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입춘과 우수 그리고 경칩까지. 봄의 전령 3종 세트가 다 가도록 혹한과 폭설이 계속되며 끝끝내 버티던 겨울이 어제부터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추운 기운이 약해졌다. 얼어붙었던 계곡물이 풀려 흐르기 시작하고 겨우 내내 눈밭이었던 땅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생명을 담은 산과 들 그리고 강이 꿈틀거리고 있다.

꽁꽁 얼어있던 땅속에서 눈곱만큼 어린 싹이었던 기린초가 불쑥 올라왔다. 작년 겨울 한 복판에서 부화했던 멸종위기종 1급 붉은점모시나비 1령 애벌레가 80여 일만에 껍질을 벗고 2령으로 컸다. 크게 자란 몸에 맞게 많은 양의 먹이를 먹어야 하는데 쑥 커진 기린초가 시기를 잘 맞춰주고 있다.

붉은점모시나비 1령 애벌레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붉은점모시나비 2령 애벌레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붉은점모시나비 1, 2령 애벌레 비교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붉은점모시나비 1, 2령 애벌레 비교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1령 애벌레 시기에는 보이지 않던 붉은색 원형 점이 뚜렷하게 몸 양 옆으로 띠를 만들었다. 머리 크기도 0.6mm에서 0.9mm로 약 1.5배 컸다. 애벌레 발육 단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머리 크기를 관찰해야 한다. 껍질을 비롯한 몸 대부분은 신축성이 있어 커지거나 늘어난 길이로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머리는 딱딱한 큐티클이라 탈피를 할 때 완전 해체된 후에 새로 만든 머리가 나오기 때문에 가장 확실하게 애벌레를 단계별로 분류할 수 있다.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머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머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머리 크기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머리 크기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추위가 쌓이고 쌓여 가장 추운 겨울에 부화를 하고 발육을 하는 붉은점모시나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초능력에 깜짝 놀랐다. 겨울을 봄처럼, 계절을 앞서 살고 있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고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일상적인 생태와는 어긋난 특별한 생리를 확인하고 몸 안에 담겨져 있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매진한 지 20년.

곤충학자인 필자가 늘 고민하고 있는 화두! 대부분 사람들이 혐오하는 ‘벌레’라는 이름표를 떼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곤충’으로 짜릿한 감동을 줄 수 없을까?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있는 그대로만이라도 곤충을 인정해줄 방법은 뭘까? 존재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인간과 함께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좋은 이웃으로 생각해주면 더욱 좋고.

기존의 상식과 세계관을 뒤집는 '붉은점모시나비의 특별한 행동과 물질을 찾음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화두를 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곤충에 관한 이야기 거리가 풍성해졌다. 영하 48도까지 견딜 수 있는 붉은점모시나비의 내한성 메카니즘을 설명하면 모든 이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신기해한다. 골칫덩어리 벌레가 신비한 동물로 변신했다.

유전체 분석 연구로 깊게 확장하면서 확인한 물질이 바이오 의약품이나 냉동식품 산업, 동결 보존 제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 가능성을 열고 있다. 사람들이 늘 관심 있는 돈, 경제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사로 부상을 했으니 감동을 넘어 곤충 가치에 대한 설득력이 생겼다.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의 내동결물질 대사 관련 유전체를 분석하여 총 15종의 펩타이드를 채취했고, 2021년, 2023년 치주염과 아토피 피부염을 치료할 수 있는 저분자량의 항균 펩타이드에 대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유전체 연구와 분석을 전문으로 ‘3Bigs’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업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2021년 논문 표지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2021년 논문 표지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2023년 논문 표지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2023년 논문 표지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사람들은 때때로 내가 벌레의 생각을 이해하는지 농담 삼아 물어본다. 예지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늘 접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는 건 맞다. 세심하게 잘 관찰하다가 곤충을 대상으로 심층적, 실질적 연구를 진행해 치주질환이나 아토피 피부염 더 나아가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실마리가 되는 물질을 추천했으니 벌레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자존감이 생겼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유용한 지식을 추구했으나 곤충에 대한 연구 사례가 거의 없는데 이만하면 됐다 싶다.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에서 발견된 생리활성 펩타이드는 생명과학 및 신약 개발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 가치가 있다. 연구 성과가 단순히 학술 논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신약 개발 및 생명공학 산업과 연계될 수 있도록 국가 바이오산업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2004년 이후 현재까지 후속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2025년 1월 23일에 국가바이오위원회가 출범했다. 바이오 전 분야에 대해 민·관 협력을 이용한 비전·전략을 제시하고 바이오 경제, 바이오 안보 등 지속 가능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논의·결정하는 범부처 최고위 거버넌스라 할 수 있다.

