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임병선 기자] 강원도 정선, 삼척 등 동강에서 자생하는 한국 고유종 동강할미꽃은 강한 생명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의한 멸종 위협에 직면했다.
자라나는 꽃이 목을 구부린 할머니를 닮았고, 질때는 할머니 백발처럼 변해서 이름 붙여진 식물 할미꽃, 반면 강원도 정선에는 줄기를 꼿꼿이 펴고 하늘을 바라보는 동강할미꽃이 있다. 동강할미꽃과 할미꽃은 꽃 모양과 자라는 곳에서 큰 차이가 있다.
동강할미꽃은 이름처럼 강원도 정선, 삼척, 태백, 평창을 가로질러 흐르는 동강에 자생한다. 특히 석회암 지대에서만 서식하며 한국에만 있는 고유종이다. 4월 5일 전후 10일 정도 꽃을 피우며, 절벽 틈에서 자라난다.
석회암 절벽에는 양분이 거의 없지만 동강할미꽃은 척박한 절벽의 좁은 틈이나 움푹한 홈에 뿌리를 내리고 자생한다. 때문에 이전에 피웠던 꽃이 마르면 이를 양분 삼아 또다시 꽃을 피우는 특성을 가졌다. 동강할미꽃은 줄기 아래에 묵은 잎을 주렁주렁 매단 생김새가 특징으로 꼽힌다.
동강할미꽃은 1997년 정선 동강에서 한 야생화 사진가가 발견했다. 당시에는 할미꽃으로 분류됐으나, 생김새가 할미꽃과는 달라 연구 필요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식물학자 고 이영노 박사와 이택주 한택식물원장은 2년여간 연구 끝에 동강할미꽃(학명 Pulsatilla Tongkangensis)이라는 신종으로 발표했다.
동강할미꽃은 '동강댐을 막은 꽃'이라는 역사도 가졌다. 1997년 정부가 동강댐 건설을 발표했고, 일부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는 동강 생태 보전을 이유로 동강댐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이때 동강할미꽃은 지역 생태계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쓰였고 2001년 동강댐 계획은 결국 백지화됐다.
현재 동강할미꽃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멸종 위협도를 평가하는 국가적색목록 평가에는 멸종위기 범주에 속하는 취약(VU,Vulnerable)종으로 분류됐다. 동강할미꽃은 척박한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만큼 생명력이 강하지만 일부 사람들의 행위 때문에 멸종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동강할미꽃 자생지 귤암리에서 보전 활동을 펼치는 서덕웅 동강할미꽃보존연구회장은 8일 뉴스펭귄과 인터뷰에서 "출사객들이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묵은 잎을 뜯어내고, 물을 뿌리거나, 벌을 부르기 위해 꿀을 바르는 등 행위가 있다. 자기 작품 가치를 높인다며 촬영 후 꽃을 꺾어버리고, 위쪽 좋은 꽃에 신경 쓰느라 아래쪽 꽃을 짓밟거나 암반을 깨고 뽑아가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마른 꽃을 걷어내면 동강할미꽃은 양분이 부족해 죽게 된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한반도 전역에 남은 동강할미꽃은 1만 개체 이하로 집계됐다. 개체수가 매우 적은 편이지만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되지 않은 이유는 이 식물의 강한 생명력과 관련이 있다.
서 회장은 "동강할미꽃은 개체수가 자꾸 줄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야 하는데, 고 이영노 박사가 예전 환경부 질의에 '동강할미꽃은 머리카락 같은 뿌리 하나만 있어도 다시 살아난다'고 생명력을 강조한다는 말이 화근이 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지 못했다"며 "개체수를 다시 조사하고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체수 현황에 대해서 서 회장은 "(귤암리에서) 2009년, 상류에서 800여 개체 하류에서 200여 개체를 확인했는데, 2020년 혼자 개체수를 세 봤을 때는 상류 200개체 정도만 확인됐다. 올해는 더 많이 멸실된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동강할미꽃 생존 추이에 관해서는 "출사객들에게 시달려 스트레스를 받은 할미꽃 씨앗이 결실을 맺지 못하며, 기후 때문인지 꽃의 상태가 예년과 달리 이상하게 보인다"고 우려했다.
동강할미꽃보존연구회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동강할미꽃 인공 증식, 자연 환경 이식을 추진했으나 실패하고 현재는 훼손을 막는 계도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서 회장은 "그나마도 주민들은 출사를 나온 사람들과 싸우기 지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서 회장은 "동강할미꽃은 찬바람을 이겨내 아름다운 모습으로 봄을 알리고 힘과 용기를 주는 꽃"이라며 야생화는 제 자리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동강할미꽃에 손대지 말 것을 강조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뉴스펭귄에 후원으로 힘을 실어주세요.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마지막 남은 자생지에 살아있는 가는동자꽃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고흥‧여수서 사라지면 절멸, 작고 고귀한 '좀수수치'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다시 날아오를 청주 황새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거제사곡만에 생매장 당할 뻔한 멸종위기종 갯게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골프공보다 작은 숲의 요정, 작은관코박쥐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도심 속 저어새 '핫플', 인천 남동유수지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감돌고기, 대전 유등천이 '최후 결전지'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이름 알리고 사라질 위기’ 양산 꼬리치레도롱뇽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시흥시가 농수로에 설치한 '개구리 사다리'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남북한 오가는 호사비오리, 철새 아닌 텃새 될 수 있을까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사람 손에 아픈 정선 동강할미꽃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경북 하늘 다시 날 수 있을까, 왕은점표범나비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인생은 기러기처럼...' 김포 낱알들녘이 지니는 가치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본 적 없을걸?' 미지의 곤충 지리산 '창언조롱박딱정벌레'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몽골에서 왔어요' 독수리들이 매년 찾는 국내 식당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올해도 와줘요' 오대산에 사는 긴점박이올빼미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고고함 끝판왕 '학' ...인천이랑 어떤 사이?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사송신도시 개발로 서식지 잃은 고리도롱뇽 현주소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영월군에도 장수하늘소가 숨 쉰다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깜찍한 외모에 감춰진 사냥내공, 한국 최상위포식자 '담비'
-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여주 남한강 일대 단양쑥부쟁이 운명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