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살아 있는 생명들이 진화한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유전 프로그램들이 새로운 환경 변화에 끊임없이 맞춰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적 스트레스에 적응하고 확산 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끝까지 생존할 수 없다. 끝내 살아남지 못할 생물들이 있다.
첫 번째 그룹은 지역적으로 격리되었거나 밀렵과 불법 거래 등 인위적인 위협으로 유전적 다양성의 크기가 작아진 집단으로 대립유전자의 상실 등으로 집단 생존 능력을 잃어버려 끝내 멸종될 그룹이다. 현재 야생에 남은 아프리카의 치타는 7500마리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정도 개체 수는 심각한 멸종 위기 상태임을 의미한다.
비록 다른 지역의 치타와 짝짓기를 해도 워낙 개체 수가 적어 잠재적으로는 형제, 자매인 혈연관계이므로 근친교배가 된다. 근친교배로 인한 생존 잠재력이 극적으로 감소하면서 번식률, 생존율은 곤두박질친다. 살아 있긴 하지만 이미 절멸의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보이고 10년 안에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암울한 예상을 하고 있다.
또 한 그룹은 먹는 것과 사는 곳이 극단적으로 한정되어있는 전문화 그룹이다. 중국으로 돌아간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는 국제자연보전연맹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종'으로 '대나무 숲의 은둔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깊은 골짜기의 제한된 구역에만 살아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동물이었고 영양분이 별로 없는 대나무 싹이나 줄기만 씹어 먹는다. 즉 먹이와 서식처가 극단적으로 한정되어있는 전문화된 포유류다.
더럽고 지저분한 다른 동물의 똥을 먹는 소똥구리는 더욱 전문화된 그룹이다. 동물의 배설물을 섭취한다는 사실은 다른 동물의 똥을 효율적으로 가공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다른 누구도 먹기 어려운 똥을 찾아다니며 먹는다. 푸바오가 먹는 대나무 싹이나 줄기, 소똥구리가 먹는 똥은 영양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성장을 위해서는 대량으로 섭취해야 한다. 전문화된 특정한 먹이는 독차지하는 이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민감한 단점도 있다.
정지용 시인 ‘향수’의 시구처럼 ‘넓은 들 동쪽 끝,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인 드넓은 초지가 소똥구리가 살 곳이다. 확 트인 방목지와 초지가 이들이 살기에 제격인데 점차 사라지면서 살 데가 만만치 않아졌다.
제한적인 먹이와 서식처 때문에 지나치게 전문화 된 자이언트 판다와 소똥구리 진화의 폭이 협소해졌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상실하고 생존의 유연성이 점차 떨어지면서 멸종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먹이를 바꾼다거나 살 데를 조금만 옮겨도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텐 데” 라는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갖고 있지만 그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진화는 불가역적인 과정으로 특수하게 발달 된 기관을 처음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냥 멸종의 길로 진행 중인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그나마 푸바오는 대중에 대한 호소력이 커서 연민을 유발하고 보호해주자는 운동이 있지만, 소똥구리는 전혀 관심이 없는 더러운 벌레일 뿐이다. 같은 등급의 멸종위기종의 보존 여부도 종의 생태적 역할이나 중요성이 기준이 아니라 사람이 결정(Anthropomorphism)하는대로 따르게 되므로 아마도 자이언트 판다의 멸종 속도가 더딜 것이다.
25년 전 소를 방목해 키우겠다고 동네 어른들께 자문을 구하자 “이장!(그 당시동네 이장을 맡고 있었다) 미쳤냐?” 그깟 벌레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다고 나무라기도 하고, “식구들(소) 제때 밥 챙겨주느라 여행은커녕 외출 한 번 편히 못한다”고 걱정을 해 주셨다. 농촌에서 가축 키우는 일은 질병을 데리고 사는 일이라며 고생 끝에 낙이 아니라 고생 끝에 병이 든다고 굳이 말리셨다. 어르신의 말씀 ‘진리’인줄은 알겠지만 소똥구리 키우겠다고 신선한 소똥을 구하려 이곳저곳의 방목지를 헤매며 애태우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어떠한 충고도 들리지 않았다.
방목지를 조성하고 소를 키우면서 서식처와 신선한 먹이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으니 이 방법밖에 없었다. 고달프더라도 세월을 거꾸로 돌려 옛 방식으로 풀어 놓고 까탈스러운 조건을 맞춰주며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멸종의 속도를 늦추려고 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삶의 질에 큰 변혁이 생겼다. 몸과 마음이 다 지쳐 멸종위기종 애기뿔소똥구리 명줄과 내 건강을 바꾸었다.
어느 날 뜬금없이 환경부가 '소똥구리 5000만원어치 삽니다' 공고를 냈다. 공고가 난 이후로 폭발적인 국민적 관심과 오해를 받았다. 과연 몽고에서 소똥구리를 도입하려는 목적과 명분이 무엇인지? 전문화된 특정한 먹이인 소의 똥과 확 트인 방목지와 초지를 제대로 준비는 해 놓고 시작하는지? 소똥구리를 20 년간 증식 해왔던 연구자로서 참 답답했다.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소똥구리가 발견된 것은 1971년. 학계에서는 40년 넘게 발견되지 않아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상황으로 파악하고 사실상 지역 절멸된 것으로 발표했다. 멸종위기종 증식, 복원할 종을 선별할 때는 미래의 적응력이 아닌 현재에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종을 선별하는 게 유리하며 보전의 의미도 크다.
실제적인 보전은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과학이다.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이미 멸종된 소똥구리를 굳이 몽고에서 수입하여 가져올 것이 아니라 아직 한반도에 살고 있는 멸종위기종 애기뿔소똥구리를 더 잘 살도록 노력해야 했다. 이와 병행하여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뿔소똥구리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게 맞다.
멸종위기종 증식, 복원은 환경부를 포함한 국민 대부분이 무관심한 데다 딱히 득 볼 일이 없고 힘 있는 부처가 아닌 환경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라 지지부진하기 일쑤다. 그나마 환경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멸종위기종 증식, 복원하는 연구자들이 신명나고 진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몇십 년 사력을 다해서 해 오던 일을 더 잘 될 수 있도록 협업하지는 못할망정 이론적 근거도 빈약한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면서 뒷북을 쳤다.
사라져가는 소똥구리를 살려내기 위해서 25년 애쓰면서 뚜벅뚜벅 걸어왔지만
아직도 길은 멀다. 고수에 명창처럼 죽이 척척 맞아야 그나마 아무도 관심 없는 멸종위기종 복원에 희망이 있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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