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 출연한 반다나 시바. (사진 EBS)/뉴스펭귄
2023년 2월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 출연한 반다나 시바. (사진 EBS)/뉴스펭귄

[뉴스펭귄 곽은영 기자] 어떤 풍경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반다나 시바에게는 사라진 산책로가 그랬다. 과학자를 꿈꾸던 그가 고향으로 돌아와 나무를 끌어안고 환경운동에 뛰어들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경제적 이익을 위해 나무를 베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황폐화 된 인도의 풍경이었다.

1970년대, 인도의 여성들은 숲으로 가 나무를 껴안았다. 무분별한 벌목을 막고 숲을 지키기 위한 ‘칩코(Chipko) 운동’의 시작이다. 반다나 시바는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선 지구를 착취 대상으로 여기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에코페미니즘’ 정신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에코페미니스트로서 그는 실제적인 활동과 함께 ‘에코페미니즘’,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등 수많은 책을 써왔다. 반다나 시바가 말하는 에코 페미니즘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무를 베지 못하게 끌어안는 ‘칩코 운동’

반다나 시바는 대표적인 에코페미니스트로 세계적인 환경 사상가이자 양자물리학자이다. 핵물리학을 공부하다 산업화한 농업으로 인도의 농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서구 과학기술의 문제점을 인지하며 환경운동에 나섰다. 그는 오늘날의 농업과 식량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40년 넘게 토종 씨앗과 생물다양성을 강조하는 종자 주권 운동을 펼치고 있다. 

1952년 인도 북부의 데라둔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반다나 시바는 숲을 맨발로 쏘다니며 나무를 존중하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오래된 전통을 따르고 농부였던 어머니로부터 씨앗의 중요성을 배운다. 숲에서 보낸 유년기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고 각각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의 뿌리가 된다. 

자연의 원리와 법칙을 알고 싶었던 그는 인도의 펀자브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 뭄바이에 있던 바바원자력연구소에서 일하기도 했다. 원자력 이용 시 발생하는 방사능과 핵폐기물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이후 핵물리학이 인간과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된 그는 생명을 지키는 과학을 하고자 캐나다의 겔프대학교로 진학해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서 양자물리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부를 하면서도 그는 해마다 고향을 찾았다. 그러다 좋아하던 숲의 등산로가 사라진 것을 보고는 칩코 운동의 자원봉사자로 합류하게 된다. 칩코는 ‘껴안다’라는 의미의 인도어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나무 둥치를 껴안고 저항하는 운동이다. 

 1970년대 초 인도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나무를 베려는 기업과 인도 정부에 대한 대응책으로 칩코 운동이 확대됐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1970년대 초 인도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나무를 베려는 기업과 인도 정부에 대한 대응책으로 칩코 운동이 확대됐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에마누엘라 나바가 쓴 ‘씨앗을 지키세요’에 따르면, 칩코 운동은 18세기 인도 조드푸르 왕국의 왕이 새 궁전을 지으려고 나무들을 베라고 명령하자 그에 맞서 나무를 껴안고 저항한 비슈노이족 사람들에게서 비롯됐다. 비슈노이 족 중 가장 먼저 나무를 껴안은 사람은 아미타 데비라는 여성이었고 당시 그를 비롯한 많은 여성이 도끼질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고 알려진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무를 끌어안고 희생된 유일한 사건으로 불린다. 

이후 1970년대 초 인도에서 새로운 칩코 운동이 벌어졌다.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나무를 베려는 기업과 인도 정부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당시 인도에는 개발 광풍이 불었고 벌목과 댐건설이 진행되며 마을은 피폐해졌다. 히말라야에서 가우라 데비라는 인도의 여성 환경 운동가가 벌목을 막기 위해 나무를 껴안으면서 칩코 운동이 다시 확대됐고 반다나 시바 역시 여기에 합류했다. 

칩코 운동은 반나다 시바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방학마다 돌아와 봉사에 참여했다. 다국적기업의 삼림파괴에 반대하는 칩코 운동의 결실은 1981년 히말라야산맥 1000미터 고도 이상의 고산 지대 벌목이 금지되는 것으로 맺어졌다. 그는 이 활동을 통해 생물 다양성과 비폭력의 힘, 나눔과 용기를 배웠다고 말한다. 

