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의 새로운 기획시리즈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은 국내에 서식하는 주요 멸종위기종의 ‘현주소’를 알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종이든, 그렇지 않든 사라져가고 있는 종들이 처한 위기상황을 주로 드러내는 것이 목표다. 우리 바로 곁에서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는 사실과, 그 종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다. 공존과 멸종은 관심이라는 한 단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불가사리는 눈도 없는데 나팔고둥이 근처에 나타났다고만 하면 어떻게 아는지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요" 국립생물자원관 유전자원정보관리센터 길현종 박사가 말했다.
대형 복족류 나팔고둥은 살금살금 불가사리 뒤로 침투해 발을 크게 벌린 뒤 불가사리를 감싸 안고 작고 빽빽한 이빨을 사용해 불가사리를 갉아먹는다.
제아무리 도망친다 한들 육식성인 나팔고둥 사냥 본능에는 속수무책이다. 눈은 없지만 눈치는 빠른 불가사리라도 국내에 서식하는 최대 크기(20cm) 복족류 나팔고둥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사냥 상대가 못 된다.
나팔고둥은 불가사리 중에서도 특히 빨강불가사리를 유독 좋아한다. 이렇게 사냥한 불가사리를 섭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3시간. 보통 하루에 1마리 이상을 섭취한다.
바다생물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해양생태계 공식 '퇴치대상'으로 알려진 불가사리 유일한 천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생물종이지만 환경부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에 지정된 멸종위기종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원인으로는 무분별한 남획이 꼽힌다. 패각이 큰 데다 생김새가 아름다워 성체 남획이 만연했을 뿐 아니라 과거 식용으로도 사용되곤 했다. 이에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현재 국내에서는 주로 제주와 남해 등지 한정된 해역에만 분포한다.
길현종 박사에 따르면 이들이 제주에서 주로 서식하는 이유는 주요 먹이원인 빨강불가사리가 해당 지역에 풍부하기 때문이다.
또 나팔고둥은 덩치가 큰 탓인지 큰 자갈과 바위가 있는 곳을 좋아한다. 제주 바다가 이들이 서식하기 매우 적합한 장소로 꼽히는 이유다.
제주 많은 지역이 대부분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덕에 서식지 보호는 꽤 수월한 편이다.
'나팔'고둥이라는 특별한 이름은 생김새가 나팔 모양으로 생겨 붙여지기도 했지만 실제 과거 전통악기 '나각'이라고 하는 나팔로 사용되면서 명명됐다.
길 박사는 "과거 국가행사 등에서 나팔로 주로 사용됐다. 아주 묵직하고 낮은 음이 난다"면서 "언제부터인지 확실치 않지만 최근 열리는 국가행사 등에는 나팔고둥이 열대에 서식하는 대형종 '장군나팔고둥'으로 대체됐다. 궁궐 경비병 교대식이나 군악대인 취타대 연주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국가 행사에 전통악기로 사용될 만큼 우리 문화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국민 관심은 여타 생물종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사실 나팔고둥뿐 아니라 대부분 멸종위기종은 모두 비슷한 처지에 처해있다. 복원 등 보전이 당장 경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진 탓이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것은 국내 멸종위기종만을 담당하는 기관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인력과 예산이 충원됐고, 이에 따라 자료 역시 비교적 빠르게 축적되면서 상황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길 박사는 "나팔고둥같은 대형 연체동물은 그 존재 자체로 불가사리 개체 수 조절 등 바다 저서생태계 포식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며 "이러한 종이 사라진다면 대체 가능한 종이 없어 복잡한 먹이사슬로 이뤄진 생태계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보전 중요성과 국민 관심을 강조했다.
이어 "생태계 균형이 무너지면 조절할 수 있는 자연적 기능도 사라진다. 많은 생물종 유지는 그래서 중요하고, 나팔고둥처럼 큰 생물의 경우 육상에서 호랑이나 반달가슴곰처럼 그 역할도 더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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