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해 질 녘, 황금빛 노을을 배경으로 몇 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하늘을 뒤덮으며 거대한 물결처럼 움직이는 광경을 보노라면 ‘경이롭다’라는 감탄사만 나온다. 순간적으로 ‘흩어졌다가 뭉쳤다’를 반복하며 하나의 띠처럼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는데 단 한 마리도 충돌해 떨어지는 녀석이 없다.
엉망진창 엉켜버릴 것 같은데, 그 혼돈 속에서도 질서정연하게 비행하는 모습은 기적처럼 보인다. 철새가 선사하는 이런 멋진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먼 길 마다않고 자연으로 달려가 새를 맞이하는 탐조 여행이 인기를 끄는 게 아닌가 싶다.
가창오리의 군무(群舞)는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장관 중 하나로, 2006년 BBC 다큐멘터리 ‘살아있는 지구 (Planet Earth)’ 시리즈에서 그 신비로운 모습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이 장면이 방영된 이후, 세계적으로 가창오리 군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한국의 철새 도래지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강조되어 한국의 주요 철새 도래지가 환경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얼굴에 태극무늬가 있어 태극오리라고 불리는 가창오리는 우리나라에서 월동한 후 3월부터 이동해 러시아 바이칼 호수와 캄차카 등지에서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번식지 바이칼의 지역 명을 따라 바이칼 쇠오리(baikal teal)라고도 부른다.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에서 멸종위기 단계 중 취약 종으로 분류하여 보호하고 있고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등록되어 전 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종이다. 예쁘고 귀한 가창오리가 요즘 한창 회자되고 있다.
철새를 비롯한 생물의 이동에 따른 공간적 패턴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인 ‘반도효과(Peninsula Effect)’란 생태학 용어가 있다. 반도(半島)는 삼면이 바다고 한쪽 면만 대륙과 연결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고립된 지역이다. 반도효과는 지리적 특성상 반도 끝부분으로 갈수록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밀도가 높아지고 생물종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을 의미한다. 비록 반도는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는지역이지만 대륙과 섬의 중간에 위치하는 생물 지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반도는 생물들의 이동 경유지로 다양한 생태 통로 역할을 하고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 지역 생태계를 형성하여 독특한 어종과 생물들이 살아가는 서식지를 제공한다. 반도 지역의 갯벌, 염습지, 해양 식생(잘피, 해조류)은 탄소를 저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기후 조절 등 생태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지리적으로 한반도를 포함해 이베리아 반도, 플로리다 반도가 이에 포함된다.
특히 한반도 서해안과 남해안의 갯벌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철새, 나그네새 이동 경로 중 하나인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EAAF: East sian-Australasian Flyway)의 핵심 지역으로 시베리아와 동남아시아를 오가는 철새들의 월동지이며 중간 기착지이다. 매년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지구 생태계 먹이사슬을 연결하는 철새, 나그네새들에게 한반도는 중요한 기착지이지만 동시에 반도효과와 무차별적인 개발 행위로 생존이 위협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무안항공참사를 보면서 한 분 이라도 더 살아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너무나 많은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무안공항 참사’ 원인은 가창오리였다고 공식 발표를 했지만 본질을 한참 벗어난 아전인수 격의 분석이다.
철새들의 공간에 공항을 만들어 놓고 철새에게 책임을 묻다니 어이가 없다, 철새 보호구역이나 ‘람사르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만 해 놓고 그 곳에다 공항을 만들어 놓았으니 수십만 마리의 철새들과 어찌 충돌이 없을까? 보호지역이 아닌 곳에 공항을 건설했다고 강변해도 하루에 20~30킬로는 너끈히 이동하는 조류 활동 영역을 감안하면 굳이 도래지 근처에 공항을 만들 까닭이 없다.
현재 15개 공항중 11개 공항이 적자인데 8개 공항을 더 짓는다고 한다. 그 중 백령도, 서산, 새만금, 흑산도, 제주도, 가덕도, 울릉도의 7개 예정지는 대형재난 참사가 예견 되는 바다에 인접한 곳이다. 국토부가 내놓은 대책이란 것이 대체 서식지를 마련하는 것인데 애초에 대체 서식지는 건설을 위한 면죄부일 뿐 전혀 기능이 없는 무용지물이다.
영국은 포화상태가 된 런던 히드로 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템즈강 하구에 신공항 건설 계획을 세웠다가 조류 충돌 위험 등을 이유로 철회했다. 프랑스는 승용차로 2시간 30분 이내로 도착할 거리에는 비행장을 없애겠다하는데 우리나라는 왜 가장 위험한 곳에, 마땅한 명분이나 실익도 없는 공항을 만들려 할까?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철새를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보호가 어렵다. 그래서 국제적인 물새 네트워크를 만들어 세계 각국이 협력을 다하고 있는데 한국의 환경부는 자신들이 법으로 지정한 보호지역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개체수의 90%가 한반도에 도래하는 가창오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다. 단순히 대한민국만의 멸종위기종 보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생물다양성 문제인데 이렇게 함부로 하다니 환경부의 무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년 전 새만금의 환경단체로부터 멸종위기종 조사를 요청 받았다. 연구소의 인력도 없었고 강원도에서 새만금까지 잦은 출장이 불가능해 참여를 못했다. 물장군이나 꼬마잠자리 물방개와 금개구리와 같은 멸종위기종 서식을 확인하 면 이를 근거로 개발행위를 일시적으로 중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만금 지역은 멸종위기종 서식 여부와 상관없이 절대 공항 건설의 입지가 아니다. 커다란 맹금류를 포함 최대 12만 마리의 조류가 관찰되는 지역으로, 조류충돌 위험성이 다른 지역보다도 훨씬 크다. 지역 자체가 공항 건설에 부적합하다고 환경부가 판정을 하면 될 일을, 책무를 유기하면서 환경단체를 비롯한 국민들을 고단하게 만들었다.
멸종위기종이나 생물다양성, 기후위기를 이야기 하다보면 시국이 어수선하고 경제가 어려운데 한가롭게 논할 분위기는 아니라 한다. 하지만 생태적 위기는 계속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미래 세대의 안위와 생존을 좌우할 결정적 사안이다.
환경 정의를 기초로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할 때이므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시점이다.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도 과학기술의 나아갈 길을 설파하신 대한민국 최초의 물리학자 최규남 교수를 만나보자.
북괴군이 의정부를 함락하고 북한군 탱크가 창동 쪽으로 밀고 들어오던 1950년 6월 26일 동아일보 1면 톱기사. 서울대 최규남 교수가 ‘자연과학과 학제(自然科學과 學制)’라는 제목으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적인 사고와 교육이 우리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 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전쟁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게 기초과학에 대한 담론을 설파하신 철학적 사유가 놀랍다.
우리에겐 책임이 있다. 엉성한 환경영향평가와 근거 없는 대체 서식지를 거론하며 진행되고 있는 공항 건설을 막고 멸종위기종과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생명 안전'까지 다 지켜야 할....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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