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멸종위기 고래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화물선 충돌, 그런데 전 세계 선박들의 항로가 멸종위기 고래들의 이동 범위와 대부분 겹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컨테이너 화물선은 성체 대왕고래 몸길이의 10배 이상이 될 만큼 크다(대형 유조선의 경우 이보다 훨씬 크다). 고층 빌딩 크기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선박과의 충돌은 고래에게 마치 지상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처럼 치명적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적에서 선박 충돌로 죽는 고래는 2만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같은 추산이 실제로 발생하는 사고 건수의 일부분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워싱턴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 연구진은 전 세계에 분포한 대왕고래,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향유고래의 서식지를 지도화해 화물선과의 충돌 위험을 평가했다.
이들은 정부 조사, 공공 목격 정보, 태깅 연구, 과거 포경선의 항해 기록 등을 종합해 멸종위기 고래 네 종의 서식 활동 등을 추적하고 이를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추적된 17만6000척의 화물선 항로와 함께 분석했다.
연구진은 전 세계 선박 항로가 멸종위기에 놓인 이들 고래의 이동 범위 중 92%와 겹친다는 것을 밝혀냈다. 선박 항로가 고래의 이동 경로와 사실상 대부분 겹치면서 선박과 고래의 충돌 가능성이 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의 추정에 다르면 전 세계 대형 선박은 고래의 서식 범위 내에서 매년 지구와 달의 왕복 거리의 4600배 이상을 오고 간다. 상대적으로 좁은 긴수염고래의 서식 반경 안에서만도 달과 지구 사이 거리의 2600배 이상의 선박 이동 거리가 기록됐다.
현재 명목상으로나마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구역은 전체 바다 면적의 약 1.2%, 연구진은 확인된 충돌 위험 지역을 전부 보호하기 위해선 전 세계 해양의 2.6%를 추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무역이 성장함에 따라 고래와 선박의 충돌 문제가 향후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 충돌 고위험 지역 중 겨우 7%만이 선박 충돌로부터 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고래와 선박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의무적인 조치가 대왕고래 서식지의 0.54%, 혹등고래 서식지의 0.27%에만 적용되고 있으며, 긴수염고래와 향유고래의 서식지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한 북미 태평양 연안, 파나마, 지중해 등 이미 알려진 충돌 위험 지역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 연안, 브라질, 칠레, 페루, 에콰도르 연안, 아조레스 제도, 동아시아 등 충돌 위험이 높은 지역들을 새롭게 밝혀냈다. 동아시아 지역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바다가 포함된다.
연구를 이끈 캘리포니아 대학교 베니오프 해양과학연구소(Benioff Ocean Science Laboratory) 과학자 레이첼 로즈(Rachel Rhodes)는 “해당 지역들은 고래가 조용히 죽임을 당할 수 있는 광대한 해역”이라면서, “(이 지역에서 일어난 보고되지 않은 사고들이)일부 멸종위기 고래 개체군의 회복이 낙관적이지 않은 은밀한 이유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고래 선박 충돌을 막기 위한 이니셔티브 '웨일 세이프(Whale Safe)'에서는 선박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9년 시작된 이니셔티브는 고래의 위치를 추적하고 선박이 저속 항구 지침을 준수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해 선박과 고래의 충돌률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네이처 컨서번시(Nature Conservancy) 캘리포니아 지부 해양 과학 디렉터 조노 윌슨(Jono Wilson)은 “선박 충돌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지역적 차원의 선박 감속 프로그램은 효과를 이미 입증했다”며, “이러한 프로그램을 확대하려면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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