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아름다운 길이었다. 하늘을 가린 쭉쭉 뻗은 울창한 삼나무가 빼곡이 늘어선 숲 터널을 걷다보면 신성한 숲에서 나오는듯한 삼나무 향에 푹 빠져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오감을 자극하는 숲을 느끼며 ‘오래오래’ 심호흡을 했다.
비자림로 숲 1번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거슨새미오름과 칡오름 사이의 2차선 도로는 야생 동물에게도 중요한 이동 통로다. 서식지를 두 동강으로 잘랐지만 그나마 조각조각 잘리질 않아서 오름과 오름 사이에 있는 야생동물이 오갈 수 있는 길로 사용이 되고 있었다.
비자림로는 제주도 중산간 이하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생물다양성의 핵심지역이다. 다양한 식생에 기대어 멸종위기종인 팔색조, 긴꼬리딱새 같은 새들이 터를 잡았고 애기뿔소똥구리가 깃들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즐기고 뭇 생물들이 생태적으로도 이용하는 중요한 길이었다. 그래서 숲은 더 아름다웠다.
아름답고 중요한 이 길이 비극적인 운명을 맞닥뜨린 일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6월, 비자림로 중 일부 구간인 제주시 구좌읍 대천 교차로에서 금백조로 입구까지 약 3km 구간을 왕복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넓히기 위해 제주도는 공사를 시작했다. 삼나무 1000여 그루가 베이고 주변 식생이 초토화됐다.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를 막고자 생겨난 자발적 시민활동인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의 시민들이 나무를 끌어 앉고 기계톱과 중장비를 가로막던 그 기막힌 광경을 보고 ‘나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2018년부터 멸종위기종 애기뿔소똥구리 전문가 정밀 조사에 참여했다.
‘법정보호종 서식지가 없다’라는 환경영향평가서를 근거로 공사를 시작했지만 모두 엉터리였다. 조사 시기와 횟수, 방법 등 일반적으로 지켜져야 할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그저 공사를 위한 요식 행위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제주의 고유하고 다양한 동·식물종과 자연환경의 우수성은 이미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 자연유산, 세계 지질공원 지정 등 다양한 인증을 통해 확인됐다. 국제 인증을 받은 생물다양성 가치인 ‘제주 자연’을 내팽개치고 경제적 관심사와 정치적 권력욕을 앞세우는 제주도의 식견은 한참 떨어진다. 하늘이 내려 준 자연환경으로 인간과 생물의 조화를 통해 세계의 제주로 비상할 기회를 스스로 박차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더욱 한심한 일은 보고서를 점검하고 현장 상황을 확인, 파악해야 할 환경부가 공사를 승인했다는 사실이다. 백번 양보해서 처음에는 놓쳤다하더라도 재검토를 할 때는 멸종위기종에 대한 비전과 확실한 대책을 제시해야 했다. 공사에 따른 환경영향을 감시하고 실질적인 환경 훼손을 막고 멸종위기종을 지켜내야 할 환경부가 오히려 환경영향평가를 적당히 협의해 줌으로써 사업시행자들에게 공사의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그린워싱을 막는 주체인 환경부가 ‘그린 워싱’을 하는 환경파괴부로 인구에 회자되는 까닭이다.
제주도는 멸종위기종인 애기뿔소똥구리를 대체 서식지로 옮기고 추후 법정보호종 유입을 막기 위한 펜스 설치, 생태도로 설치, 도로 폭 축소를 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고 환경부는 승인했다.
제주도가 제출한 ‘대체서식지’는 무엇인가?
생물들이 지금 살고 있는 서식처도 낙원은 아니다. 아무런 방해 요소 없이 주위 환경과 영원히 조화를 이루는 ‘완전한’ 살 데란 있을 수 없다. 그나마 오랜 세월 계속 생존해 오면서 언제 태어나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짝을 만나 번식을 하며 또 천적을 피하는 방법을 터득해온 공간이 현재의 서식지다.
겨우겨우 적응해 온 서식 조건을 인간 마음대로 재구성하고 ‘가서 살아 봐, 괜찮을 거야!’를 주문한다고 생물이 잘 살아 낼 수는 없다. 검증되지 않은 적당한 기준치를 놓고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가 가진 짧은 지식과 한정된 조건을 제시하며 새로 만든 장소일 뿐이다. 대체할만한 서식처라는 말로 강제로 이주시키거나 생활공간을 파괴하는 행위는 이주를 가장해 생물종을 말살하는 것이다.
꿀벌이 사라진다고 큰 걱정을 하고 있지만 꿀벌 감소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꿀을 찾아 전국을 수시로 이동하는 것이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매일 매 시간 바뀌는 낯선 환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원하지 않는 이사를 수시로 다녀야 한다는 가정을 하면 인간의 입장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발적 분산이 아닌 강제 이주는 모든 생물들에게 목숨을 담보하는 위험한 도박이다.
필자는 2019년, 2020년 2차례에 걸친 조사를 통해 비자림로 공사 구간 전체에서 멸종위기곤충 애기뿔소똥구리를 총 172개체를 채집했다. 한반도 전역에서 가장 높은 밀도로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한 결과다.
이 결과를 근거로 2020년 제주대학교가 수행한 용역 보고서에 ‘멸종위기곤충 Ⅱ급인 애기뿔소똥구리가 워낙 높은 밀도로 서식하기 때문에 공사 자체가 불가하며, 비자림로 공사가 진행되면 서식 장소가 파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문가 의견을 의견으로만 처리를 했는지 이와 관계없이 공사는 재개되었다.
공사 구간의 멸종위기종인 애기뿔소똥구리를 포획해 공사 구간 밖 ‘대체서식지’에 방사하여 환경 영향 저감 대책을 이행했다고 밝힌 제주도의 말을 확인하고자 29일~30일 1박 2일간 시민들과 조사를 했다. 최적의 서식지에서 근거 없는 대체 서식지로 이주를 당한 애기뿔소똥구리는 과연 무사한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대체 서식지라는 곳은 애기뿔소똥구리를 위한 구체적인 환경과 생리, 생태에 맞게 특별히 조성한 곳이 아니라 수시로 방역을 하는 기존의 목장이었다. 소를 키우는 주인의 입장에서는 약을 치지 않을 수 없고 소에 뿌린 약은 농축되어 똥으로 함께 나와 소똥구리의 밥이 되니 소똥구리의 건강에 좋을 리 만무하다. 목장주의 허락을 받고 밤새 조사한 결과는 암컷 4개체, 수컷 4개체. 2021년도 약 2000여 개체를 옮겼다 하는데 참담한 결과다.
생물다양성, 멸종위기종 보전이 지속가능성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을 실천하는 국가의 가치관이 중요하다. 가치관은 일반적으로 ‘개인 또는 전체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의사결정의 판단 기준’을 말한다. 환경부 스스로 꼭 지키겠다고 지정한 '멸종위기종' 애기뿔소똥구리 보호는 뒷전이었다. 아마도 제주도에 호랑이라도 나타나야 국민적 관심과 국제적 눈치를 보느라 ‘멸종위기종’에 대해 신경 쓸지 모르겠다.
생물 종은, 특히 멸종위기종은 원한다고 늘릴 수 있고, 싫어하면 줄일 수 있는 종이 아니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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