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정규 생태심리연구소 소장.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장이정규 생태심리연구소 소장.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장이정규 생태심리연구소 소장은 천문학을 공부한 생태심리학자다. 천문학에서 심리학까지 이어진 길 위에는 기후위기라는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 

그가 기후위기의 위험성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건 대학교에서 천문기상학을 공부하면서다. 온실효과와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배운 것인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임계점을 넘어가면 온도 상승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그 결과 지구가 금성처럼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금성은 대기가 이산화탄소로 두꺼워져서 표면 온도가 섭씨 460도에 달한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이 재앙을 너무 먼 미래의 일이라고 여겼지만, 그에게는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존재론적 위기를 느끼는 경험”이었다. 이때의 충격은 지금도 그의 명함에 새긴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보여주는 그래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떤 설명보다도 직관적으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과학이 원인을 밝히면 사람들도 바뀔 거라고 믿었지만, 원인이 인간에게 있음이 분명해진 지금도 사회는 바뀌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과학이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면, 무엇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이 그를 생태심리학으로 이끌었다. 생태심리학 안에서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 대응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를 파주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138억 년의 이야기에서 길을 찾다

장이정규 소장은 생태심리학을 ‘심리학의 생태화, 생태학의 심리화’라고 배웠다. 전통 심리학이 주로 개인과 원가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면, 생태심리학은 외부 환경의 테두리를 생태계로까지 확장해 이해한다. 

“심리학은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환경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숨을 쉬고, 먹고, 내보내는 모든 과정이 자연과의 교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자연과 분리된 독립된 존재로 상정하며 살아간다.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장이정규 소장은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고립시키는 파괴적 서사라고 말한다. 

그가 생태심리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작업 중 하나는 파괴적 서사를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과 분리돼 있다는 믿음, 그 오랜 문화적 이야기들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집단의 서사를 바꾸는 작업’이다.

장이정규 생태심리연구소 소장.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장이정규 생태심리연구소 소장.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우주 진화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다른 생명체에서 진화해 왔고 그 생명체들은 빅뱅에서 만들어진 별에서 생긴 물질로 이뤄져 있어요. 우리 안에 138억 년의 긴 역사가 있고 우주의 일부이고, 모든 존재가 같은 기원에서 생겨나왔어요. 이 사실에서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걸 알 수 있죠. 그리고 팽창하는 우주에선 모두가 우주의 중심이에요.”

그는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어 있다는 서사가 아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다양한 방법을 과학의 언어로 모색하고 있다.

고양이와의 교감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반려묘와 함께 생활하며 동물의 생태를 관찰하고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과 경계를 면밀히 살핀다. 반려묘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돌아보고 온전히 함께 있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외로웠던 자기 안의 아이와 마음을 돌아보게 된 것도 교감을 통해서였다. 

“고양이는 애정이 필요하면 다가오고, 싫어지면 휙 가죠. 자신의 경계를 분명히 해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생태심리학은 인간 중심이 아닌 비인간 존재에 주의를 기울이며 생태를 관찰하고, 거기에 내 마음을 비추는 작업이다. 인간의 감각과 동물성을 회복하는 것이 곧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며, 이는 생태심리학과 에코페미니즘이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둘 다 억압과 분리, 위계 구조를 문제 삼고 치유와 연결을 지향한다.

“우리가 자연과 분리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그의 말은 곧, 우리가 스스로의 본성과도 분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분리에서 비롯된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은 ‘나’와의 연결이다.

장이정규 소장은 “우리가 먼저 나 자신과 연결되어야 다른 존재들과도 관계 맺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몸과 꿈을 그 신호를 감지하는 중요한 통로로 본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정직하다. 그래서 그는 두통이나 소화불량이 생기면 내면의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먼저 살핀다고 한다.

기후위기 이야기할 공간 부족...기후우울과 연결의 필요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은 이제 특정 집단의 관심사가 아니다. 특히 오늘날 청년 세대는 자신의 미래와 기후위기를 동등하게 체감한다. 과거엔 먼 미래라고 여겼던 문제가 지금은 각자의 생애 안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시기에 위기감이 더해졌지만, 국내에는 이야기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영국에는 기후위기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들의 모임이 활성화돼 있지만, 한국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그는 재작년 여성환경연대와 진행한 ‘기후우울의 파도타기’ 프로그램에 대해서 얘기하며 참여자들이 가장 위로받은 순간은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를 느꼈을 때였다고 전했다. 

“그때 예로 든 게 황조롱이가 사냥을 위해서 정지 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제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그곳에 머물기 위해 쉼 없이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이 사실을 서로 알아주는 일, 그 자체가 위안이자 힘이 돼요.”

