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비워져 있는데 앉으면 안 되나요?”

‘임산부석에 앉으면 안 되냐’는 종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질문 중 하나다. ‘아무도 안 앉는 것 같은데 좀 앉으면 안 되나?’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초기이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임산부임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를 위해 임산부 배려석은 되도록 비워두는 것이 좋다. 임산부석에 대한 논란은 임산부와 육아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는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청년·여성들의 암울한 전망으로 이어진다.

최근 한 의사 커뮤니티에 수술복 차림으로 임산부 석에 앉은 의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올라와 논란을 불렀다. 이 사진은 온라인에 퍼지며 “의사 망신이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마저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없다” 등의 비판을 샀다. 해당 커뮤니티는 의사면허증 등으로 인증을 거쳐야 가입이 가능한 곳이다. 이후 사진 속 의사가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병원 홈페이지가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임산부 석에 앉은 사진을 자랑스레 의사 커뮤니티에 올린 의사가 논란을 불렀다. 티 나지 않는 임산부 등을 위해 임산부 석은 가능하면 비워두는 것이 좋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클립아트코리아) 
임산부 석에 앉은 사진을 자랑스레 의사 커뮤니티에 올린 의사가 논란을 불렀다. 티 나지 않는 임산부 등을 위해 임산부 석은 가능하면 비워두는 것이 좋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클립아트코리아) 

‘아이 낳으라’면서…임산부-육아에 대한 존중 없는 사회 분위기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는 미국 석학의 비명을 부른 한국의 초저출산율. 2022년부터 내리 0.7명대에 머무르다 올해 1분기 0.82명, 2분기는 0.76명으로 약간 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평생 일-가정 양립을 연구해 온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 교수의 한국 ‘초저출산’의 이유로 지나치게 긴 노동 시간을 꼽고 있다. 육아를 위한 노동 정책이 확립되지 않은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려면 누군가는 경력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워킹맘·워킹대디가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기업이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현장에서의 적용은 요원하다. 이에 더해 임산부와 어린 아이에 대한 기피 현상 역시 존재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육아에 대한 배려 없이 일의 원활한 진행만을 생각하는 기업 문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 했다. 김 교수는 “육아휴직은 권리라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임산부나 아이 등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에는 미래와 희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저출산은 단순 인구 지표가 아니라 청년의 삶과 우리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사회적 과제”라며 저출산 해결을 위한 장기적 비전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한국 완전히 망했다’는 밈(Meme)을 만든 이 인터뷰 당시인 2022년 출산율은 0.78이었으며, 이는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 합계출산율이 0.7대를 찍은 사례였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이 출산율의 늪에 빠진 이유로 긴 노동 문화와 임산부 및 출산에 대한 배려가 없는 기업 문화를 꼽고 있다. (사진 EBS 캡처)
‘한국 완전히 망했다’는 밈(Meme)을 만든 이 인터뷰 당시인 2022년 출산율은 0.78이었으며, 이는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 합계출산율이 0.7대를 찍은 사례였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이 출산율의 늪에 빠진 이유로 긴 노동 문화와 임산부 및 출산에 대한 배려가 없는 기업 문화를 꼽고 있다. (사진 EBS 캡처)

기후 우울-출산 기피 심화…공동체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 뒤집어야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하면서도 전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기업 문화는 청년 세대에게 임신과 육아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안겨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출산율을 저하시킨다는 신호는 여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기후우울(Climate Depression)’이다. 기후우울증이란 기후위기가 자신과 가족·친구·친지를 비롯해 국가와 인류에게도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 아래 불안과 우울감 등을 느끼는 것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고 있는 기후 우울증은 단순히 정서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기후 불안(Climate Anxiety)으로 인해 결혼을 포기하고 자녀를 출산하지 않겠다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16~25세 청년 1만6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2%가 기후 변화가 자신의 미래 계획, 특히 결혼과 출산 결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청년 층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직장 생활을 하며 자녀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진 모(34)씨는 "아기를 낳고 싶지만 몇 년 사이 폭염과 가뭄, 홍수 등 기후 재난이 심각해진 지구에서 살아갈 아이를 생각하면 답답한 기분이다"라고 털어놨다.  몇 년 째 합계출산율 0.7명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기후 우울증은 기후 위기만큼이나 당면한 과제가 됐다.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젊은 층의 비관적인 전망은 출산 기피 현상으로 이어진다. '기후 재난이 심각해진 지구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한 젊은 층의 고민은 저출산 문제의 커다란 키워드 중 하나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젊은 층의 비관적인 전망은 출산 기피 현상으로 이어진다. '기후 재난이 심각해진 지구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한 젊은 층의 고민은 저출산 문제의 커다란 키워드 중 하나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저출산 해결에 현금 쏟아붇기?…임산부-육아에 대한 적극적인 존중 앞서야

만삭의 전모(36)씨는 배가 부른 자신을 보고도 임산부석에서 비켜주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며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임산부와 육아에 대한 존중 없이 출산율은 오를 수 없다.

책 ‘육아포비아를 넘어서’(2025·동아시아·이미지)는 청년들이 아이 키우기 힘들어하는 걸 넘어 ‘무서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나치게 길고 경직된 노동 문화 뿐만 아니라 출산 후 직장에 복귀한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등 육아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게 한 사회문화적 원인에 대해 자세히 분석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 당사자들의 인식을 살피는 것이야말로 모든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랴부랴 현금성 지원과 출산 수당을 챙겨주며 ‘아이 낳으라’고 권하는 정부는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청년 층의 생각에 대해 관심을 조금이라도 기울이고 있을까? 임산부와 육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또 다른 팬데믹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초저출산 해결을 위해선 기후위기 등으로 인한 암울한 전망이 젊은 층을 강타하고 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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