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의 새로운 기획시리즈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은 국내에 서식하는 주요 멸종위기종의 ‘현주소’를 알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종이든, 그렇지 않든 사라져가고 있는 종들이 처한 위기상황을 주로 드러내는 것이 목표다. 우리 바로 곁에서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는 사실과, 그 종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다. 공존과 멸종은 관심이라는 한 단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제 몸집보다 큰 뽀얀 집게발을 위아래로 들었다 놨다 쉴 새없이 움직인다. 영락없는 호객행위를 보는 듯하다.
이 독특한 행동에 숨겨진 뜻은 호객행위와 매우 유사한 의미라 해도 무방하다. 암컷을 집에 들이기 위해 유혹하는 수컷의 '구애춤'이기 때문이다.
흰발농게 수컷은 짝짓기 시즌이 되면 열심히 지어놓은 집 앞을 지키면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크고 깨끗한 집게발을 들어 올리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까다로운 암컷 눈에 들기 위해서는 집게발뿐 아니라 '세미돔(semidome)'이라는 구조물 역시 잘 치장해 둬야 한다. 구조물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암컷들은 대부분 구조물을 지어놓은 수컷을, 또 너무 작거나 과하게 큰 구조물보다는 몸집에 알맞은 크기 구조물을 만들어놓은 수컷을 선호한다.
끝이 아니다. 까다롭기로는 둘째가면 서러운 암컷 흰발농게 마음을 얻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1999년부터 흰발농게 연구를 시작한 인하대학교 해양과학과 김태원 교수에 따르면 흰발농게는 그 어떤 개체보다 까다롭고 예민하며 복합적이다.
김 교수는 "사람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하나의 기준만을 가지고 고려하지 않는 것과 같다"면서 "집 크기, 구조물 크기, 외형, 색, 심지어는 수컷 집게발이 깨끗한지 여부를 보기까지 한다. 사람이 외적인 부분 말고도 교육, 환경 등 여러 가지를 두고 고려하듯이 자그마한 이 녀석들 역시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배우자감을 선택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암컷 흰발농게는 마치 부동산에 집을 보러 다니듯이 수컷 집 수십 곳을 들락날락한다. 한번 방문한 곳은 다시 가지 않고, 한번 퇴짜를 놓았다 하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어찌나 까다로운 지 20년 넘게 흰발농게를 연구해 온 김 교수 역시 이들이 짝짓기 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례를 손에 꼽는다. 기후에 굉장히 예민해 비나 눈이 오면 전혀 활동을 하지 않을뿐더러 땅 온도가 약 20도 이상에 도달했을 경우에만 갯벌 위로 올라와 활동한다.
짝짓기뿐 아니라 서식지 기후에도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흰발농게를 최근 개발을 이유로 강제 이주시킨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었던 적도 있다. 전라북도 군산 선유도 이야기다.
지난해 군산시는 선유도해수욕장 개발 예정지에 서식하는 흰발농게 4만여 마리를 안전지대로 이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해수욕장 편의시설로 주차장을 확장한다는 이유였다.
해안개발로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2012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된 멸종위기종 흰발농게 서식지를 또다시 빼앗는다는 군산시 측 강제 이주대책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거세지는 논란에 군산시는 '흰발농게 이주작전'을 공개시연해 우려를 불식시키겠다고 단언했지만 이후 이주한 흰발농게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강제 이주 결과가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무 데나 옮겨놓으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주시킨 모양인데, 이러한 강제 이주 방안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아마 모두 죽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흰발농게는 매우 까다로운 종이다. 가는 모래가 있는 뻘 등 특정 위치에만 서식한다. 유생 때 바다에 살다가 알맞은 곳에 정착한 것인데, 이후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는 결국 죽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흰발농게는 갯벌 중에서도 조간대 상부에 서식하는 많지 않은 생물종 중 하나다. 몸집이 작아 중요하지 않은 생물이라는 편견은 완전히 틀렸다. 흰발농게는 포식자들 먹이자원으로 활용될 뿐 아니라 특화된 갯벌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사부' 역할을 한다. 갯벌에 굴을 파 유기물이 순환할 수 있게 돕는 '갯벌 건강'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갯벌 가운데서도 매립 때문에 빠르게 사라지는 지역은 대부분 조간대 상부다. 곳곳에 생기기 어려운 특화된 갯벌에 사는 건데, 이 특화된 지역에 살면서 물질순환 역할을 담당하는 생물이 바로 흰발농게"라며 "국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종인데 명확한 사후대책 없이 쉽게 이주시키는 것은 반대"라고 강조했다.
국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해양생물임에도 불구하고 인천 영종도 인근 식당에 밑반찬으로 오르는 황당한 경우도 가끔 포착된다. 영종도 갯벌이 전국 최대 흰발농게 서식지인 탓에 빚어진 결과라는 것.
김 교수는 "먹어본 사람들 후기에 따르면 쓴맛이 많이 난다고 한다. 분명한 건 맛이 어떻든 국가 지정 멸종위기종은 법적으로 포획 및 채취가 불가하다는 점이다. 설사 모르고 채취하더라도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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