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광동댐 인근 사면이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 붉은점모시나비의 국내 최대 서식처로 확인됐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국립생태원은 2023년 5월에 받은 지역 주민의 제보를 바탕으로 해당 지역에서 3년간 조사를 진행했으며, 약 2만5000㎡ 넓이의 지역에서 최소 200여 마리의 붉은점모시나비가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뉴스펭귄 취재에 따르면, 해당 지역은 붉은점모시나비가 어느 날 우연히 돌아온 장소가 아니라 이미 10여 년 전부터 민간 연구소가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조성한 멸종위기종 복원 사업의 핵심 현장이었다. 증식과 방사, 생태 조사, 유전적 분석 등 민간 연구소의 다년간의 노력으로 조성된 해당 서식지는 국제 사회로부터 과학적 복원 전략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결과라고도 평가받고 있었다.
해당 지역에서 진행된 복원 사업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이하 연구소)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수행한 붉은점모시나비 복원 프로젝트였다. 연구소는 자체적인 인공 증식을 통해 확보한 붉은점모시나비 총 120쌍(240개체)을 5년에 걸쳐 삼척 광동댐 주변에 단계적으로 방사했고, 이후 개체군의 정착과 번식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적인 방식의 모니터링도 실시했다.
방사 후 2년이 지난 2017년 6월 같은 장소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는 총 235개체(수컷 140개체, 암컷 95개체)가 확인됐으며, 이 가운데에는 야생에서 태어난 개체들도 다수 포함돼 자연 번식이 이루어지고 있음도 확인됐다.
아울러 당초 방사된 붉은점모시나비들이 유전적으로도 건강한 개체군을 이루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분석을 진행한 결과, 7가지 유전 지점을 기준으로 분석한 유전적 다양성 지표(이형질성, He)가 0.99761로 나타났다. 이는 분석 대상의 거의 모든 개체가 서로 유전자가 다르다는 의미로, 자연 개체군에 버금가는 높은 유전적 다양성을 보여준 셈이다.
해당 복원 사업의 성과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 2021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발간한 보고서 '글로벌 생물 종 보존 이주 전망(Global Reintroductions Perspectives) 2021'에 국내 프로젝트로서는 최초로 복원 사례가 소개된 것이다.
IUCN 보고서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의 해당 복원 프로젝트가 민간 연구소와 정부 기관이 협력해 수행한 과학적 복원 사례로, 개체군의 생존률과 유전적 안정성 면에서 매우 성공적이라며 '매우 성공적인(highly successful)' 복원 등급으로 평가했다. 이는 IUCN이 보고서에서 평가한 복원 성공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69개 복원 사례 중 19건(24%)만이 받은 등급이다.
복원 활동은 당시 원주지방환경청, 강원도, 삼척시 등 관계 기관이 공식적으로 참여한 프로젝트로 진행됐으며, 방사 당시 관련 보도자료와 언론 보도가 다수 확인됐다. 연구소는 2017년 모니터링 수행 후 원주지방환경청에 제출하는 보고서에서 해당 지역을 붉은점모시나비가 출현하는 시기에 맞춰 생태 관광의 재료로 사용할 것을 삼척시에 권유하기도 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의 이강운 소장은 “삼척 광동댐 일대의 붉은점모시나비들은 '자연적으로 돌아온 희귀종'이 아니라, 오랜 복원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생태적 성과”라며 “국제 학술 보고서에 국내 최초로 등재될 만큼 매우 성공적이었던 과학적 복원 사례가 단순 ‘운 좋은 발견’으로 치부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랑나비과에 속하는 붉은점모시나비는 반투명한 흰색 날개에 원형의 붉은색 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비'로 꼽히기도 한다. 과거에는 한반도 전역에서 볼 수 있었지만 서식지 파괴와 불법 포획 등으로 개체수가 급감해 201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 2018년엔 1급으로 상향됐다. 기후변화에 민감한 한지성 곤충(고산 지역이나 추운 환경에서 서식하는 곤충)이기도 한 붉은점모시나비는 현재 삼척시와 경기 연천군, 경북 의성군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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