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너무나 당연한 봄인 줄 알았는데 이번 봄은 그냥 오질 않았다. 며칠 전 습기 가득한 폭설이 또 쏟아지고 온종일 실험실 눈을 털어내면서 언제까지 눈을 털어야 하는지, 과연 봄이 올까? 의심했다.
끔찍하게 춥고 야외 실험실 눈 털어내느라 진이 빠졌던 겨울이 가고,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이 왔다. 낮 기온이 24도까지 올랐던 지난 주말, 아이들과 손주까지 온 가족이 총동원되어 무너진 실험실 하우스를 철거했다.
어느덧 훈훈해진 바람이 잠자는 나무를 쓰다듬고 겨울 속에 웅크리고 있던 생물들에게 일어나라 말을 하고 있다. 복수초, 생강나무, 산괴불주머니의 노란 꽃으로 눈이 호강한다. 상사화와 산마늘 두메부추와 원추리의 땅을 뚫고 올라오는 강력한 힘을 보며 에너지를 받고 있다.
밤에도 영상의 온도를 유지하자 큰산개구리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짝을 찾아 노래를 한다. 아직 짝을 찾지 못한 급한 마음에 남의 사랑에 끼어들다가 패대기쳐지는 모습이 재미있다. 어른나비로 겨울을 나던 네발나비와 뿔나비, 각시멧노랑나비 그리고 청색의 빛나는 날개 띠가 신선처럼 보이는 청띠신선나비까지 한창 번식을 준비하고 있다.
유튜브 이 사랑은 내 거야 U’re loser!
하지만 심상치 않은 봄바람으로 봄이 무서워졌다. 숨죽였던 생명을 깨우는 더 없이 따뜻한 바람이 바짝 마르고 태풍처럼 거센 봄바람이 되면서 전국의 산을 불사르고 있다. 지난 21일 발생한 경남 산청 산불과 22일 시작된 경북 의성·울산 울주·경남 김해 산불, 23일 발화한 충북 옥천까지 릴레이 하듯 대형 산불로 번지게 하고 있다.
불은 나무만 태운 게 아니라 산에 기대어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집과 재산을 송두리째 없애버리고 진화하려 달려갔던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다치게 했다.
모든 것을 불길 속으로 삼켜버리는 화재를 현장에서 직접 느끼면 그 공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지옥 같다는 표현이 맞다. 2009년 멸종위종 소똥구리 실험실 누전으로 불이 나고 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으로 대형 산불로 번질 뻔해 가슴이 새카맣게 탄 적이 있다. 그동안 축적해 온 모든 자료와 건물이 잿더미로 변했던 그날의 내 참담함이 산불 이재민과 같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무 죄 없는 봄바람이 미워지기도 한다.
대형 산불만 나면 강풍과 건조한 날씨, 기후 변화 탓으로 돌리지만 사유가 똑 떨어지지는 않다. 물론 중국 내륙과 몽골의 건조한 공기를 끌어오는 북서풍과 특히 영동 지역에서 양간지풍(양양과 간성사이에서 부는 지역적 바람)이라고 불리는 건조하고 강한 국지풍인 남동풍이 봄철 산불 발생과 확산에 중요한 기상 요인이다. 또한 겨울철 강수량이 적고 상대습도도 낮은 시기로 대기 자체가 건조해져 겨울 동안 말라버린 낙엽·풀·가지 등이 ‘연료’ 역할을 하며 봄이면 산불이 쉽게 확산되기도 한다.
그러나 강풍과 건조한 날씨 외에 산불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인이 있다. 바로 소나무. 소나무는 우리 숲의 상징이라는 인식과 송이버섯을 자랄 수 있게 하는 소득 작물로 인식되어 산불 이후 조림할 때도 “익숙한 나무”로 다시 소나무를 선택하는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산불은 숲의 구성과 종 조성에 따라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소나무는 가연성이 매우 높고 휘발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송진 성분이 많아 쉽게 불이 붙고, 한 번 붙으면 꺼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소나무의 낙엽인 솔잎 또한 가볍고 잘 마르며, 바람을 타고 불씨가 쉽게 퍼진다.
산불의 급속한 확산을 유도하는 중요한 생태적 요인인 무조건적인 ‘소나무문화’를 최대한 빨리 바꾸어야 한다. 끊임없는 경쟁과 투쟁을 하면서 식물은 자연적 천이 과정을 거친다. 초본식물 중심으로 출발하는 천이 초기 단계로부터 소나무 림이 우세하게 자리를 잡는 중간 단계를 거쳐 참나무 림이 우점 종을 차지하는 극상 림까지 진행되는 구조를 말한다.
그런데 굳이 자연스런 천이과정을 막으며 소나무 림을 보전하려는 산림 정책으로 산불이 더욱 거세지고 확산 되고 있다. 자연 생태계의 역동적 변화인 "자연천이(natural succession)"를 지켜주며 인위적으로 만든 숲 구조를 시급히 전환하는 산림 정책의 생태적 전환이 절실하다. 반복되는 재해에 잘못된 방법을 고집하지 말고 소나무 단순조림을 참나무 혼효림과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통합산림관리(IFM:Integrated Forest Management) 체계가 작동되어야 한다.
기후변화는 단순한 날씨의 변덕이 아니고 때 이르게 더워지고 더욱 건조해지면서 산불의 빈도와 규모를 크게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에 좌절하고 자연생태계 내의 수많은 생명과 함께 가족의 생계와 생명이 얽혀 있는데 어찌 가볍게 볼 수 있는가!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구조적 변화와 탄소 제로의 장기적 효과를 목표로 하지 못할 거면 그냥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 기후변화를 막을 최소한의 방책이다. 1등급 보전 지역을 단 3일간 조사로 2~3등급으로 하향 조정하여 양수발전소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명품 숲이라고 지정된 그 곳에서 살던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산양, 수달, 하늘다람쥐를 다 죽게 만들고 수십 만 그루의 나무를 베면서 기후변화를 들먹이는 건 언어도단이다.
그 동안 비효율, 만성 적자로 20년 동안 새로운 공사가 없었던 양수발전소를 왜 갑자기 만들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지역 주민에게도 지자체에게도 국가 경제에도 도움은커녕 해악만 끼치는 양수 댐으로 지역 주민정서와 자연생태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생명과 생태, 그리고 공동체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정책 결정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국가가 지켜줘야 할 멸종위기종과 생물다양성을 오히려 주민이 맨몸으로 지키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마을에 그냥 그대로 살고 싶다는 너무나 평범한 희망뿐인데 나라가 그 단순한 꿈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제발 조직을 지키지 말고 나라와 국민을 지켜다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시간이 갈수록 산불이 확산되고 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다. 산불은 주변 공기를 끌어들이면서 강한 바람을 만들고 다시 강풍이 상승기류를 형성해 확산 속도를 가속시켜 장기전이 될 수 있다니 큰 걱정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축복을 기도한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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