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5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에코페미니즘 공유공간 ‘플랫폼 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야기 중인 와타나베 이타루·와타나베 마리코 부부.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지난 6월 25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에코페미니즘 공유공간 ‘플랫폼 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야기 중인 와타나베 이타루·와타나베 마리코 부부.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2014년, 일본 시골빵집 주인이 쓴 책 한 권이 조용히 사회를 흔들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제도와 관습에 대한 거대한 이론이 아닌, 자연 속에서 얻은 실천의 철학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책의 저자인 와타나베 이타루는 ‘썩지 않는 돈’이 순환을 멈춘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라고 지적한다. 흙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돈, 끝없이 증식만을 요구하는 자본은 발효가 아닌 부패의 방향으로 세상을 밀어간다.

그가 선택한 해법은 발효였다. 균이 주도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빵을 굽고, 수익보다 공존을 우선하는 삶의 방식을 실험했다. 이스트와 첨가물이 없는 천연 발효 빵을 만들고, 가능한 한 손으로 직접 만들고, 이윤은 남기지 않았다. 균이 살아 숨 쉬는 방식과 인간의 노동, 삶의 형태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빵을 통해 증명한 것이다.

책을 출간하고 8년이 지났을 무렵 와타나베 이타루·와타나베 마리코 부부는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자리를 옮긴 소식을 또 다른 책 『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을 통해 전했다. 부부는 돗토리현의 산골 ‘지즈초’에서 빵을 대신해 맥주, 그것도 유산균을 활용한 발효 맥주라는 또 다른 실험을 시작했다. 

(사진 더숲)/뉴스펭귄
(사진 더숲)/뉴스펭귄

대량생산과 표준화를 강요하는 기존 산업 구조 속에서 그들은 ‘맛있는 것’이 아닌 ‘유일한 것’을 만들겠다는 선언으로 유산균 발효라는 비주류 기술을 택했다. 그것은 시장에 다양성을 되돌리는 일, 다시 말해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였다.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누룩균을 들여다보며, 이들 부부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균이 인간 활동을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것. 공기가 맑을 땐 초록색 누룩균이, 사람이 많이 오가면 회색 곰팡이가, 농약을 뿌린 뒤엔 어김없이 검은 곰팡이가 피었다. 균은 우리가 만들어낸 환경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의 근거다. 

이러한 철학은 최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6월 25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에코페미니즘 공유공간 ‘플랫폼 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와타나베 부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반려동물이나 식물도 함께 사는 사람의 기분이나 상태에 영향을 받듯 균도 마찬가지예요. 조건을 맞추기 위해 여러 번 이주했어요. 균과의 관계도 결국 사람이 중심입니다.”

이들은 ‘균의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생명마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발효는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과정이라는 것.

자연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배우고, 사람 중심이 아닌 ‘관계 중심’의 세계관으로 나아가는 와타나베 부부의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사람이 목숨을 유지하려면 자기 외의 존재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책을 통해 던지는 저자의 질문에 균은 이렇게 답하는 듯하다. 파괴가 아닌 순환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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