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대한 불안감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기후불안(Climate Anxiety)'이라는 용어가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해외 연구들은 주로 젊은 세대, 여성, 진보 성향 사람들이 기후불안을 심하게 겪는다고 분석해왔다. 하지만 국내 통계를 살펴보면 이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영국 기후단체 카본브리프와 독일 라이프치히대학 연구 등에 따르면, 청년층과 여성,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을 가진 집단이 기후불안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라이프치히 연구팀은 27개국 18세 이상 성인 17만747명을 대상으로 한 기후불안 증상 관련 연구 94건을 분석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여론조사의 모집단 수가 1,000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규모의 연구가 진행됐던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경향신문 등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됐다.

기후불안, 우리나라는 중년, 남성, 보수층이 더 많이 느낀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한국인의 기후불안 수준 및 특성>에 따르면 여성보다 남성이, 진보 성향보다 보수 성향 시민이 기후불안을 더 많이 느끼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하지만 국내 통계청 조사는 이와 다른 결과를 보인다. 통계청 2024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기후변화 불안도는 나이가 많을수록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청년층’으로 일컬어지는 10대(46.4%), 20대(49.8%), 30대(54.5%) 보다 40대(57%)와 50대(58%)에서 더 높다. 60세 이상(50.3%)도 20대보다 높은 불안도를 보였다. 이 조사는 ‘기후 변화(폭염, 홍수 등)에 어느 정도 불안을 느끼느냐’는 문항에 '약간 불안하다'와 ‘매우 불안하다’로 응답한 비율을 연령별로 분석한 결과로, 해외 연구와 상충되는 결과를 보였다.

통계청 사회통계기획과 주무관은 "사회조사는 표본 규모가 약 35,000명으로 충분히 크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남성이 여성보다, 보수층이 진보층보다 기후불안 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서도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기후불안을 측정하는 국제 표준 척도인 CCAS(Climate Change Anxiety Scale)를 활용한 연구 '한국인의 기후불안 수준 및 특성'에 따르면, 여성(1.81점)보다 남성(1.98점)이, 진보 성향(1.82점)보다 보수 성향(2.05)의 응답자가 기후불안을 더 많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 전체의 기후불안 평균 점수는 5점 만점에 1.90점이었다. 

연구진은 측정 방식의 차이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20대는 '기후변화에 대해 불안한가'라는 단편적 문항으로 측정했을 때 다른 연령대보다 불안이 낮게 나타났지만, CCAS 척도로 측정하면 가장 높은 불안 수준을 보였다고 한다. 기성세대가 '걱정된다', '불안하다'는 비교적 약한 감정으로 표현하는 반면, 젊은 세대는 기후변화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불안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단편적 질문만으로는 젊은 세대가 기후변화에 무관심한 것처럼 잘못 평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문항 변경 후 불안도 급격히 하락

한편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기후변화 불안도가 2018년부터 직전 조사 대비 13.5%가 하락해 눈길을 끈다. 기후변화 불안도는 2008년부터 2년 단위로 조사되어 2008년 65.6%, 2010년 66.4%, 2012년 62.5%, 2014년 62.9%, 2016년 62.8%의 큰 변화 없는 결과를 보였다. 그런데 2018년에 49.3%로 하락했고, 2020년 45.4%, 2022년 45.9%, 2024년 53.2%로 2016년 이전과 큰 차이를 보인다. 기온 상승과 이상기후현상 등 기후재난이 일상화됐다고 말하는 요즘, 왜 10년 전보다 ‘기후변화 불안도’가 더 낮게 나타날까?

통계청은 2018년 조사부터 항목에서 '지구온난화'라는 단어를 삭제했다. (사진 통계청 사회통계기획과 제공)
통계청은 2018년 조사부터 항목에서 '지구온난화'라는 단어를 삭제했다. (사진 통계청 사회통계기획과 제공)

통계청은 2018년 조사부터 문항 내용을 기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폭염, 홍수 등)'에서 '기후변화(폭염, 홍수 등)'로 변경했다. 담당 주무관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동어반복이라는 전문가회의 결과에 따른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항 변경이 응답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분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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