그는 인터뷰 중 뒤에서 까만 그림자가 따라오는 한 장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슬픔을 회피하지 않는 것도 생태 전환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사진 장이정규 소장)/뉴스펭귄
(사진 장이정규 소장)/뉴스펭귄

“슬픔이나 애도라는 감정을 피해서 계속 도망치면 이 감정이 점점 커져 결국 우리를 집어삼켜요. 결국 무감각, 무감정, 우울의 상태로 들어가요. 하지만 돌아서서 ‘너 거기 있었구나’ 하고 바라보면, 그 감정은 동무가 돼 같이 갈 수 있게 돼요.”

그는 이것이 심리학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감정은 알아주고 마주했을 때 비로소 작아지고 함께 갈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울컥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밑 마음은 나를 살리기 위한 거예요. 슬픔의 밑 마음도 언제나 사랑이에요. 우리가 아프다는 건, 결국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변화는 3.3%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런 개인의 감정 변화와 성찰이 어떻게 사회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는 먼저 우리가 자주 가지는 의문, ‘나 하나 한다고 뭐가 바뀌겠어?’라는 물음표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가 용기를 얻은 건 폴 레이·셰리 루스 앤더슨이라는 사회학자와 심리학자 부부가 쓴 『세상을 바꾸는 문화 창조자들』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책에는 주류 가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즉 ‘연결의 서사’를 선택한 이들이 사회 전체의 3.3%만 되어도 변화가 시작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규분포 곡선의 한 쪽 날개 정도에 해당하는 이 3.3%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전부 바꿀 필요가 없어요. 단지 이쪽 끝의 사람들이 한 발짝만 더 내디뎌주면 돼요.”

또 하나 그에게 힘을 주는 개념은 ‘형태발생장’이다.

부모 세대의 경험이 자식 세대에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전달돼 그들의 길을 더 쉽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분리의 세계관에서 연결의 세계관으로 옮겨가는 한 발을 떼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죠.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지금 나의 노력으로 나 다음에 오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쉬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뭘 해야 할까? 그는 행위(doing)보다는 내가 현재 어떻게 존재(being)하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가 어떤 존재로서 행동하느냐가 같이 가야 하는데, 주로 ‘doing’에만 집중함으로써 문제가 생기는 면도 있거든요. 내가 어떤 상태인지 먼저 알아야 자기 돌봄이 가능해지고, 내가 건강해야 밖으로도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거잖아요. 결국 우리 각자가 자신의 ‘우주’를 잘 돌보는 일이 전체를 위한 일이 되는 것 같아요. 나 자신과의 연결에서 시작해 타자와 세계로 뻗어나가는 감각을 회복하는 거죠.” 

에코페미니스트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

Q1. 우리 사회의 고장난 풍경

우리는 시험을 잘 봤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전체를 평가하거나,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여기는 풍경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학력이나 재산이 곧 인간의 가치라는 식의 사고는 결국 ‘분리주의’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그건 지혜나 삶의 통찰과는 다른 영역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천문학자이지만 그건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조금 더 많은 것뿐이에요. 가사노동처럼 경제적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경제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됩니다. 깨끗한 시냇물을 마시는 사람은 경제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보고, 그 물이 내려가면서 오염돼 정화해 플라스틱병에 담은 물을 사먹는 사람은 경제에 기여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경제라는 개념의 허상을 알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건 깨끗한 시냇물을 회복하는 건가요, 플라스틱병을 강화하는 건가요.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더 많은 ‘소비’가 아니라, 더 나은 ‘관계’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Q2. 기후위기와 동물 관련 최근 관심사

얼마 전 도요새 가족이 논길을 걷는 사진이 보도됐는데 그걸 보며 참 행복했어요. 우리나라의 갯벌은 도요물떼새에게 무척 중요한 기착지입니다. 뉴질랜드, 호주, 동남아에서 이동하는 새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거든요. 예전에 뉴질랜드에서 새 모니터링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곳은 새 종류가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을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하루에만 40종 이상 보는 날이 많아요. 그만큼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그런 갯벌을 막고 공항을 짓는 건 정말 위험한 선택이에요. 새만금은 해수 유통이 다시 돼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만금 신공항, 가덕도 신공항 모두 기후비상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새만금은 조류 충돌 가능성이 비행기 사고가 있었던 무안보다 훨씬 높아요. 공존을 위한 계획이 빠져 있는 개발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손해입니다.

Q3. 생태심리학과 에코페미니즘으로 만들고 싶은 우리 사회의 모습

‘타자’라고 하면 아직도 사람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타자는 비인간 존재도 포함합니다. 인간 외 존재들 역시 살아갈 권리, 번성할 권리가 있고 그런 욕구도 있어요. 중요한 건 내가 원하니까 하는 게 아니라, 상대 존재와의 상호성을 인식하는 겁니다. ‘너와 나 따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는 감각,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인식의 변화가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가장 깊은 전환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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