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가 시속 100km로 달릴 수 있으려면 굉장히 넓은 서식지가 필요해요. 그런데 그 서식지가 자꾸 없어지고 있어요.”
서울 망원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의 박혜영 소장이 치타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동물의 삶을 지우는 인간 활동과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고, 라이프스타일이 있고, 성격이 있고, 자기가 선호하는 게 있어요. 놀이도 필요하고요. 짝이 있어야 하고, 새끼랑 같이 훈련할 공간도 있어야 하죠. 그런데 인간은 그걸 깡그리 무시해요. 동물원에서 키우는 동물을 보면서 ‘먹이 주니까 편하잖아’라고 생각하죠. 그건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인 시선이에요.”
인간은 보통 동물을 ‘사육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물은 그저 ‘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인간 중심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비인간 존재의 삶을 상상하는 것. 우리가 생태와 기후위기를 이야기할 때 꼭 필요한 감수성이다.
“제가 옛날에 유학 시절 기숙사에서 살 때, 벌레가 싫어서 주말마다 청소를 열심히 했거든요. 그런데도 벌레가 나왔어요. 너무 화가 나서 저걸 어떻게 죽일까 하며 딱 쳐다봤죠. 그 순간 벌레가 가만히 있는 거예요. 내가 죽일 생각을 한다는 걸 아는 것 같았어요. 그게 참 신기했어요.”
그는 사소한 일상에서도 ‘생명 감수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보통 무시하고 지나치는 작고 하찮은 생명들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바퀴벌레도, 심지어 식물조차도.
“어떤 나무는 덩굴이 자기를 감싸는 걸 싫어해요. 어떤 나무는 누구 옆에서 자라면 더 잘 자라죠. 나무도 다 성격이 있는 거예요. 그런 감수성을 알아야 해요. 생명체 각각의 삶을 이해하는 섬세한 태도 말이에요. 그런 걸 사회적으로도 더 자주 말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정으로 실천하는 에코페미니즘
그가 소장으로 있는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는 여성환경연대가 2020년에 설립한 연구자 네트워크로 생명 감수성에 대한 촉을 벼리는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연대 플랫폼이다. 동물연구가, 미술치료사, 업사이클링 예술가, 시민단체 활동가, 탈핵·동물권 운동가, 시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41명이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대중 강좌와 북토크, 세미나와 같은 교육을 비롯해 번역과 출간을 통해 에코페미니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상·하반기에는 에코페미니즘 기초 및 심화 강좌를 진행하는데, 오는 6월부터 ‘에코페미니즘 고전 다시 읽기’를 주제로 기초강좌를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달과나무 연구위원들이 주축이 되어 에코페미니즘 사상가이자 활동가인 그레타 가드의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을 번역해 출간했다.
“에코페미니즘이 한국에서 활성화되려면 다양한 활동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단단한 이론이 필요해요.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며 직접 현장을 경험하면 훨씬 살아있는 결과가 나오죠.”
2023년에는 에코페미니스트 15인과 에세이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죽어가는 행성에서 에코페미니스트로 살기』를 출간했다. 그는 우정에 대한 글을 썼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결국 내 존재를 잡아줄 집이 필요한데, 그 집이란 내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다른 존재이고, 그 ‘존재의 집’이 바로 우정이라는 것이다.
우정이 흥미로운 건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과는 맺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내 반경 안에 들어와 줄 때 우정이 생긴다. 이 우정은 그가 에코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개인이 아무리 텀블러를 열심히 들고 다녀도 해양 유류선이 한 번 터지거나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나는 것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예요. 지금은 미시적 실천만으로는 바뀔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어요. 거대한 것들을 바꿔야 하는데, 개인들은 먹고 살기도 힘들 정도로 다 바쁘죠. 그래서 저는 ‘우정’이라는 방식으로 실천하려고 해요. 내 근처에 있는 존재들과 우정을 나누고, 모르는 사람도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해요. 내 주변에 있는 존재들과 우정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에코페미니즘의 역할은 침몰하는 배의 에어포켓
에코페미니즘은 심각한 지구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담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자연을 사랑하고 돌봄을 실천하자는 온화한 이론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를 바꾸자고 요구하는 래디컬(Radical)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를 완전히 뒤집는 건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배가 침몰해도 에어포켓은 있어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존재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에코페미니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젊은 여성들이 에코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기존 페미니즘으로는 왜 안 되는지 깨닫고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내야 해요.”
에코페미니즘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에 그는 모든 페미니즘 이론 중 가장 쉽다고 설명했다.
“에코페미니즘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이론 때문이라기보다 아마도 근대적인 욕망과 그 관점에서 살아가려는 생각과 달라서일 거예요. 예를 들어, 경제적 자립, 성취, 성공, 꿈을 이루는 삶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방향과 달리, 욕망을 낮추라거나 자본주의적 성취는 결국 지구에 좋지 않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죠.”
그는 에코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싶지만 어렵게 느껴질 때, 이론가와 활동가들이 쓴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했다.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를 가장 핵심적인 에코페미니즘 이론가로 꼽으며 두 사람이 함께 쓴 『에코페미니즘』과 마리아 미스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추천했다. 이어 레이첼 카슨, 발 플럼우드, 그레타 가드 등이 쓴 책을 통해 에코페미니즘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있다는 팁을 건넸다.
“모든 존재는 자기 생명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강력한 본능이 있어요. 누구도 죽고 싶어 하지 않죠.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자기 몸으로 생명 활동을 할 수가 없어요. 살아가기 위해선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해요. 에코페미니즘은 ‘살고 싶다’는 욕망과 ‘누군가를 먹어야만 한다’는 이 얽힘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철학이에요. 그 사이 어떤 윤리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죠.”
