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성은숙 기자)/뉴스펭귄
(그래픽 성은숙 기자)/뉴스펭귄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뉴스펭귄 성은숙 기자] 이것은 환경덕후의 '제·비(제로웨이스트+비건 지향)'의 쿨하고 힙한 스물 두 편의 사랑 이야기다. 또 이건 약 5년 전 쓰레기 대란과 심각한 미세먼지가 나란히 뉴스를 장식하는 모습을 보고, 친애하는 지구를 위해 '비닐을 안 써볼까?'하며 굴린 작은 눈덩이가 제로웨이스트이자 비건의 삶까지 커져버린 에세이다.

그리고 이건 열 명의 엄격한 제로웨이스터나 비건보다 백 명의 느슨한 '제·비 지향'이 새로 생기는 게 더 나으니,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작고 아무나 할 수 없을 만큼 귀찮은 일들을 함께 하자는 외침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제·비'인 저자는 뭐든 먼저 통과한 선배가 오랜 시간 좌충우돌하면서 체득한 '족보'를 아끼는 후배에게 알려주듯 자신의 지구 사랑법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 모두 친환경 재생지에 콩기름 잉크로 인쇄된 책에 둘러 앉아 저자가 그동안 지구에게 가만가만 보냈던 사랑의 볼륨을 천천히 높여보자.

 

코팅 프라이팬, 헤어질 결심

(사진 pexels)/뉴스펭귄
(사진 pexels)/뉴스펭귄

저자에겐 반려 프라이팬이 있다. 

"프라이팬은 비싼 거 쓸 필요 없이 싼 거 사서 쓰다가 자주 바꾸는 게 최고야"

어느 날 저자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마따나 수명은 짧고, 분리배출도 안되는데다 화학물질까지 얇게 입혀진 코팅 프라이팬과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선택한 인연은 무쇠 프라이팬. 미국 롯지사의 10인치 무쇠 프라이팬이다. 
그렇게 기름과 불을 좋아하고 물과 비눗기를 싫어하는, 무쇠를 길들이기 위한 지루한 날들과 고생이 시작됐다. 무뚝뚝하던 무쇠 프라이팬이 깊고 윤기가 도는 예쁜 모습이 되던 날, 그 무쇠 프라이팬은 저자에게 세상 하나뿐인 프라이팬으로 거듭났다. 

애석하게도 이 무쇠 프라이팬으로 만든 모든 요리가 성공적일 순 없었지만, 코팅 프라이팬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건 분명했다. 더는 종량제 봉투에 프라이팬을 욱여넣어 버리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도 겪지 않아도 되는 건 덤.

저자는 호호 할머니가 되어 더는 무쇠 프라이팬을 들 수 없게 되는 어느 날 요리를 좋아하는 젊은이에게 잘 길들여진 그 프라이팬을 물려줄 멋진 계획을 품고 있다. 

 

미역국: 들깨 앤 감자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자고로 미역국은 기름에 들들 볶은 쇠고기를 잔뜩 넣고 푹 끓여야 제맛인데, 저자는 미역국에서 고기를 퇴출시켰다. 대신 들깨와 감자를 모셨다. 미역에서 우러난 감칠맛과 들깻가루의 고소함 그리고 감자의 포실한 식감은 저자의 입 안에서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뤘다.

처음부터 완벽한 레시피를 생각해낸 건 아니었다. 마음이 가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고기 없는 잡채, 채소로 만든 만두, 육개장 대신 채개장 등 이런저런 음식에서 고기를 빼는 실험을 하는 나날 중 문득 떠오른 키워드가 '들깻가루'였다. 감자는 들깨 칼국수에 감자가 들어가는 것에서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처음엔 스티로폼, 플라스틱으로 포장되지 않은 고기를 사는 게 영 어렵고 귀찮아 시작된 '고기 권태기(고태기)'였을 뿐이었다. 분리배출하지 못해 일반쓰레기로 버려지는 포장재들, 생고기를 다회용기에 담아서 구매하기 어려웠던 나날들, 어느 책 한 권 등이 한 방울 씩 모여 저자의 마음 어딘가를 와르르 무너뜨리고 주르륵 넘쳐흐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저자는 동물성 식품을 얻기 과정에서 발생되는 동물들의 고통과 탄소를 더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제·비(제로웨이스트+비건 지향)'가 됐다.

 

'마음' 비포(before) '착한 소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천 주머니나 가방, 삼베 실로 뜬 수세미, 설거지 비누, 스테인리스 집게, 샴푸바, 설거지 비누, 유기농 비누, 대나무 칫솔, 면 생리대, 아이보리색 매쉬백, 갈색 크라프트지 봉투, 종이 테이프, 옥수수 전분 완충재, 밀랍랩…

제로웨이스트라면 응당 구매해 쓰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아이템들이다. 그런데 이건 어떨까?

화장품 브랜드 로고가 그려진 사은품으로 받은 천 주머니를 쓰는 마음, 여행지 숙소에서 받은 비누를 챙겨와 닳을 때까지 쓰는 마음, 또띠아를 담았던 지퍼 백을 떡국 보관용을 재사용하는 마음, 잼 병에 고춧가루를 담아 쓰는 마음, 낡은 천연수세미를 모아서 화분 그물망으로 쓰는 마음, 실내에서도 내복을 챙겨 입는 마음, 해외산 시설재배 대신 국내산 유기농 제철 식료품을 사려는 마음,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는 마음, 오래된 물건에 다시 정 붙여서 쓰는 마음, 이중포장으로 소분된 제품 대신 한 번 포장된 대용량 제품을 고르는 마음, 뜨거운 음식을 완전히 식히고 냉장고에 넣는 마음, 넷플릭스를 이용할 때 좀 낮은 화질로 시청하는 마음, 국을 10분 끓일 때 3분은 불을 끄고 여열로 뜸 들이는 마음, 뭉텅이로 받은 냅킨을 바로 반납하는 마음, 손수건을 챙기는 마음…

이건 저자가 차마 글에 담지 못한 구질구질했던 마음들이다. 이런 마음들은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진짜' 제로웨이스트다.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 제로웨이스트와 친환경을 팔고 있노라고 어서 사러 오라고 재촉한다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 현명한 이여, 부디 속지 않기를"

 

(그래픽 성은숙 기자)/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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