가 진 오후 7시경 이 곳, 저 곳 낳은 알을 떼기 시작한다.
자연 상태처럼 알을 깨고 나올 때 잡고 나올 장치가 필요하므로 뗀 알을 다시 고정하며 개체 단위로 관리한다. 장인의 손처럼 신중하고 섬세하게 나뭇잎 위에 알을 하나씩 하나씩 붙이는 작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생명을 잇는 기도이자 자연의 순환을 완성하는 조용한 의식이다. 가지런히 붙어있는 알을 보고 환경부 정연만 전 차관은 나비가 알을 이렇게 순서대로 나란히 낳았는지 신기하다며 감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오해를 한다.
폭염이 극에 다다랐던 2024년 8월15일 광복절. 인천지속가능발전, 인천녹색연합 회원 여덟 분이 오셔서 0.5mm도 안 되는 알을 핀셋으로 잡아 풀로 고정하는 작업을 도왔다. 현미경으로 오래 처다 보면 지끈지끈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 같은 어려운 일인데 고통을 호소하시면서도 잘 마쳤다. 붉은점모시나비가 폭발적으로 늘어 멸종위기종으로부터 지정 해제 될 날을 기대하는 자원 봉사자 여러분들의 간절한 마음이 닿았는지 낙엽에 잘 붙은 예쁜 알에서 애벌레가 건강하게 부화하고 있다.
유튜브: 한겨울에 이게 말이 돼?
멸종위기종이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멸종위기종은 살 데가 없어지거나 기후변화로 인한 외래종의 유입이나 먹이사슬이 붕괴되어 내일이라도 지구상에서 없어질 생물종을 일컫는다. 인간 세상에 빗대면 위중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라고 치부할 수 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원을 가야하고 자격 있는 전문 의사가 증상과 검사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진단을 내린다. 수술이 필요하기도 하며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한다. 치료뿐만 아니라 식사, 배변, 이동 등 일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간병인도 있어야 한다. 전문적인 인력과 엄청난 재원과 장기적인 돌봄이 필수적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멸종위기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암환자를 치료하는 것처럼 증식과 복원을 위한 보전생물학자와 끊임없이 들어가는 비용과 끝도 없는 시간이 들어간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국가 정책이 필요한 까닭이다.
2021년 멸종위기종복원센터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인공증식 제도 개선방안 마련 연구‘ 최종 보고서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연구 개발이 경제적, 기술적, 정책적으로 국가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효과를 언급하며 멸종위기종 보전의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다. 그 근거에 따라 환경부는 마땅히 져야 할 몫을 법률에 반영하여 미래 부가가치가 높은 생물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의무다.
앞으로 몇 년간이 기후변화 대응의 골든타임이라는 목소리가 커진다. 기후변화 대응이 각국의 산업정책의 핵심이 되었지만 한국은 아직 공을 들이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을 국가 책임으로 판단하고 기후변화라는 위험 상황에서 정부가 져야 할 의무로 규정했을까!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생물다양성의 파괴와 생물다양성의 핵심에 있는 멸종위기야생생물 보호라 할 수 있다. 탄소를 줄여야한다는 단순한 부담에서 경제적 자원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혁신적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탄소 경제를 기회로 잡을 수 있다. 숲을 가꾸고 지속적인 생태계 보전을 통해 멸종위기종의 멸종을 막고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지켜 지속적 경제발전의 원천인 생물자원의 확보가 필요하다. 국가는 환경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추위에 떨면서 생업과 여가를 뒤로하고 응원봉을 든 젊은이들과 트랙터를 탄 농심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멸종위기종 살려보겠다고 음지에서 사력을 다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있다. 언제까지 국민의 희생과 봉사를 강요할 것인가?
새 해 새로운 날! 나라가 국민을 지켜주어야 하는데 국민들이 나라를 걱정한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뉴스펭귄에 후원으로 힘을 실어주세요.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⑨] 반갑다 추위야!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⑧] 반갑다 독수리식당, 그리고 사람들!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⑦] DMZ의 소리 없는 아우성!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⑥]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⑤] 생물다양성의 힘!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④] 애기뿔소똥구리가 보내는 SOS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③] 전문화가 멸종의 길로!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②] 탄소포집기 소똥구리를 살린다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①]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⑪] 인간 사고와 상상력 훨씬 뛰어넘는 생물의 영역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⑫] 우리에겐 책임이 있다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⑬] 책상 앞에 있지만 말고 가까이서 보라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⑭] 우리나라 좋은 나라?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⑮] 기후변화는 단순한 날씨 변덕이 아니다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⑯] 자연 생태계에 '일방적 승리'는 없다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⑰] 수많은 생물의 비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⑱] 우리가 자연·생명·멸종위기종이다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⑲] 생물다양성에게 체면이 서다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⑳] ‘친환경’이 자연을 위한다고?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멸종을 막는 철학
-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한 번 살아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