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우다영 기자]

"독수리식당이 뭐 하는 데예요? 나 이런 밥집 처음 보네"

"독수리 밥 주는 식당이에요. 독수리가 먹습니다"

파주 문산역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택시를 탔다. 지난 2월27일 아침 8시 무렵 파주에서 택시를 운행한지 오래된 기사와 독수리식당에 처음 가보는 기자가 나눈 대화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독수리식당. 이곳의 손님인 독수리 역시 아는 사람은 가엾게 여기고, 모르는 사람에겐 대개 '위험한 새'다. "독수리가 아이를 잡아간다"는 속설이 있듯 말이다.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기자는 어릴 적 작은 트라우마로 새를 무서워했다. 길을 걷다 비둘기를 만나면 아주 멀리 떨어져서 온몸에 힘을 주곤 아슬아슬 벼랑 끝이 따로 없다. 도저히 발을 못 디딜 만큼 비둘기가 많으면 다른 길로 돌아서 갈 정도다. 하루는 기자의 손바닥보다 작은 참새의 날갯짓에 놀라 큰 소리를 내었는데, 같이 걷던 동료에게 "새가 더 놀랐겠다"며 애정 어린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뉴스펭귄에서 환경과 생태 소식을 전하는 기자 본인이 새를 무서워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물론 호랑이, 사자와 같은 대형 포유류를 마주친 것처럼 인간과 자연이 뜻하지 않게 가까울 때 느껴지는 미지의 공포심까지 부끄럽다 말하려는 건 아니다. 기자가 조류에 가진 공포심은 '잘못된 인식으로 씌워진 색안경'이어서다.

기자가 쓴 색안경은 우리 사회에도 존재했다. 최근 경상도 지역 도로 한복판을 걷는 독수리 영상이 SNS서 화제였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뜬금없이 나타난 독수리라며 재밌어하거나, 신기하다는 분위기를 띤 한편 '무섭다'는 반응도 있었다. 일부 누리꾼은 반려동물과 산책하던 중 하늘 위를 빙빙 도는 독수리가 반려동물을 잡아갈까 봐 저리 가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고도 했다.

독수리는 이글(Eagle)과 벌처(Vulture)로 나뉜다. 같은 맹금류 수리과여도 이글(Eagle)은 살아있는 짐승을 사냥하는 반면, 벌처(Vulture)는 사냥을 못 한다. 즉, 우리나라에 오는 독수리는 '사냥할 줄 모르는' 벌처 독수리이며, 3년 이하의 어린 개체들만 온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한국에 오는 독수리는 사람을 해치지 않고, 무서운 새가 아니다. 그러나 기자는 살면서 독수리를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비둘기조차 무서워하면서 본 적도 없는 독수리를 '무섭지 않은 새'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이런 의문에서 독수리식당으로 향했다.

파주 독수리식당은 임진강생태보존회 윤도영 이사장이 2009년부터 이끌어왔다. 겨울이면 독수리들이 몽골에서 3000km 이상 날아와 한국 남부지역에서 겨울을 나는데, 이들 대다수가 굶어 죽거나 2차 농약중독 위협에 놓인다. 사냥하지 못해 동물 사체만 먹어서다. 도시화로 인한 공장식 축산 등으로 먹을 수 있는 사체가 없고, 농약으로 폐사한 동물 사체를 먹다가 2차 중독에 빠진다.

이런 독수리들이 한국에서 무사히 몽골로 돌아가도록 파주 독수리식당은 매년 겨울, 매주 3일, 400kg에 달하는 돼지고기를 시민들과 함께 제공한다.

독수리식당은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을 마주 보고 있다. 굽이굽이 좁은 길목 하나를 들어가다 보면 온통 논밭이다. 기자가 이날 (비둘기 다음으로) 처음 만난 새는 농사가 끝난 논밭 위에 한가로이 자리 잡은 쇠기러기 무리였다. 인적 없는 자연 풍경이 낯설어 그들만의 공간에 기자가 함부로 발을 들이는 듯했다.

