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선별장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폐기물을 선별하고 있다. (사진 여성환경연대 _촬영 손용훈)/뉴스펭귄
재활용 선별장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폐기물을 선별하고 있다. (사진 여성환경연대 _촬영 손용훈)/뉴스펭귄

우리가 버린 폐기물이 새로운 자원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원순환 업계에 따르면 자동화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이 과정에는 반드시 노동자가 필요하다. 재활용 선별원은 자원순환 사회로의 전환에 꼭 필요한 인력들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일 선별 노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열악한 작업환경과 건강 위협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는 연간 1973만 톤에 달하는 생활폐기물이 발생하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재활용 선별장을 거쳐 자원순환 된다. 수많은 폐기물이 자원순환 노동자들의 손을 거쳐 재활용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의 작업환경은 위험하고 열악하다고 알려진다. 

특히 여성 노동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재활용 선별장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가려져 제대로 된 공식 통계조차 부족한 현실이다. 이에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 6~7월 약 두 달간 생활폐기물 처리 자원순환 시설에서 재활용 선별원으로 6개월 이상 근무한 사람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지난 4월 ‘2024 재활용 선별원 노동안전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94.8%는 여성으로 5060 중장년층 비율이 85.7% 이상을 차지했다. 이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6.2년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09~2019년까지 10년간 ‘폐기물 처리·원료재생·환경복원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47.3년인 것과 비교하면 86.8%나 낮은 수치다. 이는 재활용 선별 노동 환경의 열악함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연간 1973만 톤에 달하는 생활폐기물이 발생하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재활용 선별장을 거쳐 자원순환 된다. (사진 여성환경연대 _촬영 손용훈)/뉴스펭귄
한국에서는 연간 1973만 톤에 달하는 생활폐기물이 발생하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재활용 선별장을 거쳐 자원순환 된다. (사진 여성환경연대 _촬영 손용훈)/뉴스펭귄

가장 심각한 건 ‘먼지·분진’...악취·더위·추위도 극심

조사 결과 재활용 선별 작업장은 단순히 폐기물이 모이는 지저분한 공간을 넘어 온갖 유해 물질이 뒤섞인 위험한 곳으로 확인됐다. 먼지, 악취, 소음, 계절에 따른 혹독한 더위와 추위가 노동자들의 건강을 끊임없이 위협하지만 안전시설이나 편의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5.7%가 먼지·분진의 심각성을 호소했다. 이는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 눈 자극을 유발하며 장기적으로는 만성 폐 질환의 위험까지 높일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먼지에 이어 악취(81.8%), 더위·추위(81.8%), 소음(77.9%) 역시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주요 유해 요인으로 꼽혔다.

작업환경의 열악함은 만성 통증으로 이어졌다. 반복적인 고된 작업 탓에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손과 손목 통증을 겪는다는 응답자가 92.2%에 달했으며, 어깨(79.2%), 허리(77.9%), 목(74.0%) 순으로 통증을 호소했다. 그러나 통증이 심하더라도 상당수는 치료 없이 통증을 방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 노동자가 대다수인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신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작업 설비와 도구들은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을 더욱 높이고 있다. ‘하루 2시간 이상 반복되는 팔과 손 사용, 임의로 자세를 바꿀 수 없는 요건에서 목이나 허리를 구부리거나 비트는 상태로 이뤄지는’ 재활용 선별 작업은 고용노동부 고시에 명시된 근골격계 부담작업 요건에 해당하지만 현장 유해 요인에 대한 조사는 미비한 상황이다. 

조사 결과 손과 손목 통증을 겪는다는 응답자가 92.2%에 달했으며, 어깨, 허리, 목 순으로 통증을 호소했다. (사진 여성환경연대 _촬영 손용훈)/뉴스펭귄
조사 결과 손과 손목 통증을 겪는다는 응답자가 92.2%에 달했으며, 어깨, 허리, 목 순으로 통증을 호소했다. (사진 여성환경연대 _촬영 손용훈)/뉴스펭귄

산재 신청 비율 24.1% 불과...“아파도 참아야죠” 

열악한 환경과 고된 노동은 각종 부상과 질병으로 이어진다. 조사에 참여한 선별 노동자 100%가 업무 중 찔리거나 베인 경험이 있다고 답했을 만큼 선별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에도 산재 신청률은 턱없이 낮다. 업무 중 사고나 질병으로 4일 이상 치료받은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37.7%에 달했지만, 실제로 산재를 신청한 비율은 24.1%에 불과했다.

산재 신청을 주저하는 이유로는 ‘증상이 미약해서’, ‘산재 처리 절차가 어려워서’, ‘회사 눈치가 보여서’ 등이 꼽혔다. 이는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과 부상이 심각함에도 심리적·제도적 장벽으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기본적인 안전 보호구 지급조차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리 조각, 주삿바늘 등 날카로운 물질로 일어나는 찔림·베임 사고 빈도와 위험성이 매우 높지만, 업무 특성에 맞는 보호구 지급 기준은 법령상 마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보호구 중 작업복과 장갑은 100% 지급되고 있었지만, 오염물 전용 집게(85.7%), 방진복(67.5%), 찔림·절단보호 장갑(33.8%), 보안경·안면 보호구(36.4%) 등 필수 보호구 지급률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진복, 장화, 집게 등 보혹는 개수나 교체 주기 면에서도 부족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자원순환 업계에 따르면 자동화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이 과정에는 반드시 선별 노동자가 필요하다. (사진 여성환경연대 _촬영 손용훈)/뉴스펭귄
자원순환 업계에 따르면 자동화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이 과정에는 반드시 선별 노동자가 필요하다. (사진 여성환경연대 _촬영 손용훈)/뉴스펭귄

먼지·유해 물질 노출되지만...샤워·휴게 시설 불충분

열악한 작업환경은 휴식 공간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특히 여성 노동자의 위생과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성별 분리 화장실은 마련돼 있지만, 청결도와 접근성 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무엇보다 먼지와 유해 물질에 노출되는 작업 특성상 샤워 시설이 필수적임에도 샤워실이 불충분하거나 심지어 성별 분리조차 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았다.

제대로 된 휴식 공간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휴게시설이 다른 용도로 함께 사용되거나 먼지·소음·악취·유해 물질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노동자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성환경연대는 보고서를 통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휴게시설 설치가 법정 의무사항으로 명시된 만큼 휴게시설 존재 여부뿐만 아니라 환기, 소음 차단, 청결도, 안전성 등 실질적 사용 가능성과 편의성에 대한 점검과 개선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여성환경연대 측은 “자원순환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그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이 바로 선별노동자”라며 “이들의 노동 환경과 처우를 개선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은 자원순환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돌보는 노동 가치를 사회적으로 삭제하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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