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울고 늦반딧불이가 별처럼 반짝이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잠시 만끽했는데 며칠 째 길고 잦은 비가 이어지고 있다. 새벽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굵고 빗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여름철에 내리는 장마가 가을 초에 다시 나타나 ‘가을장마’ 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비가 내리니 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늦반딧불이.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늦반딧불이.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가을장마가 길어지면서 늦가을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숲으로 난 길을 걷다가, 풀을 뽑으려 들에 나서면 등과 팔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물린다. 그래서 야외에서 일을 할 때는 쑥을 뽑아 목회불을 주변에 피워 놓고 작업을 한다. 

이집트숲모기.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이집트숲모기.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여름의 극성스러운 더위를 내치고 신선한 가을이 시작되는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했는데 처서 지난 지 한 달여인데 오히려 기세등등하다. 평균 기온 상승의 기후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면서 도심 모기의 발생 주기가 더 길어지고, 개체수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왕모기라 불리는 각다귀(흡혈하는 모기가 아니다).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왕모기라 불리는 각다귀(흡혈하는 모기가 아니다).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여름 가뭄으로 주춤했던 모기가, 가을장마로 다시 물웅덩이가 생기고 기온이 20도 안팎으로 유지되면서 모기들은 뒤늦게 산란을 하고 모기가 되어 쏟아져 나온다. 단순히 성가신 일이 아니라 이상기후의 시대에 늦가을 모기가 오래 살고 기하급수로 늘어나면서 사람 목숨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긴급한 상황이 되었다. 

곤충은 바깥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이다. 인간이 편의적으로 나누어 놓은 계절의 리듬에 맞춰 살아온 것이 아니라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가장 치명적인 살인자인 모기는 특히 적응력이 뛰어나 온도가 떨어지지 않고 살 곳만 있으면 No problem! 가을이던 겨울이던, 물웅덩이든 정화조든 언제 어디에서고 번식할 수 있다. 

과거 30년(1912~1940년) 대비 최근 30년(1991~2020년)의 계절의 길이가 변했다. 봄이 일찍 오고 가을이 늘어지면서 20도 내외의 모기 활동 시간이 약 20일 간 길어졌다. 결과적으로 연중 모기 발생 기간이 늘어나고, ‘발생 횟수’ 자체가 증가하면서 말라리아에 노출 빈도가 높아졌다. 나비나 잠자리가 더 많이 발생하거나 더 오래 살면 그러려니 하지만 모기는 아니다.

세계 최악의 동물들(WHO) (자료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세계 최악의 동물들(WHO) (자료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빌 게이츠는 1955년생 미국인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여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고, 운영체제 윈도우를 통해 세계 컴퓨터 시장을 지배한 IT 혁신가다. 오랫동안 세계 부자 순위 1위를 기록했던 인물이기도 한 빌 게이츠가 왜 모기 연구를 지원하고 있을까? 

부자가 되면 보통 “인류에게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한다는데, 과연 그럴까? TED 강연에서 그가 하는 설명을 들어보면 게이츠에게 곤충 연구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단순한 과학 프로젝트가 아니라 불평등 해소와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도구라 생각한 것 같다. 

모기는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 지카 바이러스 등의 질병을 일으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말라리아가 매년 70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데 아이들이 주요 피해자다. “말라리아 없는 세상”을 목표로, 암컷 번식을 차단하거나, 암컷이 살아남지 못하게 유전자를 조작한 수컷 모기를 방사하는 방식의 유전자 변형 모기 모기를 생산, 방사한다. 

질병으로 인한 생명 손실을 줄이고 특히 저소득 국가들의 많은 피해를 막아보려는 국제적 자선 및 보건 전략이어서 빌 게이츠의 휴매니티에 감동을 하게 된다. 단지 유전자를 변형하는 방법은 예측이 불가하고 생태계에서 통제 불가능한 확산을 일으킬 수 있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천적으로 혹은 전통적 퇴치 방법을 더 확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기회가 되면 사람 살리는 일과 함께 멸종위기종을 살려보자고 설득하고 싶기도 하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생물학과 곤충학에 이리 열심인 걸 보면 곤충학이나 생물학도 세계 리더 들의 관심 영역인 것은 틀림없다. 평생 곤충 생태를 연구하고, 멸종위기종 보전과 신약 개발을 위한 물질 발굴까지, 현장에서 실천적 삶을 살고 있는 필자가 “괜찮은 길을 가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가질 만한데! 

엊그제 '에코 휴 DMZ' 생태조사단의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강의를 했다. 국내 대부분의 말라리아가 파주, 연천의 지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더욱 관심사였다. 늦가을 모기를 보며 “왜 이리 늦게까지 모기가 있지?” “하필 우리가 사는 파주 지역에만 말라리아 걸리는 환자가 많지?”라고 궁금했는데 그 뒤에 숨은 기후와 생태계의 변화를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에코 휴 DMZ' 생태조사단의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강의.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에코 휴 DMZ' 생태조사단의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강의.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접경 지역인 파주는 북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체계적인 모기 방제나 방역이 미흡하기 때문에 모기 개체수가 많고, 말라리아 기생충을 가진 모기도 서식할 확률이 높다. 북측에서 발생한 감염 모기가 남측 파주 지역까지 이동할 수 있으며 실제로 국내 말라리아 환자의 상당수가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해 있는 파주·김포·연천 지역에서 발생한다.

한강 하류와 임진강 유역에 속해 하천 습지, 논, 저수지가 많은 파주 지역의 물 환경은 모기 애벌레의 서식지로 최적 조건을 제공한다. 또한 강수량이 들쑥날쑥한데다가 집중호우 빈도가 늘어나 일시적으로 모기의 대규모 산란 처를 만들 수 있다. 군부대, 민간인 거주지, 농업 종사자가 함께 분포하는 지역으로 지역사회 전파 위험이 높다.

북한과의 접경이라는 지리적 요인, 습지와 농경지 환경, 온난화로 인한 모기 생존 환경 강화, 그리고 군·민간인이 공존하는 인구 구조 때문에 파주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 감염 위험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말라리아 핫스폿’이다. 

기온이 오르고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모기의 활동 시기와 서식지가 급격히 확장되었다. 강원도 깊은 산속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닌 것 같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추상적인 미래 담론이 아니다. 특히 모기를 매개로 한 말라리아의 재출현은 기후 위기의 직접적 증거이자 인간 건강과 생태계 안정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현재 진행형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말라리아 발병을 알리는 지인의 메시지.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말라리아 발병을 알리는 지인의 메시지.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이웃이, 친구의 아들이 말라리아에 감염되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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