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시인.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나희덕 시인.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인간은 자연 앞에서 더 수동적이어야 합니다.”

나희덕 시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했다. 그가 말하는 ‘수동성’은 무기력함이 아니다. 자연의 자기회복력을 신뢰하며 인간의 개입을 늦추는 태도다. 올해 산불이 난 안동의 천년고찰 고운사가 절을 인공 복원하지 않고 자연 복원을 택한 사례를 보며 그는 “문명 속도를 늦추고 자연의 질서가 회복될 시간을 주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신촌에 위치한 책방 ‘밤의 서점’에서 그를 만나 멸종과 기후 위기 시대, 우리의 안과 밖에서 회복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이야기 나눴다. 

흙, 생명의 은유에서 불모의 상징으로

프랑스의 시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인간의 물질적 상상력이 ‘물, 불, 공기, 흙’이라는 사원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봤다. 시인이나 작가에게는 이 네 개의 물질 중 시연성을 가진 것이 있다고 했는데, 나희덕 시인에게는 흙이 시적 상상력의 동력을 얻는 물질이었다. 

그에게 흙은 오랫동안 중요한 상징적 시어였다. 등단작 <뿌리에게>에서 흙은 생명을 키우는 자양분이자 자연의 순환 질서를 품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가 시를 써온 36년 사이 흙은 점점 마르고 불모화되고 오염된 모습으로 변했다. 그 변화의 배경에는 에코페미니즘이 문제 삼는 세 가지, 자본주의·과학기술·가부장제가 있었다. 

“흙을 착취하고 과잉 생산·소비하는 구조,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가부장제, 기계농업과 화학비료가 남긴 오염... 이 모든 것이 흙의 세계에도 드러납니다. 이러한 문제는 인류의 활동이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친 시대를 지칭하는 ‘인류세’의 지층에도 고스란히 나타나요. 인류세의 지층에 박힌 플라스틱은 지금 시대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흙에서 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지만, 이를 망각한 채 흙을 투기와 상품으로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 시인이 스무 살 때 부르던 생명과 사랑의 노래가 긴 세월을 거치며 슬픔의 노래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자연과 세계가 변하면 그것을 노래하는 시도 변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 신화에서 농업과 풍요의 여신인 데메테르가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딸을 빼앗기고 분노와 절망에 빠져 대지를 불모의 땅으로 만들어 버리며 불렀던 슬픔의 노래처럼, 제 시는 파괴되어 가는 대지와 상실을 노래하는 비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죽은 존재들을 애도하는 망곡, 슬픔의 노래요.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나치의 폭력 속에서 더 이상 서정시를 쓸 수 없다’고 말했는데, 정치적 폭력뿐 아니라 훼손된 자연과 병든 자연 앞에서도 서정시를 쓰는 일은 허구에 가까운 일인 것 같아요.”

나희덕 시인은 우리가 다시 흙의 세계에 연결되려면 ‘수동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나희덕 시인은 우리가 다시 흙의 세계에 연결되려면 ‘수동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복구보다는 기다림...자연 앞에서의 수동성

흙과 단절된 지 오래지만, 우리가 다시 흙의 세계에 연결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는 ‘수동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가지는 무너진 질서를 인위적으로 바로잡겠다는 능동적 의지 자체가 자연에는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더 수동적일 필요가 있어요. 가이아(대지)는 자기조절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인간이 덜 개입하고 문명 개발 속도를 늦추면 스스로 회복합니다. 자연재해 발생 이후 복구할 때도 인위적 방책보다 자연이 질서를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맞습니다.”

세상에는 데이터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존재와 생존 원리가 있다. 시인은 이 존재들 사이에서 관계성을 발견하고 언어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시는 읽는 이의 마음에 가닿아 감수성을 바꾸고, 존재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꾼다. 물질과 생명에 대한 시인의 탐구는 그래서 감수성의 혁명을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개인의 감수성 변화는 시대 감수성 변화로 확장된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했어요. 존재들이 이미 여기 있다는 것을 환기하고 바라보게 하는 것이에요. 지렁이에 대한 시를 읽고 지렁이를 보면, 이전과 달리 머뭇거리게 되고 제대로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의 동의어에 가깝습니다.”

내 안의 원주민을 지키는 일

그는 시인을 현대문명 속의 원주민에 비유했다. 정확히는 원주민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최근 베트남에서 소수민족들이 나무나 돌로 만든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들었어요. 새나 바람 소리에 가깝거나 맹수를 연상시킬 만큼 강렬했어요. 자연의 지형을 닮은 음악들을 들으면서 부러웠어요. 우리는 고유한 토속 문화가 빨리 폐기되고 서울 중심으로 획일화되었잖아요. 다양한 문화와 생물다양성이 살아있는 세계, 내 안의 원주민적인 것이 살아있는 세계를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말하는 ‘원주민적’ 감각은 우리 DNA 속에서 오랜 시간 견뎌온 것, 자연과 직접 접촉하며 교감하는 능력이다. 

