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곽은영 기자]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나이 들어 자연사할 수도 있고, 병으로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날 수도 있다. 불운의 사고나 범죄도 배제할 수 없는 사인 중 하나다. 과정과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 죽는다는 것. 이것이 가장 확고한 진리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다른 존재에게 잡아먹히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어떨까?
호주의 페미니스트 생태철학자이자 1985년 호주의 카카두국립공원에서 홀로 카약을 타던 중 악어에게 잡아먹힐 뻔했지만 기적적으로 탈출한 경험으로 유명한 발 플럼우드(Val Plumwood)는 ‘인간은 먹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플럼우드는 악어와 맞닥뜨려 ‘죽음의 소용돌이’를 세 번이나 당한 경험을 저서 ‘악어의 눈: 포식자에서 먹이로의 전락’에서 공유했다. 책에서 그는 호수 위에서 강렬한 금빛 테두리가 빛나는 포식자의 눈을 마주한 순간, 지금껏 안온하게 몸담아 온 세계에 균열이 일어남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로서 모든 비인간 존재 위에 군림하며 그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고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 온 바로 그 세계다.
서구의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깨어지는 순간, 인간도 먹이사슬 속에 있다는 외면되어 온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인간은 먹이’라는 자연의 비밀스러운 진리도 깨닫는다.
플럼우드는 자연의 주인이길 자처하는 인간의 오만함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생태 위기의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면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생태적 관점에, 비인간 존재를 윤리적 관점에 다시 위치시켜 모든 존재가 몸이면서 정신이며, 마땅히 존중받는 동시에 차례가 오면 먹이로서 자신을 내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플럼우드에게 죽음은 우월한 영혼이 열등한 육체를 지상에 남겨두고 천국으로 향하는 일이 아니며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종착역도 아니다. 우리의 몸이 땅에 묻혀 수많은 벌레와 미생물의 먹이가 됨으로써 그 토양에서 식물이 자라나고 그 식물이 동물의 먹이가 됨으로써 우리가 지구적 생태공동체의 서사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먹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비인간 존재가 존중과 윤리적 고려의 대상임을, 우리와 그들의 세계가 나뉘어 있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플럼우드가 악어의 눈을 통해 발견한 것이다.
그는 악어에게 잡아먹힐 뻔한 압도적 경험을 비롯해 10년 넘게 집 안팎을 오가며 삶의 일부를 함께한 웜뱃 비루비와의 추억, 아들의 묘지를 방문하며 서구 매장 관행에 대해 돌아본 경험을 나누면서 이런 관점이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가장 근본적으로 삶을 관통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플럼우드는 ‘먹이가 될 수 있는 존재’의 범위를 인간까지 확장하고 영화 <베이브>에서 재현된 동물 농장의 경우를 예시로 들며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의 범위 안으로 돼지를 끌어들인다. 그 경계 밖에는 어떤 생명 종도 남겨두지 않는다. 개별적 집합 두 개로 나뉘어 있던 존재들이 완전한 교집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먹이고 동시에 먹이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플럼우드의 관점은 포식 그 자체나 먹히고 사용되는 생명을 우리 자신과 완전히 다른 범주로 바라보고 그들을 고깃덩어리로 환원해 도구화하는 것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플럼우드는 존재론적 완전채식주의의 한계도 비판한다. 동물의 모든 쓰임을 예외 없이 완강히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존재론적 완전채식주의는 세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존중받는 생명의 범위를 인간 밖으로 확장할 뿐, 윤리적 범주와 생태적 범주의 경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지적이다. 이로써 그 경계 밖에 존중의 대상이 되지 않는 존재를 여전히 남겨둔다는 것이다.
플럼우드는 1939년생으로 2008년 타계했다. 평생 인간과 자연의 공생적 관계를 이론화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1970년대부터 생태철학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악어에게 잡아먹힐 뻔한 경험 이후 자신이 온몸으로 생생히 체감한 자연의 먹이사슬,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천착하며 다수의 에세이를 집필했다. ‘악어의 눈’은 그의 사후 동료들에 의해 편집되고 출간된 책이다. 대표작으로는 1993년에 출간한 ‘페미니즘과 자연의 지배’와 2002년에 출간한 ‘환경문화: 이성의 위기’ 등이 있다. 생태철학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2001년 루틀리지 출판사가 선정한 50인의 환경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에코페미니즘은 생태계 위기 극복을 위해 인간 중심적 자연관과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생태론입니다. 차별과 폭력에서 벗어나 평등하고 자연스러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넓게 보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다양한 현상으로 확장돼 기후위기, 멸종위기종, 탈플라스틱, 자원순환, 제로웨이스트, 바른먹거리, 정직한 거래와 같은 주제로도 모두 연결됩니다. <뉴스펭귄>이 생물다양성 실종의 시대에 에코페미니즘을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에코페미니즘이 우리 일상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평소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에코페미니스트들의 현장 이야기와 함께 살펴볼 예정입니다. 우리가 멸종위기 시대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기후위기 극복의 힌트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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