국가바이오위원회는 위원장인 대통령과 부위원장 1명을 포함해 40명 이내의 정부위원, 민간위원으로 구성된다. 정부위원은 기획재정부, 과기정통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부, 보건복지부, 국무조정실, 식품의약품안전처, 특허청, 질병관리청,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관계부처 장관(일부 처·청장 포함) 10명과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간사위원), 국가안보실 제3차장으로 구성된다.

국가바이오위원회 위원
국가바이오위원회 위원

바이오는 생물을 의미하고 생물다양성, 멸종위기종을 관리 보전하는 환경부가 위원에서 빠져있다. 정부 내에서 채널이 없기도 하겠지만 바이오 전 분야에 대해 비전·전략을 제시할 능력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어제 3월 5일 정책위원회를 개최하여 반도체, 바이오, 로봇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가 국내 기업에 취업할 경우 가족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논의, 확정했다 하는데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엊그제 첫 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가 걱정이 되면서도 대견해 할아버지로서 따뜻한 응원과 사랑을 보내야겠다는 설렘과 뿌듯함으로 길을 나섰는데 만만치 않았다.

다시 겨울로 돌아간 듯 사흘째 퍼부은 폭설에 영하의 강추위가 반복되며 빙판길로 변한 산길 언덕을 내려가다가 차가 미끄러져 언덕 중간 난간에 부딪치며 겨우 섰다. 비상용으로 늘 차에 실고 다니는 삽과 곡괭이로 1시간가량 길 옆 모래를 파서 길에 뿌리고 난 후에야 겨우 빠져나왔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차에서 내리다 아내는 45도 경사의 언덕 빙판에 2번이나 크게 넘어졌다. 한창 골다공증이 진행되는 나이라 뼈가 부서졌을까 걱정이어서 먼저 병원에 가자 권유했지만 아내는 씩씩했다. 부상보다 손녀 입학식에 꼭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괜찮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강행군을 했다.

입학식 직전 도착하여 손녀와 눈을 마주치자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손을 흔든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애타게 기다렸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많이 속상했나 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벅차오른다. 무리를 해서라도 꼭 왔어야 할 자리였다.

필자 손녀 입학식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필자 손녀 입학식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따뜻한 응원을 위해 천신만고 끝에 달려왔는데 천진난만한 7살 아이들을 보면서 심한 자책감을 느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게 하면서도 정작 아이들이 살아 갈 나라를 위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우리 어른들은 너무 무책임하다. 국가의 의미도, 애국의 본질도 확실히 모르지만 아이들이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생각만 할 수 있어도 되질 않을까!

정작 기성세대는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기는커녕, 기후위기를 방치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더 나쁜 세상을 물려주고 있다.

수많은 생물들이 사라졌고 지금도 죽어나가고 있는데 과연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스스로가 2차례나 부결시킨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조건부로 허가해주고 작은 군 단위에도 공항을 건설할 수 있는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통과시켜주고, 기후변화를 막겠다며 댐을 만들겠다 하니 환경부는 자기들이 무슨 소리 하는지도 모르면서 다 부수거나 부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자연은 미래 후손의 것을 빌려 쓰는 것이라며 말만하고 있다. 도대체 환경부는 왜 이러는 걸까?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멸종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생존 위기 속에서 필요하지도 않은 골프장, 케이블카, 공항 건설, 댐을 만들 일이 아니라 재앙으로부터 소중한 생명들을 지키는, 아이들 눈을 흐리게 하지 말고 귀를 더럽히지 말고 하나 밖에 없는 지구를 보존하는 일을 해라.

지금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환경부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의 아이들에게 남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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