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지친 시민들에게 시원한 쉼터가 되어주는 청계천에 우리나라 대표 민물고기 '쉬리'가 나타났다. 쉬리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전문가들은 청계천 여울이 나름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근거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청계천 복원 2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과학관과 서울시설공단이 청계천의 어류상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실시한 어류 조사에서 뜻밖에 귀한 우리나라 고유종 민물고기 쉬리가 발견됐다.
이번에 쉬리는 청계광장과 모전교 인근부터 중랑천과 만나는 합수부까지 어류 조사를 진행한 여섯 개 지점 중 두 번째 지점인 관수교 근처에서 4~5마리가 포착됐다.
사실 쉬리가 청계천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9년도와 2022년도에 진행된 청계천 어류 모니터링에서도 쉬리 관찰 기록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성체 한 마리가 겨우 포착됐을 뿐이어서 전문가들은 쉬리가 누군가 몰래 방류한 개체이며, 무단 방생된 다른 열대어들의 사례처럼 금방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올해 같은 장소에서 성체 4~5마리가 발견되면서, 쉬리들이 어디서 왔는지와 관계 없이 적어도 청계천이 쉬리가 정착해 살 수 있는 생태 공간이 되었다는 점은 보다 확실해졌다는 평가다.
쉬리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다. 이완옥 민물고기 박사는 "청계천의 하류인 중랑천 상류와 한강 본류에는 쉬리가 살지 않아 밑에서 올라왔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계천도 지하수를 끌어온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 유입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립중앙과학관의 홍양기 박사는 "2016년 이전에는 확실히 한강, 중랑천에서 청계천으로 민물고기가 올라오기 어려웠는데, 보를 허물면서 지금은 상시적으로 올라올 수 있는 환경이 됐다"며, "쉬리가 100% 자연적으로 청계천에 들어왔다고도, 100% 누군가 인위적으로 방류했다고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뭣이 중헌디... 쉬리야 그냥 같이 잘 살자
쉬리가 어떻게 청계천에 들어오게 됐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전문가들은 청계천이 확실히 쉬리가 살아갈 수 있는 생태적 공간이 되었다는 데에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홍양기 박사는 "6년 전 청계천 조사 기록에서도 쉬리가 나온 기록이 있다"며, "6년이 지난 현재에도 쉬리가 계속해서 청계천 여울에서 관찰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청계천 여울이 건강하게 잘 유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복원 공사가 완료된 20년 전과 비교해서 어류 종수가 많이 늘어났고, 각종 치어들도 안정적으로 확인이 되는 만큼, 도심 한복판 하천에서 자연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완옥 박사 역시 "이번 한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조사에서 쉬리가 관찰되고 있는 만큼, 청계천이 안정화되면서 쉬리가 살만 한 공간으로 바뀐 것은 맞는 것 같다"며, "쉬리가 정말 정착해 잘 살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선, 앞으로 성체가 아닌 새끼들이 관찰되는지를 잘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아울러 "신기한 점은 쉬리와 같은 우리나라 고유종인 참갈겨니가 아우점종(우점종 다음으로 우점도가 높은 종)으로 나온다는 것"이라며, "청계천 같은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던 참갈겨니가 적응을 잘 했다면 쉬리도 잘 적응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밝혔다.
1990년대 영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민물고기 쉬리는 오로지 한반도에서만 서식하는, 아주 상징적인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긴 하지만 한강, 금강, 낙동강과 같은 큰 하천의 여울부에서만 살고 있기 때문에 서식지 자체는 적다고 할 수 있다.
이완옥 박사에 따르면 쉬리는 유속이 빠른 여울에 살기 때문에 물이 흐르지 않으면 무조건 살 수 없다. 실제로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유수(流水) 공간이 정수(停水) 공간으로 바뀌면서 여주 같은 지역에선 쉬리들이 더 이상 살지 않게 된 상태다.
또한 쉬리는 수온과 수질 변화에도 예민한 어종으로 알려졌다. 속이 잘 보이지 않는 혼탁한 물이나, 수온이 너무 높은 물에서는 살지 못한다.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있진 않지만, 서식지가 적고 환경 변화에 민감한 종인 만큼 관심과 보호가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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