곳곳에 자리 잡고 오픈런 하는 독수리들.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곳곳에 자리 잡고 오픈런 하는 독수리들.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식당 오픈 시간이 가까워지자 '오픈런'을 하듯 200여 마리의 독수리가 넓은 밭에 모여있었다. 때를 아는지 각자 자리를 잡고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구석에 앉아 있는 독수리, 투덕투덕 먹이를 먹기 전부터 싸우는 독수리, 두세 마리 무리 지어 있는 독수리, 전봇대 위에서 동향을 살피는 독수리 등 성격도 성향도 다양했다. 혼자 구석에 앉은 독수리를 기자가 불쌍하게 바라보자 윤도영 이사장은 "우리도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지 않느냐. 독수리도 똑같다"고 설명했다.

알려진 대로 독수리는 정말 컸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몸길이는 100~110cm, 날개 편 길이는 250~300cm다. 현장에는 독수리만 한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단위 손님이 4~5팀, 2030청년, 탐조객 등 20여 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 그 누구도 독수리를 보며 '무섭다'고 내색하지 않았다.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식당 오픈 시간에 맞춰 넓은 밭 한 가운데 임진강생태보존회 활동가들이 돼지고기를 펼쳐두면, 일반 체험자는 장갑 낀 손으로 쌀 바구니를 들고 독수리 가까이 간다. 쌀 바구니는 독수리들이 먹이를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까치, 까마귀 등 다른 새들도 함께 먹으라고 주는 용도다. 실제로 먹이를 다른 새에게 뺏기거나,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현장의 박상현 생태해설사와 노황호 생태학교장, 윤도영 이사장은 입을 모아 "여기 오는 독수리들은 둔하고, 겁이 많다. 가끔 바보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기자는 독수리와 횡단보도 하나 거리만큼 가까이 있었다. 쌀을 멀리 넓게 뿌리는 동안 독수리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사람들이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사람을 위협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자리 잡은 곳에 멈춰서 안전히 먹을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쌀을 다 뿌리고 생태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이 지정된 공간으로 이동하자, 독수리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멀어지고, 일정 거리가 유지될수록 독수리들은 경계심을 풀고 자유롭게 밥을 먹었다.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돼지고기는 식당 테이블로 예를 들자면, 총 5개 테이블에 펼쳐져 있다. 먹이경쟁에 지치고 배고픈 독수리라면 응당 다른 테이블에 놓인 밥으로 향할 것 같았지만, 이들은 먹이경쟁에 충실했다. 한 테이블 다 먹으면 그다음 테이블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먹고, 먹던 테이블을 다 먹은 뒤에야 이동했다. 심지어 먼저 먹고 다음 테이블로 몸을 옮긴 독수리는 함께 경쟁할 개체가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저 멀리 밥을 다 먹은 독수리가 날고 있다.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저 멀리 밥을 다 먹은 독수리가 날고 있다.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남김없이 모든 테이블을 다 비운 독수리들은 각자 자리에서 쉬다가 비행 연습을 했다. 3세 이하의 어린 개체들은 따뜻한 봄 다시 몽골로 돌아가기 위한 비행 연습이 필수다. 어린 개체여도 날개를 넓게 펴니 웅장했다. 그들이 비행 연습을 하는 아래 사람들이 있을 뿐,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주변을 나는데도 현장은 차분했다. 오히려 어린아이와 어른들이 "독수리가 잡아가겠다"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을 정도로 사람들은 독수리를 믿고 응원했으며, 독수리 또한 그곳에 온 사람들을 믿는 듯했다.

현장에 "새가 너무 좋아서 어제도 보고 왔다"던 아이가 새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새도 너를 무서워해"라고 말해주겠다고 했다. 당연한 아이의 말을 아주 늦게 깨달았다. 기자는 새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무서워하는 새'를 너무 몰랐던 것 아닐까. 인간과 자연이 너무 가까워서 생긴 상호 간의 두려움이었다.

사랑하는 방법 또한 몰랐다. 인간으로서 독수리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다면, 독수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리에서 그들이 배불리 먹게 도와주는 것. 딱 그 정도 거리라면 독수리는, 새는 더 이상 무서울 수 없었다.

홀로 쉬는 독수리. 내향성일까? 기자는 이 독수리가 반가웠다.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홀로 쉬는 독수리. 내향성일까? 기자는 이 독수리가 반가웠다.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마주친 비둘기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미안, 네가 가던 길에 내가 와버렸구나. 먼저 지나가렴"

이전처럼 비둘기와 멀리 떨어져 걸었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진 않았다. 곧이어 만난 참새와 까치는 행여 발걸음에 놀랄까 숨죽여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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