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병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살균제의 일종인 클로로탈로닐이 곤충의 생식 능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곰팡이병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살균제의 일종인 클로로탈로닐이 곤충의 생식 능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토마토 등 작물에 발생하는 곰팡이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되는 살균제의 일종인 클로로탈로닐(chlorothalonil)이 곤충의 생식과 생존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 결과를 발표한 연구진은 그동안 클로로탈로닐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곤충과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관련 연구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주 맥쿼리대학교(Macquarie University) 연구진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농업용 살균제 클로로탈로닐이 곤충의 번식 능력을 크게 저해한다고 밝혔다. 클로로탈로닐은 역병, 탄저병, 노균병 등 곰팡이병 예방을 위해 감자, 고추, 토마토 등 농가와 과수원 등에서도 널리 쓰이는 농약이다. 

유럽연합은 2019년 환경 및 인체 유해성 우려로 클로로탈로닐 사용을 전면 금지했지만, 호주,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일부 농산물에 최대 5mg/kg까지 잔류 허용 기준이 설정돼 있어 부분적으로만 규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진은 초파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초파리는 썩은 작물을 분해하며 유기물 순환에 기여할 뿐 아니라 다른 생물의 먹이원이 되기도 하는 곤충이다. 연구를 이끈 다르시카 디사와(Darshika Dissawa) 연구원은 “초파리는 생태계 먹이 사슬의 가장 하단에 있어 생태계 전체에 연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종”이라고 언급했다.

연구진은 실제 농산물에서 검출되는 수준의 클로로탈로닐을 초파리 유충에 노출시켰다. 실험 결과, 인체에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적은 농도에서도 곤충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성체가 된 암컷의 산란 수가 평균보다 37% 낮았고, 수컷과 암컷 모두 심각한 생식 능력 장애를 겪은 것이다.

또한 클로로탈로닐에 노출된 유충은 성체가 되고도 몸집이 작았다. 암컷은 평균 난소 구조가 감소했고, 수컷은 체내 철분 수치가 낮아져 정자 생산과 대사 기능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디사와 연구원은 “가장 낮은 수준의 농도에서도 초파리의 생식력이 크게 떨어져, 시간이 지날수록 개체군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플뢰르 폰통(Fleur Ponton) 교수는 “영향이 점진적으로 나타날 줄 알았는데, 아주 적은 양에서도 강력한 부정적 효과가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연구진은 곤충들이 클로로탈로닐이 묻은 먹이를 피하지는 않는지 살펴봤지만, 극히 고농도에서만 회피 반응을 보였을 뿐, 대부분의 경우 먹이를 그대로 섭취했다. 폰통 교수는 “클로로탈로닐이 실제로 곤충에 의해 섭취되고 있다는 점이 명확히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영향이 초파리에 그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꿀벌, 파리 등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담당하는 수분 매개 곤충들도 광범위하게 이 살균제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폰통 교수는 “살충제와 달리 살균제는 곤충들이 회피하거나 피할 방법이 없다”며 “수분 매개 곤충의 개체수 감소는 생태계 안정성과 식량 생산에 모두 위협이 된다”고 경고했다.

폰통 교수는 "클로로탈로닐이 곤충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며 "곤충의 개체수가 전 세계적으로 급감하고 있는 현실에서, 클로로탈로닐이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조사는 매우 시급하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어 “클로로탈로닐이 실제 농업 현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상업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전 세계 곤충 종의 40% 이상이 개체수 감소를 겪고 있으며 3분의 1은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해당 연구는 국제 학술지 로얄 소사이어티 오픈 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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