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잠실 석촌호수 호수교 아래. 예술 작품을 전시하기엔 다소 투박해 보이는 이 공간에서 특별한 사진전이 열렸다. 사진들의 주인공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전속 작가 조엘 사토리가 촬영한 전 세계의 멸종위기 동물들. 조엘 사토리는 성경 이야기 속 노아가 방주에 동물들을 한 쌍씩 태우듯, 사라져가는 동물들을 기록하고 구하기 위해 멸종위기 동물을 찍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절박함이 깃든 사진들이 걸린 전시장(?)에는 여기 원래 이런 사진이 걸려 있었나 힐끗 스쳐보고 지나가는 사람도,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내드는 사람도, 사진 앞에 멈춰서서 한참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예술 작품은 어디에 걸려있는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리 밑을 지나다 느닷없이 툭하고 마주친 것 같은 사진 속 동물들은 이곳저곳 바랜 회색 콘크리트 위에서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회색은 도시의 색이고 인간의 색이다. 일부러 부수고 다듬고 덧칠한 색이다. 그에 반해 노랗고 빨갛고 파란 것은 자연의 색이다. 자유롭게 날고 뛰고 터져나오는 색이다. 온통 회색으로 뒤덮인 도시 한가운데에 나타난 선명한 총천연색의 동물들은 마치 동화나 신화 속의 무언가처럼 묘하게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참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호수 저편에서 웬 울음소리가 들렸다. 석촌호수의 명물 거위들이 자기들끼리 엎치락뒤치락 다툼이 난 모양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거위들이 물 속으로 머리를 넣었다 뺐다 하며 먹이를 먹고 있었고, 일부는 땅으로 올라와 햇빛을 쬐고 있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도시에서만 줄곧 살아온 나는 거위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크다는 걸 처음 알았다. 왜 우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위들은 목을 흔들며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회색 세상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크고 우렁찬,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소리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거위의 몸집이 꽤 크기도 하고 조금 무서웠다. 길을 지나던 한 시민은 가까운 풀숲에서 난데없이 터져나온 야생의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고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게 누군가는 거위가 그곳에 그렇게 자유롭게 있으면 안된다고, 가두어 놓을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될까.
우리는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을 재단하며 회색빛 도시를 건설해 왔다. 똑똑히 존재하는 살아있는 몸들을 부정하고 가능한 한 멀리 내쫓아 왔다.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처럼 인간 사회의 기준에 적합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잡아 늘려서 죽이고 발목을 잘라 죽였다. 그렇게 죽거나 도망친 살아있는 몸들의 빈자리를, 그 몸을 본떠 만든 캐릭터들이 채우는 것은 아이러니다. 더군다나 옷을 입고 두 발로 서서 걸으며 양손을 사용하는 이상한 모습을 하고는. 숨이 붙어있는 실제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워지고, 인간에게 아양을 떨도록 만들어진 깜찍한 캐릭터들이 나와 진실을 은폐한다. 내쫓은 동물의 빈자리를 기어코 그 동물을 흉내낸 캐릭터가 차지하는 모순을 보며, 실은 우리의 DNA 속에 그들과의 공존이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함께 살아가야 할 이들을 내쫓아 텅 비어버린 마음을 이런 식으로 채우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돌아오는 길, 바로 옆에 있는 롯데월드의 홍보 간판 속 마스코트를 보며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너구리는 어디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까 괜히 생각해 보았다. 날이 풀리고 혹 석촌호수에 놀러간다면, 다리 밑에 숨죽이고 있는 노랗고 빨갛고 파란 이들을 한번 만나보기를. 그들이 숨쉬고 있을 오색찬란한 세상을 한 번쯤 상상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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