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멸종위기종㉒] 신라시대 치장물에 전라도 '비단벌레'가 사용된 이유

  • 이후림 기자
  • 2021.09.26 00:05
비단벌레 (사진 천연기념물곤충연구센터 이대암 센터장 제공)/뉴스펭귄

뉴스펭귄의 새로운 기획시리즈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은 국내에 서식하는 주요 멸종위기종의 ‘현주소’를 알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종이든, 그렇지 않든 사라져가고 있는 종들이 처한 위기상황을 주로 드러내는 것이 목표다. 우리 바로 곁에서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는 사실과, 그 종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다. 공존과 멸종은 관심이라는 한 단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비단을 닮은 고운 빛깔, 각도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화려한 몸 광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예쁘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이 곤충은 우리나라 전라북도 변산반도, 내장산, 전라남도 해남 등지에만 극소수 서식하는 이름도 어여쁜 '비단벌레'다.

비단벌레는 2008년 천연기념물 제496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12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 2018년 1급으로 상향돼 보호받고 있는 심각한 멸종위기종이다.

깊은 산속 땅으로부터 약 30~40m 떨어진 나무 꼭대기에 주로 서식하는 데다 개체 수도 매우 적어 연구를 위한 채집은커녕 관찰조차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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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비단벌레 앞날개를 말 안장, 의복 등 치장물에 사용한 유물이 종종 출토될 만큼 긴 역사를 자랑하는 곤충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연구가 미미한 이유 중 하나다.

비단벌레 날개에 최음제와 같은 마약 성분이 있어 과거 여성들이 성적인 환심을 사고자 치마 장식 등 몸에 지니는 착용물로 애용했다고 하나, 전문가에 따르면 이는 미신일 뿐 크게 효과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황남대총 출토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된 안장틀 (사진 문화재청)/뉴스펭귄
안장틀 복원품 (사진 문화재청)/뉴스펭귄
비단벌레 날개를 사용해 만든 유물 복원품 (사진 문화재청)/뉴스펭귄

화려한 비단벌레 날개를 사용해 만든 과거 유물들을 살펴보면 유물에 사용된 이들 사체 수가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발견된 일부 유물에는 1점 당 비단벌레 최소 1000마리 이상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 평가다.

이에 자칫 과거 한반도에 개체 수가 많았을 것이라 추측하기 쉽지만, 따뜻한 열대지방에 주로 서식하는 비단벌레 특성상 물물교환 등을 통해 주변 국가들에 공급받았을 가능성이 보다 높다.

비단벌레는 전문가가 직접 찾아 나서도 좀처럼 관찰이 어려울 만큼 국내 개체 수가 많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포착조차 어려운 비단벌레는 절 주변에서만 드물게 관측된다. 이들이 아주 오래된 팽나무에만 한정적으로 서식하기 때문이다. 절에는 오래된 팽나무들이 소수 남아있는 덕에 내소사, 개성사 등 절 주변 산속에서만 드물게 발견된다.

비단벌레 (사진 문화재청)/뉴스펭귄

오래된 나무를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으로 간주해 모두 밀어버리고 새 나무를 심는 등 서식지를 훼손하는 행위는 이들 개체 수를 줄이는 주요인이다.

국내 유일 비단벌레 인공증식에 성공한 천연기념물곤충연구센터 이대암 센터장에 따르면 안 그래도 한정적인 서식지가 빠르게 사라지는 탓에 비단벌레 야생 생존 가능성은 걷잡을 수 없이 감소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24일 뉴스펭귄에 "비단벌레는 주로 오래된 사찰 안 고산목에 사는데 요즘 사찰들이 주차장이나 건물을 짓는다고 나무를 베어버린다. 썩은 나무는 더더욱 1순위로 밀어버린다. 나무속에 서식하던 비단벌레 애벌레들은 당연히 죽게 된다"면서 "그렇다고 사찰 재산을 우리 마음대로 베지 말아라, 혹은 벤 나무를 가져다 달라 할 수 없지 않나. 암담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비단벌레 (사진 문화재청)/뉴스펭귄

인공증식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사육과 번식이 어려운 개체 특성상 증식 또한 쉽지만은 않다. 

국내 최초 장수하늘소를 인공시설에서 우화시켜 해당 장면을 포착한 이 센터장도 비단벌레 증식이 장수하늘소 증식보다 2배는 더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 센터장이 마주한 수많은 곤충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예민한 개체다.

인공환경에서도 짝짓기와 알을 낳는 등 번식 행위만큼은 문제없이 잘하는 장수하늘소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장수하늘소와 달리 비단벌레는 인공적인 환경 내에서 좀체 짝짓기도 하지 않고 알도 낳지 않는다. 심지어는 인공환경에서 짝짓기를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한다.

야생에서 관찰하기도, 그렇다고 인공환경에서 연구하기도 어려운 비단벌레는 알에서부터 성충이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조차 추측만 가능할 뿐, 정확하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대암 센터장은 "일정하지 않지만 알에서 성충이 될 때까지 최소 3년 이상은 걸리는 것으로 보고됐다"면서 "연구에는 전혀 맞지 않는 곤충이다. 한 마디로 '망하는 아이템'이다. 성충이 될 때까지 몇 년이 걸리는 지도 모르고 나무 안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돈도 안되는 이런 연구를 누가 하겠나"라고 말했다.

영월곤충박물관에서 보호 중인 비단벌레 (사진 '다흑' 유튜브 영상 캡처)/뉴스펭귄

나무진을 갉아먹고 사는 비단벌레는 한때 삼림에 피해를 주는 해충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비단벌레는 살아있는 나무가 아닌 죽어가고 있거나 이미 죽은 나무에만 알을 낳고 서식한다.

이 센터장은 "사실 특정 곤충을 해충이라고 지정하는 개념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비단벌레는 그저 2억 5000만 년 전부터 하던 대로 살아갈 뿐이다. 팽나무 외 다른 나무는 잘 먹지도 않는다. 안 그래도 개체 수가 적은 이들이 이것 조금 먹는다고 해서 나무가 사라지겠나. 또 먹으면 얼마나 먹겠나"라고 토로했다.

이어 "명백한 멸종위기종인데 복원하려는 국가적 노력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면서 "오래된 나무도 어떤 생물에게는 유일한 서식지일 수 있다. 정부는 지금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면서 오래된 나무를 베고 어린 나무를 심는 것에 집중한다. 새로 심는 나무도 물론 중요하지만 오래된 나무도 생물에게는 꼭 필요하다. 오래된 나무에 딸린 많은 식구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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