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공릉천 하구에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노랑부리저어새 한 마리를 만났다. 줄어든 농경지와 각종 개발로 과거에 비해 철새가 눈에 띄게 적어진 공릉천 습지, 반갑고 고마웠지만 홀로 있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임진강과 한강의 물길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공릉천 하구는 예로부터 항상 물이 많아 큰 비가 오면 넘치는 범람원이었다. 덕분에 주변 농경지가 발달했고, 깃들어 사는 생명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맘때면 다양한 철새가 돌아와 겨울을 나기도 했다.
지금은 어떨까. 아직도 많은 철새들이 이곳에서 겨울을 날까? 철새를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득 품고 쌍안경을 챙겨 파주시 서쪽에 위치한 공릉천 하구를 찾았다.
철새는 참새, 까치처럼 서식지를 고정하고 늘 그 자리에서 살아가는 텃새와 달리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북극부터 남쪽으로 호주, 뉴질랜드까지 넓은 서식 반경을 이동하며 살아간다.
한반도 서해안은 철새들의 이동 경로 중간쯤에 위치해 많은 철새들이 비행 중간에 내려와 쉬고 영양분을 보충하는 기착지, 즉 철새들의 휴게소이기도 하다. 이번에 찾은 공릉천 하구는 서해안과 인접해 우리나라를 지나는 철새 중 4분의 1 정도가 찾는다.
도심을 벗어나 굽이굽이 시골길을 달려 목적지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대표적인 겨울 철새인 기러기들이 하늘에서 V자를 그리며 끼륵끼륵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처 추수가 끝난 논에선 또 다른 기러기들이 무리를 지어 쉬고 있었다. 무리 중에는 큰기러기와 쇠기러기가 있었다.
큰기러기는 쇠기러기에 비해 몸이 크고 주둥이가 거무스름하다. 일반적으로 조류의 이름 앞에 ‘쇠’자가 붙으면 몸집이 작은 새라는 뜻이다. 쇠기러기는 큰기러기에 비해 몸집이 작고 주둥이에 노란 빛이 돌며 이마가 하얗다. 날아가는 기러기를 밑에서 봐도 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데 큰기러기는 배가 하얀데 반해 쇠기러기는 배에 줄무늬가 있다.
큰기러기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보호종이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과거 공릉천에서는 또 다른 기러기목의 새 개리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역시 야생생물 2급인 개리는 기러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몸 색깔이 더 화려하다.
길을 걷다보니 근처 나무 덤불에서 휘이익 휘이익 하는 빠르고 경쾌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휘파람 소리처럼 들리는 특이한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붉은머리오목눈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할 때 그 뱁새다. 13cm가량의 작은 몸길이와 붉은 빛을 띠는 갈색의 털, 특유의 재잘대는 울음소리가 특징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와 관련해서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자기보다 몸집이 열 배는 더 큰 여름 철새 뻐꾸기의 새끼들을 먹여 살리는 새다. 탁란을 하는 뻐꾸기가 가장 많이 찾는 둥지가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이기 때문이다. 탁란은 다른 동물의 둥지에 알을 낳아 자신의 새끼를 돌보게 하는 독특한 습성이다.
뻐꾸기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에서 알 하나를 밀어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몰래 알을 낳는다. 알에서 태어난 새끼 뻐꾸기는 다른 알들을 전부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독차지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새끼들을 위해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주지만, 어느 정도 자란 뻐꾸기 새끼는 휙 하고 둥지를 떠나버린다.
송촌교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오자 드디어 하천이 보였다. 그러나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포크레인과 공사 안내 표지판이었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그랬는지, 이날은 근처에서 물새들을 잘 볼 수 없었다. 공사를 위한 임시 가도를 설치하며 메꿔진 자리는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붉은발말똥게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공사 구간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쌍의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무리를 발견했다.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는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흔하게 관찰되는 오리류 동물이다.
청둥오리 수컷은 번식기가 되면 짙은 청색의 머리와 화려한 깃털로 옷을 갈아입는다. 암컷은 갈색으로 비교적 수수하다. 번식기가 끝나면 수컷이 암컷과 똑같아진다. 겨울 철새였으나 도심 공원, 저수지 등 수자원이 풍부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텃새화가 진행 중이다.
흰뺨검둥오리 역시 원래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는 여름 철새였지만, 텃새화가 많이 진행돼 많은 수가 텃새로 살고 있다. 겨울에는 번식 집단이 내려와 함께 겨울을 나 습지, 하천 등 평지의 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후 한참을 걸었지만 이외에 다른 종류의 새들은 보이지 않았다. 몸집이 커다란 철새는 볼 수 없는건가 시무룩해하던 찰나, 옆에서 ‘저어새다 저어새!’라는 반가운 외침이 터져나왔다. 저 멀리 하천에 흰뺨검둥오리 무리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목이 긴 흰 새 한 마리가 보였다. 쌍안경을 들어 보니 넓적하게 아래로 쭉 뻗은 검은색 부리와 밝은 부리 끝부분, 확실히 노랑부리저어새였다.
저어새라는 이름은 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뻘이나 하천 바닥에 넣고 젓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랑부리저어새와 저어새는 다른 종인데, 우선 저어새는 여름 철새이고 노랑부리저어새는 겨울 철새이다. 이 때문에 관찰할 수 있는 시기가 다르다.
생김새를 보면 저어새는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얼굴 전체가 검은색으로 덮혀있는 반면, 노랑부리저어새는 눈매가 확실히 보인다. 또한 저어새의 부리 전체가 검정색인 데 반해 노랑부리저어새의 부리 끝 부분은 이름처럼 노란 빛을 띤다.
노랑부리저어새와 저어새는 모두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이다. 노랑부리저어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저어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으며, 특히 저어새의 경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위기(EN) 단계에 등재돼 있을 만큼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이날 탐조 프로그램을 지도한 공릉천 친구들 조영권 대표는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지역 토박이다. 조 대표는 “예전에는 노랑부리저어새가 겨울이면 늘 볼 수 있는 철새였는데, 이제는 겨우 한 마리에 반가워해야 할 정도가 됐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조 대표는 철새들이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로 논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지목했다. 그는 "논은 철새들이 쉬고 먹이 활동을 하는 중요한 곳"이라며, "논이 없어지면 우리의 먹거리도 없어지지만, 새나 다양한 생명들의 먹거리도 같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너무 짧고 아쉬웠던 만남을 뒤로 하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꽁꽁 싸맨 인간의 세계로 돌아오는 길. 유아독존처럼 끝을 모르고 확장하기만 하는 인간의 세력에 얼마 남지 않은 쉼터에서마저 쫓겨나고 있는 이들을 생각했다. 쫓겨난 이들은 결국 어디로 가게 될까. 그저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자리를 내어주는 작은 배려가 왜 이토록 어려운지, 무엇이 나와 다른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감각을 자꾸 잊게 만드는지 고민이 깊어지는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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