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지구의 나이는 46억 살,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한 것은 겨우 30만 년 전이다.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표시하면, 인간은 23시 59분 55초 쯤 등장한 셈이다. 인간의 역사가 장구한 것 같지만 이제 5초 쯤 흘렀을 뿐, 지구는 인간이 없는 세상이 훨씬 더 익숙하다.
인간이 없던 때 지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공룡이 이 땅의 주인이던 시절, 지구의 하늘은 어땠을까. 사랑하는 이의 과거가 궁금하듯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과거가 궁금하다.
과학 도서 <찬란한 멸종>은 인간이 태생하기 전 지구를 생생히 그린다. 고대 포유류가 번성하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처음 출현한 신생대를 거슬러 올라가, 공룡이 지배하던 중생대와 나무와 산호가 처음 생겨나고 절지동물과 무척추동물이 번성했던 고생대, 다세포 생물과 진핵생물이 등장했던 원생누대와 고원핵 생물이 나타난 시생누대, 그리고 우리 지구의 어린 시절인 명왕누대까지. 저자인 이정모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과학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진정 장구한 역사를 지내온 낯선 지구의 모습 앞으로 독자를 이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치 오랫동안 장대한 대서사시 속 이세계에 푹 빠졌다가 나온 것처럼 깊은 여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찬란한 멸종>에서 화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다. 인간이 멸종한 미래 시대에 살아남은 인공지능으로부터 시작해 현대의 우리에게 익숙한 멸종위기종 범고래, 과거 여러 이유로 세상에서 사라진 털매머드, 공룡, 삼엽충 더 올라가 생명 탄생의 기원인 미토콘드리아까지 모두 각 챕터의 주인공으로서 독자를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화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이런 구조를 언뜻 보면 저자가 극단적 인간 중심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현대 생태 철학의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도리어 책에서 본인의 인간 중심적 사고를 드러내는 데 부끄럼이 없다.
"그건 너무 인간 중심의 생각 아니냐고요? 아니, 인간이 인간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요? 우리가 들국화, 달팽이, 지렁이, 풍뎅이, 직박구리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는 없잖아요. 인간 중심의 사고도 필요합니다. 본 것에 대해 생각하고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는 생명체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뿐이니까요."
다시 오해의 시간. 그렇다면 인류가 잘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저자는 이미 시작된 여섯 번째 대멸종에 인류라는 종이 전례 없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야말로 전적인 책임이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서식지 파괴, 남획, 환경 오염, 인간에 의한 침입종 유입 그리고 인위적인 기후변화까지 생물다양성을 철저히 파괴한 인류의 죄목을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한다.
<찬란한 멸종>의 목적은 오직 하나. 지구의 자연사, 특히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통해 지금의 위기를 바라보고 극복해내자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인류의 번영을 위해, 인류와 함께할 지구를 위해.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감소 문제 앞에 늘 우울하고 무기력함을 느끼는 독자라면 털보 관장의 신나고 유쾌한 이야기에 한번 빠져들어보면 어떨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뉴스펭귄에 후원으로 힘을 실어주세요.
- [펭귄의 서재] 흙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 [펭귄의 서재] 한 플로리스트의 계절 환대법
- [펭귄의 서재] 교실에서 열린 기후소송?
- [펭귄의 서재] 뇌과학자가 밝혀낸 자연의 비밀
- [펭귄의 서재] 오늘의 날씨는 상상이 될까?
- [펭귄의 서재] 횟집 수조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 [펭귄의 서재] 늪에서 배우는 놀라운 생명의 언어
- [펭귄의 서재] '기후위기 식탁'에서 살아남는 방법
- [펭귄의 서재] "누군가 하겠지"의 '누군가'가 되기로
- [펭귄의 서재] 염치없는 한 시인의 저작권
- [펭귄의 서재] 기후 우울증 환자 주목!
- [펭귄의 서재] 그때도 지구는 녹고 있었다
- [펭귄의 서재] 감정은 인간과 동물의 공통어
- [펭귄의 서재] 코앞에서 시작하는 순환하는 삶
- [펭귄의 서재] 딸과 아빠가 들려주는 화장품 뒷이야기
- [펭귄의 서재]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식물의 세계
- [펭귄의 서재]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운 ‘자연’을 찾아서
- [펭귄의 서재] 동물도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면
- [펭귄의 서재] 과학이 아닌 철학이 필요한 때
- [펭귄의 서재] 그거 알아요? 새는 공룡이에요
- [펭귄의 서재] 상처가 만든 구멍, 41마리 생명을 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