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어제와 다를 바 없고 작년과 같은 일출인데도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해맞이를 위해 주차장 같은 고속도로를 뚫고 해 뜨는 동쪽으로 달려간다. 연말에는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자고 해넘이를 보러 서쪽으로 향한다.
해맞이나 해넘이는 사람들이 행하는 연중행사이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당연한 일상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 같은 천문학자가 태양과 지구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밤낮이나 계절 변화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찾았고 이를 통해 우주의 심오한 비밀을 밝혔다. 일출과 일몰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구가 총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스스로 돌면서 만들어내는 자연 현상임을 확인한 천문학자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다.
어두운 밤하늘. 별빛으로 가득 찬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끝없는 우주가 느껴진다. 그 빛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수백만 광년을 지나 이곳에 닿은 것이거나 이미 사라진 별의 마지막 흔적일 수도 있다. 광활한 우주를 생각할수록 놀라움과 경건함이 절로 솟는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우주 자체의 기원을 밝혀내면서 인간은 우주의 진화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종수나 개체수가 가장 많은 작은 벌레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편이다.
크기나 힘으로 우주와 비교할 수 없는 작은 벌레이지만 이들의 신비한 전략을 접하면 천문보다 더한 무한한 감탄과 경외심이 생겨난다. 인간의 사고와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생존과 번식의 영역을 관찰하면서 인간이 사소히 여기던 미물 속에도 아직도 설명하기 힘든 무한한 우주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화학 반응을 통해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발광생물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생물발광(Bioluminescence)은 세포 내 발광물질인 루시페린이란 물질이 산소와 결합해 산화하면서 빛 에너지로 방출되는 현상을 말한다. 짝을 찾거나 먹이를 유인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빛을 내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지상(地上)의 별’인 반딧불이나 ‘별이 빛나는 바다’를 만들어내는 발광 플랑크톤의 푸른빛은 감동 그 자체이다.
생물은 종족 보존과 자손 증식에 이익이 되는 방향을 선택하도록 적응된 자연의 존재다. 지금껏 살아남은 생물은 외부 환경의 선택 압력을 이겨내는 기능을 최적화하고 변이를 통한 자연선택으로 생존하고 있다.
한겨울에 애벌레로 깨어난 멸종위기곤충 붉은점모시나비는 영하 48도의 초저온에서도 세포막이 손상되지 않고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내 동결 물질을 지니고, 한겨울에도 발육하는 특이한 생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 보편적인 생리 체계를 깬 신비한 이 생물을 연구하면서 다른 종과 완전히 차별화된 흥미로운 생식 구조와 전략을 확인했다.
짝짓기를 하면서 바로 수정이 되는 포유류나 조류와는 달리 곤충의 생식 형태는 짝짓기와 산란 사이에 시차가 있다. 곤충 암컷에게는 수컷에서 받은 정자를 모아두는 주머니인 정자낭이 있다. 암컷은 짝짓기를 할 때 수컷에게서 받은 정자를 정자낭에 모아 두었다가 산란할 때 자신의 난자와 합쳐 수정시킨 다음 배출한다.
만약 암컷이 여러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자낭에 있는 여러 종류의 정자들은 수정을 둘러싸고 경쟁한다. 수컷 입장에서 본다면 짝짓기 후 정자를 전달했는데 다른 수컷의 정자에게 빼앗겨 고작 일부만 수정이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러한 ‘정자 경쟁’을 막기 위해 붉은점모시나비 수컷은 자신과 짝짓기 한 암컷이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할 수 없도록 물리적으로 아예 구멍을 막아 버린다. 이름 하여 스프라기스(Sphragis)!
독특한 생식 구조물인 스프라기스는 1912년 곤충학자인 Harry Eltringham이 수컷이 짝짓기 후 암컷의 교미관(交尾管)을 막는 덩어리(“Wax-like seal after pairing”)를 관찰하고 처음 사용한 단어다. 교미 후 수컷의 정액 성분인 단백질이나 당류와 같은 물질을 암컷의 생식기에 붙인 다음 굳힌 것이다.
스프라기스는 흔히 수태낭(受胎囊)으로 지칭되지만 수태낭은 곤충의 암컷 생식기의 일부로, 주로 짝짓기 동안 받은 정자(sperm)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사용하여 수정 과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정자낭과 같은 기관이므로 ‘수태낭’이 아니라 ‘짝짓기 마개(copulation plug)’로 불러야 맞다.
일단 암컷을 독점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구멍을 막아버리면 알은 어떻게 낳지?
붉은점모시나비 암컷의 짝짓기 마개는 단단한 물질이라 시간이 지나도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으므로 또 다른 통로가 있어야 한다. 붉은점모시나비 암컷은 2개의 문을 갖고 있다. 하나는 짝짓기를 위한 교미구, 또 하나는 알을 낳기 위한 산란구. 짝짓기 후 교미구가 막히는 것이므로 알을 낳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유튜브 : 암컷 생식기를 막아버리는 방법은
진화한 나비목 곤충(약 98%) 암컷 대부분은 붉은점모시나비처럼 2개의 문을 갖고 있다. 하나는 짝짓기를 위한 문, 또 하나는 알을 낳기 위한 문 그래서 이문아목(Ditrysia, 二門亞目)이라 부른다. 2개의 문이 있다고 모두 스프라기스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는 애호랑나비와 모시나비 붉은점모시나비 3 종류의 나비만 짝짓기 마개를 만든다.
잠자리 종류는 짝짓기와 산란을 1개의 생식구만으로 하는 단문아목(Monotrysia, 單門亞目)이다. 수컷 잠자리는 가시투성이인 교미기로 먼저 짝짓기 한 다른 수컷의 정자를 정자낭에서 긁어낸 후 자신의 정자를 전달한다. 다른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암컷의 머리를 잡고 산란 할 때까지 암컷을 데리고 다니며 지킨다. 짝짓기 마개를 만들지 못하므로 암컷을 지키면서 정자 경쟁에 대한 자신의 유전자를 보호한다.
미래를 예측하여 형질의 기능과 효율성이 맞지 않으면 변이와 자연선택으로 진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과연 붉은점모시나비는 최근의 선택 압력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기후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더 뜨거워진다면 초저온성에 버티는 내동결물질이 기후변화에 치명적 약점이 될 것이고, 이미 개체 수가 거의 없어 다른 수컷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데 짝짓기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스프라기스가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 도구가 되었다. 멸종을 막는 최선이었으나 이제는 멸종의 속도를 높일 최악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때때로 암컷이 배를 질질 끌며 스프라기스를 제거하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고 ‘골키퍼 있다고 골 못 넣을까?’ 라는 생각인 듯 다른 수컷이 이를 제거하려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여러 수컷과 짝을 맞춰 더 다양한 유전자 다양성을 지키려는 행동을 관찰하며 진화의 큰 방향을 보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하늘에서 떨어진 빛나는 별 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개똥벌레였다는,.. 그래도 눈부신 반딧불이니까 괜찮다는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가 음원을 휩쓸고 있다. 2024년 여름 파주 DMZ에서 반딧불이 강의를 하며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이 어디 있느냐며 벌레를 좀 예쁘게 봐 달라 부탁했는데, 한 곡의 노래가 하늘의 반짝이는 별보다 더 가깝게 사람들에게 다가와 의미가 되고 위로를 주고 있다. ‘
하찮게 여기던 벌레가 춥고 힘겨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신저가 되었으니 이 또한 감동이다.
유튜브: 나는 반딧불 반짝이니까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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