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어둠을 가르고 반짝반짝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이가 펼치는 세상에 견줄 수 있는 멋진 풍경이 있을까? 

이슬 젖은 풀잎을 헤치며 느릿느릿 춤추는 반딧불이의 불빛을 쫓으면서 여기저기서 “아! 별 맞아” 감탄하며 탄성을 지른다. 손에 잡힐 듯 가장 가까이 있는 별을 보며 황홀한 기분에 넋을 잃고 신비로운 초자연적 현상에 빨려들며 가슴이 뛴다. 밤 새워 봐도 질리지 않는 마법 같은 ‘빛의 향연’을 경험하니 온 우주가 춤을 추는 듯하다.

조사를 마치고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결과물을 정리하면서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 듯 왁자지껄하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빛은 강열한데 뜨겁지는 않고. 만져보니 말랑말랑한데 딱정벌레라구? 늦반딧불이 애벌레는 왜 빛을 내? 암컷을 유혹할 것도 아니면서.

반딧불이를 먹으면 죽는다

에코휴 전선희 대표가 연구 책임자로 수행한 ‘파주DMZ 민통선 일원 반딧불이 서식지 조사‘ 연구자로 참여하였다. 7월부터 9월까지 민통선 안에서, 통일로에서 반짝반짝 반딧불이를 만나는 일은 특별했다. DMZ라는 단어만 들어도 찌릿하면서 가슴이 아팠는데 천천히 평화롭게 날아와 곁을 주는 반딧불이를 보니 DMZ가 가장 비참하고 억울한 국경만은 아니었다.

민통선 일원 반딧불이 서식지 조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누구나 이 길을 지나 개성에도 가고 백두산에도 갔을 법 한 데 1953년, 전쟁을 일시 휴전하면서 비무장지대로 선포하고 70 년 간 접근이나 통행을 막았다. 쉴 새 없이 퍼붓는 포탄이 난무하던 전쟁의 치열한 격전지로 지뢰와 온갖 무기들로 둘러싸인 가장 위험한 곳 인줄 알았는데 사람 발길을 강제로 끊자 생명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조사 중 반딧불이는 물론이고 금개구리도 물장군도 애기뿔소똥구리까지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들을 이산가족 만나듯 반갑게 확인했다.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잘 살고 있어 DMZ에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멸종위기종 금개구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종 금개구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종 물장군.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종 물장군.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DMZ는 6·25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에게는 지독한 트라우마로 남겨져 있고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꽉 막힌 응어리다. 시대적 아픔을 극복 못하고 여전히 분단의 상태인 전 세계 딱 하나 남은 특별한 공간이니 조사하는 내내 감회도 남달랐다. 자칫 우울할 수 있었는데 같이 참여한 조사자들의 유쾌한 감동으로 분위기는 즐거웠다.

비무장지대는 생태·환경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평화 기원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1999년 마이클 잭슨, 2015년 폴 매카트니도 전쟁 없는 평화 공존을 노래하려 했던 장소였다. 안전 문제로 불발되었으나 만약 성사되었다면 세계적인 공연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얼마 전 IUCN 담당자들이 내한했을 때 잠간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도 꼭 가보고 싶은 장소 1순위가 바로 DMZ 비무장지대였다.

진정 비무장화를 통해 세계적인 생태⦁평화 관광의 K-Nature가 어렵지 않을 만큼 완벽한 공간인 DMZ. 그러나 예전보다 더 심각한 긴장으로 최근의 비무장지대 주변 상황이 걱정스럽다. 전쟁의 아픔과 분단의 상처가 새겨진 DMZ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자연생태의 감수성과 평화를 기원하는 선의를 담아 한국전쟁의 상흔을 승화시키고 미래의 아이들이 생태와 평화를 체감하는 희망의 땅으로 만드는 일은 역사적 사명이다.

최근 남북의 어설픈 극단적 정치 대립으로 갈등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에 작은 희망을 주는 특별 전시회가 있었다. 생태와 평화의 DMZ를 기록하고, 기억하고, 추념하는 ’생명과 자유의 땅 DMZ 사진 전시회‘. 춘천MBC 전영재 전 보도국장의 DMZ 33년의 기록이 춘천MBC 창사 56주년 특별기획으로 10월 19일부터 11월 3일까지 보름간 진행되었다.