시인은 그 살아있는 감각을 통해 많은 존재와 접촉하고 교감한다. 그는 대상을 관찰하거나 몽상하는 상상력은 일종의 ‘효모균’에 빗대었다. 빵을 만들 때 효모가 필요한 것처럼 시인의 상상력이 균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발효가 잘되면 빵이 맛있어지듯, 시인의 감수성에 따라 대상이 새롭게 발효된다는 의미다.

나희덕 시인에게 에코페미니즘은 기후위기 시대의 비판적 사유이자 실천의 토대다.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나희덕 시인에게 에코페미니즘은 기후위기 시대의 비판적 사유이자 실천의 토대다.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에코페미니즘적 탐구가 담긴 열 번째 시집

나희덕 시인에게 에코페미니즘은 기후위기 시대의 비판적 사유이자 실천의 토대다. 과거 ‘낡았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지만, 그는 “요즘의 급진적 페미니즘은 오히려 에코페미니즘”이라고 말한다. 

“처음 에코페미니즘 이론을 자각하게 해준 건 마리아 미즈와 반다나 시바가 쓴 《에코페미니즘》 책이었어요. 최근에는 그레타 가드의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사유가 분명해지고 집중적으로 알게 된 건 여성환경연대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를 만나면서예요. 최근에 출간한 《시와 물질》은 에코페미니즘적 시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와 물질》은 나희덕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다. 시의 무대 중심에는 거미불가사리, 지렁이, 닭, 버섯 등 비인간 존재들이 등장하고,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 발 플럼우드 《악어의 눈》, 전시 <물구나무종 선언> 등 다양한 예술과 사유가 녹아 있다. 

“아홉 번째 시집까지 주로 인간에 대해서 노래했다면, 이번 시집은 비인간 존재들을 이해하고 관계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해보자는 생각으로 썼어요. 책과 논문을 찾아보고 최대한 인간 중심적 시선을 내려놓으려고 했어요. 존재가 자기 말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고, 비인간 타자를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동물 되기’, ‘식물 되기’를 시도했어요.”

그에게 에코페미니즘적 감수성은 처음 시를 쓸 때부터 존재했다.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철학적 기반이나 이론적 자각이 없었을 때부터 그의 시에는 생태적 감수성, 여성 시인으로서의 정체성,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저희 어머니가 보육원에서 총무로 일하셨는데, 그래서 성장기를 보육원에서 보내며 집단생활을 했어요. 그런 경험 때문인지 공동체 지향이 강한 편이에요. 이번에 베트남에 갔을 때 학생들이 제게 ‘작품 세계를 세 단어로 압축하면’이라는 질문을 했는데, ‘여성, 환경, 연대’였어요. 여성성, 생태성, 공동체 문제는 제 성장기부터 지금까지 시를 관통해온 주제였어요.”

<에코페미니스트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

Q1. 우리 사회의 고장난 풍경

과거에는 궁금하면 네이버에 물어봤는데, 요즘은 챗GPT에 물어보죠. AI가 실용적인 영역을 넘어서 예술 창작의 주체가 되었는데, 틀린 답변과 평균적인 결과물이 많아요. AI 의존이 심해지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능력이 퇴화할까 우려됩니다. 실제로 AI를 이용할 때와 아닐 때 뇌 활성화가 다르다는 연구도 나왔는데요. 도구는 적절한 수준에서 멈춰야 하는데 제어할 주체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제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한 것 같아요.

Q2. 최근 주목하고 있는 사회적·생태적 이슈

기후 문제입니다. 이미 ‘기후소설’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고, 시단에서도 ‘기후시’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어요. 기후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 것 같아요. 도식화할 수 있고 소재주의에 빠질 수 있어 장르로 규정한다는 것이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지만, 그만큼 모든 예술 영역에서 기후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어요. 저는 《기후위기 행동사전》 개정판 집필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20명 정도의 필자가 자기 분야를 맡아서 일종의 기후위기 교과서를 만드는 건데, 제가 맡은 분야는 기후문학, 기후예술입니다. 예술가들에게 기후 문제는 중요한 주제이고, 앞으로도 그런 부분을 더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Q3. 생태문제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게 시의 역할

2022 교육과정 개편으로 제 시와 수필이 교과서에 많이 실렸습니다. 왜 갑자기 더 많이 실렸을까 살펴보니, 생태적 감수성이 교육과정 전체의 큰 키워드가 되었어요.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청년층이 제 시를 배우고 시험도 보며 독자로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한편으로는 교과서에 나오는 시로 좁혀져서 인식될까봐 걱정되기도 해요. 젊은 세대는 환경 이슈와 생태적 문제에 우리 세대보다 민감해요. 다만 그 접근이 유행처럼 다뤄지거나 자기 윤리성에 대한 표현 패턴으로만 이뤄질까 걱정도 돼요. 모든 생명과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연대, 근본적인 감수성의 변화로 확장되길 바라고 시가 그 변화의 통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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