“칩코 운동은 제 인생의 첫 사회 운동이에요. 이 경험으로 제 의식 속에서 생태학, 사회 참여 운동, 사회 정의가 하나로 결합하기 시작했죠.” 최형미 저서 ‘반다나 시바, 상처받은 지구를 위로해’에 나오는 대목이다. 

핵물리학자에서 ‘나브다냐’ 식량 주권 운동가로

죽어가는 인도의 자연은 그의 꿈까지 바꿔놓았다. 반다나 시바는 고향 땅에서 벌어진 참혹한 비극을 목격한 뒤 인도의 자연환경과 농업을 지키는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으로 박사 학위를 받자마자 인도로 돌아왔다. 

인도에 돌아온 그는 또 다른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농민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던 단일 경작 사업들이 알고 보니 제지 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너무 많은 지하수를 사용하고 생물 다양성까지 해쳐 환경 파괴를 심화시킨다는 것이었다. 

반다나 시바는 식량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이른바 ‘녹색혁명’과 유전자변형식품(GMO) 종자 도입이 수많은 비극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1965년 첫 번째 녹색혁명이 인도의 펀자브주에서 일어났을 때만 하더라도 식량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신기술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녹색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농업의 산업화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했다. 망가진 강과 토양, 빚더미에 앉게 된 농부들, 건강과 목숨을 잃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반다나 시바를 식량 주권 운동에 뛰어들게 했다. 

반다나 시바는 종자 보존 운동과 생태학적 소규모 농부 육성을 지속가능한 농업 방식으로 제안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반다나 시바는 종자 보존 운동과 생태학적 소규모 농부 육성을 지속가능한 농업 방식으로 제안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그는 종자 보존 운동과 생태학적 소규모 농부 육성을 지속가능한 농업 방식으로 제안했고, 제3세계 생물다양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종자 주권을 지키기 위한 나브다냐(Navdanya) 운동을 시작했다. 반다나 시바는 1987년부터 전통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를 찾아다니며 토종 씨앗을 모으러 다녔고, 1991년 비자 데비라는 동료와 함께 나브다냐라는 단체를 세우고, 1993년 인도 농민 운동을 주도했다. 

나브다냐는 ‘아홉 개의 씨앗’이자 ‘새로운 선물’이라는 의미다. 인도에 있는 반다나 시바의 나브다냐 농장은 ‘농작물의 특성과 생태학을 제대로 이해하면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농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실험 장소가 되고 있다. 보리, 기장, 완두, 녹두, 병아리콩, 쌀, 참깨, 검은콩, 말콩 등 나브다냐 씨앗 은행에 보관된 씨앗은 유전자 변형을 거치지 않은 인도의 토종 씨앗들이다. 이렇게 지켜낸 씨앗은 유전자 변형 씨앗으로 특허를 받은 다국적 기업들과 싸울 수 있는 힘의 배경이 되어준다. 

반다나 시바는 2002년 지속가능발전 세계정상회의에서 농업 정상화 시위를 하고, 2016년 세계민중의회 몬산토 재판에서 다국적 종자 기업 몬산토의 BT 목화 판매 금지와 퇴출을 요구했다. 2018년에는 유엔사회개발연구소 컨퍼런스에서 생물다양성 위기에 대한 경고를 하는 등 농민과 빈민, 여성의 권리를 대변하는 활동을 지속해서 펼치며 세계화에 관한 국제포럼과 슬로푸드운동, 과학·기술·생태학 연구재단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반다나 시바가 수많은 인터뷰와 강의에서 자주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구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구 가족의 일원으로서 모든 생명이 서로를 돌보고 그런 관계를 회복하면 기후위기, 멸종위기에 빠진 지구를 되살리고 생물다양성과 문화를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에코페미니즘은 생태계 위기 극복을 위해 인간 중심적 자연관과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생태론입니다. 차별과 폭력에서 벗어나 평등하고 자연스러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넓게 보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다양한 현상으로 확장돼 기후위기, 멸종위기종, 탈플라스틱, 자원순환, 제로웨이스트, 바른먹거리, 정직한 거래와 같은 주제로도 모두 연결됩니다. <뉴스펭귄>이 생물다양성 실종의 시대에 에코페미니즘을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에코페미니즘이 우리 일상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평소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에코페미니스트들의 현장 이야기와 함께 살펴볼 예정입니다. 우리가 멸종위기 시대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기후위기 극복의 힌트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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