‘얽힘’은 박 소장이 에코페미니즘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우리가 독립적인 개체처럼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얽혀 있다는 것이다. 내 몸 안에 이미 화학물질이 들어있다는 외부 물질과의 얽힘도 있지만, 바로 옆 사람과도 얽혀 있다는 관계성을 잊으면 안 된다는 조언이다.
잊혀진 공유지, 다시 떠오른 대안 ‘커먼즈’
박 소장이 얽힘과 함께 에코페미니즘의 핵심 단어로 꼽은 건 ‘커먼즈(Commons, 공유지)’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커먼즈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커먼즈의 개념은 고대 영국 켈트 사회의 공동체 중심의 토지 이용 방식에서 출발한다.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이용하는 공동체 전체의 자원, 즉 공동소유, 공동 이용 체계가 바탕이다. 개인 단위가 아닌 각 마을 단위로 가지고 있는 공유지는 문서로 제정되는 성문법이 아니라, 관습이 반복돼 법적 효력을 인정받은 관습법에 따라 우선순위가 정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자연 재앙이나 기근이 들 경우,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이 돌봄 대상 1순위가 된다. 아이가 있는 과부의 경우는 최취약계층으로 노인보다 더 먼저 배려되면서 그들의 존재가 소멸하지 않도록 마을 단위에서 협력했다.
“이런 식으로 일종의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마을 단위의 복지예요. 중앙정부가 힘을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공동체의 힘으로 그 안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거죠. 기근이 들어도 한 사람만 잘 먹거나 한 사람만 굶어 죽는 일이 없어요. 생명 활동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물적 토대를 보장해주는 게 커먼즈였으니까요.”
이러한 커먼즈는 16~18세기 대규모 인클로저(Enclosure, 울타리를 치다) 운동으로 사유화되면서 사라졌다. 기존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사용하던 농지와 공유지가 담장으로 둘러싸여 사유지가 되면서 땅이 없는 농민이나 물적 토대를 물려받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당시의 산업혁명 흐름 속에서 공장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박 소장은 “그 삶은 굉장히 비참했다”고 설명했다. 공동체와 서로 돌봄을 받던 장소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에코페미니즘에서 커먼즈를 말하는 이유는 커뮤니티의 중요성 때문이다. 현재 에코페미니즘이 문제 삼는 세 가지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과학기술이다. 이 세 가지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실종, 인간과 비인간종에 대한 착취와 같은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는 관점인데, 문제는 이 중 한 가지도 깨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박 소장은 “그나마 해볼 수 있는 대안이 커먼즈”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현대의 커먼즈는 옛날처럼 마을 단위의 공유지 개념이 아니다. 더 확장해 존재와 존재 사이에, 시간에, 장소에 커먼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공도서관, 공공카페, 공공주택과 같은 공공의 영역을 만드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커먼즈의 영역이 많아지면 비로소 내 몸만 생각하는 것을 너머 길고양이와 주변 자연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동물들도 커먼즈에 포함된다. 동물원처럼 인간중심적인 시선이 지배하는 장소가 아니라, 마을 단위에서 동물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방향으로 공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을 비롯한 비인간 존재를 비참하게 키우고 착취하는데, 이들에 대한 탈자본화된 공간을 만들어주면 그래도 연대하고 공생하고 변화하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1. 에코페미니스트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의 영향이었어요. 제가 비평 에세이 『느낌의 0도』라는 책에서 생태 작가들을 다뤘는데, 레이첼 카슨이 첫 번째 인물이었어요. 1960년대에 DDT 살충제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에코페미니스트죠. 그는 ‘DDT로 말라리아는 줄었지만 암이 늘었고, 암 치료비는 말라리아보다 훨씬 비싸다’고 지적했어요. 해충을 죽이려고 뿌린 살충제가 땅에 스며들고, 그 땅에서 자란 식물을 먹은 새들이 죽어서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된다는 순환 관계를 보여줬어요. 여성 주부들이 “올봄에는 새가 한 마리도 없어요. 집 앞에 다 죽어 있어요”라는 편지를 보내며 그녀를 지지했습니다. 여성들이 자연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고 공유한 거예요. 제가 전공한 영국 낭만주의 시에서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핵심 주제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에코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됐어요.
Q2. 기후우울과 무력감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면
희망을 찾으려면 정치와 교육을 바꿔야 합니다. 현재 관료사회에서의 핵심은 결정권자가 누구인지에 달려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국회에 시민의 진정한 대변인을 보내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기후위기가 심각하니 탄소 감축에 관심 있는 사람이 국회에 가야 한다는 식인 거죠. 함께 숙의해서 누가 우리 대표가 되어야 하는지 합의하는 겁니다. 교육에서는 선생님들의 역할이 중요해요. 시험 경쟁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영어 지문도 ‘작년에 뭐가 몇 퍼센트 올랐다’는 식이 아닌, 북극곰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싣게 된다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생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죠.
Q3. 우리가 물음표를 던지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
최저임금은 있는데 왜 최고임금에는 한계가 없을까요? 이상하지 않나요? 저는 지구가 정말 괜찮아지려면 최고임금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구는 한계가 있는 공간이고 무한히 팽창할 수 없어요.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일정 금액 이상을 벌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면,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환경과 사회를 망가뜨려가면서까지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이게 중요한 개념인 거 같아요. 예전에 영국 경제사상가 E.F.슈마허의 『굿 워크』를 번역했는데, 그 책에서 ‘CEO라 할지라도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의 8배 이상은 안 받도록’ 한 실험을 소개해요. 그걸 보고 ‘그렇네. 왜 최고임금에는 캡을 안 씌울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지구는 하나밖에 없고, 우리도 한번 사는 인생인데 좋은 것도 하고 살 수 있게 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낙수효과가 발생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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