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을 처리하는 노동은 도시의 위생과 안전을 지탱하는 필수 기반이다. 그러나 이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안전 사각지대 속에서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들의 열악한 실태를 고발한 여성환경연대의 연구에 이어 지난 7월에는 폐기물 처리노동자 안전기준 강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려 문제를 진단하고 제도적으로 풀어내기 처방전이 제시됐다.
여성환경연대 조사에 따르면, 재활용업체 절반 이상이 상시근로자 5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이다. 이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망에서도 벗어나 있고, 안전 교육·휴게실·샤워실 같은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한 현장 노동자는 “매일 지뢰밭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는 긴장감 속에 버틴다”고 호소했다.
설문조사에서 노동자들이 꼽은 주요 위험은 분진(62.5%), 악취(58.2%), 더위·추위(49.4%)였다. 무엇보다 응답자 전원이 베임·찔림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는 깨진 유리, 주삿바늘, 날카로운 캔 조각이 섞여 있고, 음식물 부패로 인한 세균과 곰팡이, 유해가스가 뒤섞인다. 여름엔 40도에 가까운 더위, 겨울엔 찬바람 속에서 장시간 일하며 근골격계·호흡기 질환은 흔한 직업병이 됐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기본권”
지난 7월 8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폐기물처리 노동자 안전기준 강화 토론회’는 이 같은 현실을 직접 드러낸 자리였다. 여성환경연대와 국회의원실(용혜인·이용우·전종덕·정혜경), 전국환경노동조합이 공동 주최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직접 하남 환경기초시설에서 선별작업을 체험한 경험을 전하며 “분진과 파편, 악취, 유해가스가 뒤섞인 환경에서 몇 분만 서 있어도 허리가 아프다. 투명인간 취급받는 노동자들이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코로나19 이후 폐기물 폭증으로 노동강도가 높아졌음을 언급하며 “평균 연령 55세 여성 노동자들이 보호구도 없이 일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진보당 전종덕 의원은 폐기물 노동을 “기후위기 대응과 자원순환 경제의 핵심 인프라”라고 규정하며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이 보장될 때 비로소 자원순환 경제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정혜경 의원 역시 “정의로운 전환은 재활용 선별장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 보장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여성건강팀장은 법·제도의 사각지대를 짚었다. 악취방지법은 주민 민원 중심으로 설계돼 정작 작업장 내부의 악취 문제는 방치돼 있고, 산업안전보건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항주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폐기물관리법에 선별·재활용·소각·매립 전 과정의 안전기준 신설, 악취·다이옥신·총부유세균을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인자에 포함, 민간 위탁업체 선정 기준에 노동자 안전 이행 배점 강화 등 구체적 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박 위원은 “악취와 화학물질, 세균이 노동자의 몸을 직접 파고드는 현실에서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기본권”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직영·공영화가 근본 대안, 보호구 지급 체계 재정비 등 법적 가이드라인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국환경노동조합 박진덕 위원장은 “재활용 노동은 단순노무가 아닌 전문직임에도 임금은 최저 수준에 묶여 있다”며 “정규직 전환과 법적 가이드라인 마련”을 촉구했다.
물리적 위험만 산업재해? 악취·정신적 피로는 제도 밖
그렇다면 해외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을까? 여성환경연대 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WISH 포럼’을 운영하며 폐기물 산업 전반에 20여 개 세부 안전 지침을 마련, 현장에 적용한다. 미국은 환경청(EPA)이 노동부와 정보를 공유하도록 의무화해 부처 간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독일은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기업이 노동 조건을 평가할 때 신체적 위험뿐 아니라 심리적 스트레스까지 반영하도록 포함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물리적 위험만을 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악취·정신적 피로는 제도 바깥에 놓여 있다. 국내 법제는 여전히 노동자 안전보다 폐기물 시설 설치나 재활용률에 치중돼 있다. 악취방지법은 주민민원 해결 중심으로 설계돼 작업장 내부 악취 문제는 외면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상시근로자 5명 미만 영세업체에는 적용되지 않아,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규모 재활용 사업장 노동자들이 법적 보호에서 배제된다. 특수건강진단 항목에는 악취 등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노출되는 주요 유해 물질이 빠져 있어 노동자 건강을 실질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 말 ‘폐기물처리 노동자 안전기준 강화 법률안 제안 연구’를 발표하며 법·제도적 의무 강화, 안전기준 구체화, 독일처럼 심리적 스트레스까지 포함하는 등 노동 조건 평가 확대, 지자체 주도 안전보건위원회 운영 및 실태조사 정례화 등을 제안했다.
현재 우리나라 법과 제도는 자원순환 선별 노동자들을 보호하기에 부족한 면이 많다. 악취와 유해물질, 과로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안전기준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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