현재는 한림대 미디어스쿨 겸임교수인 전 교수는 33년간 기자 생활 중 DMZ 내 30여 종의 멸종위기종을 취재하고 20여편의 DMZ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DMZ 다큐멘터리스트다. 이 메일 주소도 dmznews로 ’DMZ바라기‘ 맞다. 서식 기록이 없던 멸종위기종 호사비오리의 번식 생태를 최초로 기록했고 산양, 수달, 두루미와 까막딱따구리의 생태보고서를 계속 제작하고 있다. 죽음의 땅이 될 뻔했던 DMZ가 복원되면서 서식지의 변화, 그 안에 살고 있는 야생동식물, 멸종위기종 등을 사진에 담아 우리 곁으로 데려오고 있다.

전 교수는 "전시회를 통해 DMZ의 생태적 가치를 바로 알고, 생명과 희망의 공간으로 스스로 복원한 자연처럼 남북한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상생의 발걸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뢰밭을 오가며 생태와 생명을 기록하던 전교수가 담담히 멸종위기종과 야생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가 된 DMZ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할 때는 따뜻한 생명의 기운을 느꼈다.

전영재 춘천MBC 전 보도국장과 대화.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전영재 춘천MBC 전 보도국장과 대화.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종 호사비오리 암 수. (사진 전영재 제공)/뉴스펭귄
멸종위기종 호사비오리 암 수. (사진 전영재 제공)/뉴스펭귄

올해로 71년이 된 정전협정으로 군사분계선이 현존하지만 하늘과 땅, 강은 이미 자연스레 연결되어 생명이 충만한 땅이 되었다. 환경부 국립생태원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동부해안, 동부산악, 서부평야 등 DMZ 일원 3개 권역의 생태계를 조사한 자료와 1974년부터 누적된 조사 자료를 비교 분석한 결과, DMZ에 총 5,929종의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101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멸종위기종 산양. (사진 전영재 제공)/뉴스펭귄
멸종위기종 산양. (사진 전영재 제공)/뉴스펭귄
멸종위기종 두루미, 재두루미, 검은목두루미, 흑두루미가 한 컷에 ( 사진 전영재 제공)/뉴스펭귄
멸종위기종 두루미, 재두루미, 검은목두루미, 흑두루미가 한 컷에 ( 사진 전영재 제공)/뉴스펭귄

DMZ 일원 생태계조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생물종 정보를 구축하고, 중부산악과 서부임진강하구의 권역 조사가 끝나는 2020년에 DMZ 일원의 생물다양성 지도, 국제적 멸종위기 야생생물 서식 분포 지도 등을 제작하겠다고 환경부가 약속했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어디서 어떤 종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반복 확인하는 일은 ’기초 중의 기초’ 자료이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속한 종들의 서식처와 생태를 연구할 수 있는 데이터이므로 꼼꼼하게 살피고 서둘러야 한다.

멸종위기종 수달 (사진 전영재 제공)/뉴스펭귄
멸종위기종 수달 (사진 전영재 제공)/뉴스펭귄

한 종의 멸종은 서식지와 잔존 개체군 그리고 문헌 정보 확인 등 엄격한 과학적 검토를 바탕으로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한반도 내 멸종 선언은 DMZ 일원 생태계조사를 완벽히 마친 후에야 공식적인 절차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비록 우리 눈에 띠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높은 생물다양성 구조를 갖고, 야생생물의 마지막 피난처가 된 DMZ의 한 뼘 땅 안 어디에선가 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인 산문‘을 선정 이유로 꼽았다 한다.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1950년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겼고 그 아픔은 세대를 넘기면서 이어지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극복은 쉽지 않다.

DMZ는 현재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쟁의 끔찍한 상처지만 그나마 스스로 복원하여 수많은 생물을 보듬고 있다. DMZ를 생태학의 씨앗으로 보전하고 시적으로 승화시키는 일, 그 것이 노벨 문학상 수상과 같은 국민적 환호를 받는 일 아니겠는가! DMZ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린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