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새벽 5시. 축사의 문을 열어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밤사이 소들이 안녕한지 살펴보고, 잠깐이지만 갇혀있던 갑갑한 우리에서 방목지로 풀어주니 음~메 고맙다며 화답을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인 것 같지만 20년 째 동고동락하면서 나와 똑같이 감정을 느끼고 생각도 할 수 있는 하나의 영혼이라 생각되니, 평생을 같이 하는 반려동물이 되었다.
소를 내 보내고 밤새 싸놓은 축사의 똥을 색깔과 모양을 보고 분류한다. 연신 똥에 달려드는 파리와 모기에 물리는 고행의 연속이지만 ‘살릴 똥’과 ‘버릴 똥’을 나누는 작업은 소똥구리 증식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일과다. 20년 전 처음으로 똥을 만질 때 나도 모르게 손으로 코를 막았지만 이제는 손바닥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켜 냄새를 맡는다. 똥이 구린지도 모르겠고 가끔은 예쁘게 보일 때도 있다.
소똥구리 먹이로 사용할 진한 녹색의 윤기 나는 ‘살릴 똥’은 통에 넣어 실험실 냉동고로 퍼 나르고, 나머지 오줌과 섞여 질퍽해진 ‘버릴 똥’은 낙엽과 함께 두엄을 만든다. 두엄은 약 6개월 발효 뒤에 퇴비로 사용하는데 이즈음 무렵부터 밤이 되면 쌓아놓은 두엄에 개똥벌레가 반짝반짝 어둠을 밝힌다. 축축한 두엄더미에 달팽이가 모여들었고 달팽이를 먹으러 온 늦반딧불이 애벌레가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며 반짝반짝거리는 멋진 광경이 연출된다. 소똥구리가 먹지 못해 버리는 똥이지만 다른 생물들에겐 안성맞춤의 ‘살 데’가 되었다.
실험실 냉동고로 날라 온 ‘살린 소똥’은 도시락 모양의 틀에 넣고 꾹꾹 눌러 소똥구리 밥으로 만들어 영하 38도 냉동고에 보관한다. 먹이를 정량화하여 끼니마다 정해진 양을 줄 수 있고, 똥 냄새를 맡고 가장 먼저 달려온 파리가 알을 슨 똥의 구더기를 없애 신선한 먹이로 만들기 위함이다.
식성이 특이한 곤충은 많지만 똥을 먹는 분식성(糞食性) 곤충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가장 이상한 놈들일 것이다. 다 먹고 나온 찌꺼기라고 생각되는 똥을 먹는 사실도 기괴해 보이지만 더럽고 지저분한 동물의 똥 때문에 멸종의 길을 가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질병을 옮기는 똥파리, 집파리는 똥이라면 뭐든지 가리지 않고 잘 먹는데, 귀한 소똥구리는 까다로운 식성 때문에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 사멸의 원인이 아직 완전히 해명되지 않은 채 사라지는 많은 멸종위기종이 있지만 소똥구리의 절멸은 밥의 위기에서 비롯된다. 초식동물인 소나 말이 풀이 아닌 사료를 먹으면서 똥이 완전히 오염돼 인가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신선한 똥을 더 이상 구할 수 없어졌다. 소똥구리의 절박한 생명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야생동물의 가치를 따지는 방법은 시장에서 음식이나 자원을 제공하는 동물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비록 정밀하지 못하고 모순되는 점도 있어 약간의 결함은 있지만, 최근 들어 야생동물의 경제적 가치를 탄소 포집, 식물의 수분, 레크레이션이나 관광 같은 간접적 혜택의 가치에 값을 매기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소똥구리 값은 연간 3억8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며, 축산업이 주산업인 호주의 경우엔 연간 10억 달러로 추정한다. 방목지를 뒤덮은 배설물 처리와 훼손된 목초지의 재생을 화폐로 계산한 값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산술 계산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땅을 기름지게 하고 토양의 침식을 막고 물을 저장하는 보이지 않는 생태계 서비스를 고려하면 그 가치는 훨씬 높아 질 것이다.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생태계의 슈퍼히어로이지만 소똥구리의 큰 가치는 따로 있다. 소똥에는 메탄과 아산화질소 같은 온실가스가 함유되어 있는데 소똥구리가 똥을 경단으로 만들어 땅 속으로 끌고 가면서 온실가스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지 않고 토양 속에 격리된다. 이산화탄소 포집기라 할 수 있다. 기후변화를 막는 일등공신인데 그냥 보낼 수는 없다.
27년 전 ‘홀로세생태학교’ 라는 이름으로 생태교육을 시작하면서 ‘홀로세’라는 이름 때문에 소란이 있었다. 홀로 사는 새도 아닌데 너무 외로워 보인다거나, 외래어라 이름이 익숙치 않다거나 아내를 비롯해 모든 가족이 반대를 했다. 하지만 1만1700년 전 시작된 홀로세에 살고 있고 현재의 생태적 위기를 표현할 격에 맞는 단어라며 고집을 피워 결정했다.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지질 시대의 이름이므로 최소 만 년은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불과 27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수천만~수 억 년의 단위를 뛰어넘어 홀로세를 인류세로 개명한다니 10년이면 강산이 바뀌는 게 아니었다. 매초 마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며칠 전 부산에서 폐막된 국제지질과학총회에서 현재의 지질 시대를 일컫는 홀로세를 인류세로 변경하자는 의제가 대두되었다. 운석 충돌이나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판이 충돌하거나 포개지면서 지진, 화산이 폭발하고 뒤를 이어 급격한 기후변화가 진행돼 생물의 대멸종이 발생한 시점을 경계로 지질 시대를 나눈다.
아직 만년밖에 되지 않은 홀로세를 인류세로 바꾸려는 이유는 재앙적 자연현상이 아니어도 인간의 영향으로 지구의 물리·화학적 시스템이 바뀌면서 지구가 홀로세의 평형을 벗어나 생물의 대멸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논의 자체만으로도 이미 기후위기와 지구 탄생 이래 여섯 번째 대멸종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인들이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8월 29일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을 국가 책임으로 판단하였다. 세계적으로 드문 전향적인 판단으로 정부,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책임을 높이고 환경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한 최고의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생물의 멸종을 의미하며 붙들래야 붙들 수 없는 생물이 매년 늘어나는 상황을 웅변한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더울 것이며, 내후년은 어쩌면 더 긴 장마가 올 수도 있다. 예측 불가능한 환경 변화에 더 많은 생물이 멸종위기종에 이름을 올리고 세상에서 사라질 수가 있다. 헌재의 결정을 깊이 새겨 이제껏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질적·양적으로 대응 강도를 높이는 정책 전환에 나서야 하는 까닭이다.
오랫동안 소를 키우면서 몸 고생은 하지만 아직도 ‘예쁜 눈망울과 긴 속눈썹’을 보며 참 예쁘구나! 라고 생각을 한다. 지칠 만도 한데 멸종위기종이나 생명을 아끼는 마음이 여전한 것 같아 한편으로 내 자신에게 고맙다.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기후변화를 혼자 힘으로 늦추거나 막아낼 수는 없지만 이산화탄소 포집기인 소똥구리만이라도 지켜내는 일.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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