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늘어난 국경 장벽이 스라소니, 들소, 늑대, 사슴, 치타, 영양, 올빼미와 같은 다양한 야생동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Sky Island Alliance / Wildlands Network)/뉴스펭귄
최근 늘어난 국경 장벽이 스라소니, 들소, 늑대, 사슴, 치타, 영양, 올빼미와 같은 다양한 야생동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Sky Island Alliance / Wildlands Network)/뉴스펭귄

[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최근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국경 장벽이 스라소니, 들소, 늑대, 사슴, 치타, 영양, 올빼미와 같은 다양한 야생동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폴란드 과학원 포유류연구소(Mammal Research Institute of the Polish Academy of Sciences)의 카타지나 노박(Katarzyna Nowak) 박사팀은 유럽 최대 원시림으로 꼽히는 비아워비에자 숲(Białowieża Forest)에 설치된 국경 장벽이 스라소니를 포함한 대형 포유류 개체군에 끼치는 영향을 장기간 추적한 결과를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비아워비에자 숲은 폴란드와 벨라루스에 걸친 고대 숲으로, 한때 약 1420㎢에 걸쳐 스라소니들이 자유롭게 오가던 생태의 보고였다. 

그러나 2022년, 폴란드는 유럽연합 국경을 넘으려는 난민과 이주민을 막기 위해 국경을 따라 길이 186km, 높이 5.5m의 장벽을 세웠다. 철조망과 감시카메라까지 설치된 이 장벽은 숲을 두 동강 냈고, 약 15마리의 스라소니가 폴란드 측에 고립됐다. 유전적 다양성이 급격히 떨어지며 ‘멸종의 소용돌이(extinction vortex)’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벽은 스라소니뿐 아니라 들소, 늑대, 사슴 등 다양한 포유류의 이동 경로를 끊었다. 연구팀은 국경 10곳을 따라 1년 이상 카메라 36대를 설치하고 사람과 동물의 흔적을 추적했지만, 스라소니는 단 두 번만 포착됐다. 반면, 차량 소리, 음악, 개 짖는 소리, 총성 등 인간 활동의 흔적은 장벽에서 최대 250m 안쪽까지 침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보호 지역이다.

장벽은 스라소니, 들소, 늑대, 사슴 등 다양한 포유류의 이동 경로를 끊었다. (사진 Sky Island Alliance / Wildlands Network))/뉴스펭귄
장벽은 스라소니, 들소, 늑대, 사슴 등 다양한 포유류의 이동 경로를 끊었다. (사진 Sky Island Alliance / Wildlands Network))/뉴스펭귄

국경을 따라 늘어선 쓰레기와 음식물은 들개와 고양이 같은 가축들을 불러들이며, 야생동물과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장벽 주변 햇볕이 드는 개활지에는 외래 식물이 번식하는 조짐도 포착됐다. 노박 박사는 “이 장벽은 단지 물리적 경계일 뿐 아니라, 생태계 전반을 비자연적으로 재편하는 새로운 경계선”이라며, "이대로라면 숲이 생물학적으로 두 개의 독립된 공간으로 분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비아워비에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국경 장벽은 디나릭 산맥을 관통하며 유럽 최대의 불곰과 늑대 개체군을 양분시켰고, 스라소니는 근친교배가 진행되며 유전적 취약성이 심각해졌다. 약 4800km에 달하는 중국-몽골 국경 철조망은 아시아당나귀의 이동을 완전히 차단했다.

단일 장벽 가운데 가장 심각한 피해를 유발한 사례는 미국-멕시코 국경이다. 이곳의 장벽은 1,100km 이상에 달하며, 120종의 포유류 서식지를 절단했다. 피그미올빼미는 장벽을 넘지 못하고 고립됐고, 퓨마와 긴꼬리미국너구리붙이의 개체수는 급감했다. 유전적으로 고립된 큰뿔야생양은 ‘좀비 종(zombie species)’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국제조류보전단체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BirdLife International)의 스튜어트 버처트(Stuart Butchart) 박사도 최근 기후위기와 결합한 야생동물 이동 차단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국경 장벽이 전 세계 700종 이상의 포유류 이동을 막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유전적 고립, 개체군 분열, 기후 적응력 상실 등의 연쇄 반응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튜어트 박사에 따르면 특히 사이가영양, 치타, 호랑이, 표범 등 이미 심각한 멸종위기 상태에 놓인 종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스튜어트 박사에 따르면 특히 사이가영양, 치타, 호랑이, 표범 등 이미 심각한 멸종위기 상태에 놓인 종들도 국경 장벽의 영향을 받고 있다. (사진 Sky Island Alliance / Wildlands Network)/뉴스펭귄
스튜어트 박사에 따르면 특히 사이가영양, 치타, 호랑이, 표범 등 이미 심각한 멸종위기 상태에 놓인 종들도 국경 장벽의 영향을 받고 있다. (사진 Sky Island Alliance / Wildlands Network)/뉴스펭귄

아울러 야생동물에게 치명적인 장벽은 지금도 지구 곳곳에 빠르게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현재 전 세계에 세워진 국경 장벽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보다 10배가량 늘었다. 또한 추가 건설을 앞둔 국경들이 있어 장벽의 수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장벽에 난 '틈'이 야생동물들에게는 숨통을 터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환경단체 ‘스카이 아일랜드 연합(Sky Islands Alliance)’은 장벽 구간 중 약 130km 구간에 설치된 A4 용지 크기의 구멍 13곳을 1만 2천여 건의 영상을 통해 분석한 결과, 코요테, 페커리, 아메리카오소리, 퓨마 등 야생동물이 이 작은 구멍을 통해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에이먼 해리티(Eamon Harrity) 연구원은 “이 작은 틈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활용되고 있다”며, “최소 500미터마다 이런 통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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