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옷, 불편한 진실
[뉴스펭귄 손아영] 지난해 10월, 서울에는 한파특보가 내려졌다. 갑작스런 가을 한파에 사람들은 일제히 다운패딩을 집어 들었고, 해당 시기의 다운패딩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98%가 증가했다. 다운(down)은 거위나 오리 같은 조류의 가슴 쪽 가볍고 부드러운 솜털을 뜻하는데, 다른 충전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따뜻하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찾는다. 하지만 다운을 얻기 위해 거위와 오리는 생후 10주 무렵부터 산 채로 털을 뽑혀야 한다. 한 마리 당 2~3년 사이 5번에서 15번까지 털을 뜯긴다. 우리가 입는 옷에 담긴 진실, 불편하지만 알아야 하는 이유다.
가죽, ‘일석이조’라는 착각
사람들은 모피 사용에 대해서는 확실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가죽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대한 편이다. 모피 동물은 오직 털을 얻기 위해 사육되지만 가죽은 축산업과 낙농업의 과정에서 덤으로 얻는 부산물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가죽은 육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아닌, 별개로 존재하는 또 다른 제품이다. 호주에서는 우유를 생산하지 못해 낙농업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수송아지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전문 사육 시설 안에서만 키우는데, 이는 흠 없는 송아지 가죽을 얻기 위함이다. 그렇게, 태어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송아지들은 가죽을 위해 도살된다. 부드럽고 광택이 좋아 고급 소재로 쓰이는 송치 가죽은, 어미 소의 배 속에서 6개월 정도 된 태아 소를 꺼내 만들어진다. 앞선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듯, 송아지 사육은 고기와 우유보다 고급 가죽을 얻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울, ‘지속가능하다’는 오해
양털은 가죽보다도 더 죄책감 없이 입기 좋은 소재다. 모피나 가죽은 동물을 죽여 소재로 만들지만, 양은 스스로 털갈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양털을 깎아 사용하는 것은 인간과 양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생에서 살아가는 양은 추위와 더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털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털갈이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털갈이가 불가능한 양은 울을 생산하기 위해 개량된 품종이다. 그중 하나인 메리노 양은 더 많은 면적의 양모를 얻기 위해 피부를 쭈글쭈글하게 만든 개량 품종인데, 피부 통풍이 잘 되지 않아 구더기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어린 양들은 배설물이 잘 묻는 항문 주위의 피부를 도려내는 뮬싱(Mulsing)의 과정을 거친다. 이는 마취 없이 이루어지며 사후 치료과정도 없다. 또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수확한 양털의 무게로 임금을 받기 때문에 양을 함부로 다루어 털을 깎는 과정에서 양이 다치기도 한다.
캐시미어, ‘척박한 땅’의 주범
부드러운 겨울철 의류 소재로 사랑받는 캐시미어는 염소의 털 중에서도 겨드랑이와 가슴 등에서 나는 가장 부드러운 속 털로 만들어진다. 염소를 키우는 데 최적화된 환경을 갖춘 중국과 몽골에서 세계 캐시미어의 90% 이상이 생산된다. 그중 40% 정도가 몽골에서 생산되는데, 1990년 몽골이 자본주의를 택하면서 정부에서 돈이 되는 캐시미어 산업을 국민들에게 적극 장려했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이 소규모로 해왔던 염소 방목은 이제 몽골의 주요 산업이 됐고, 1999년부터 2019년까지 몽골의 염소 개체 수는 약 2000만 마리 증가했다. 염소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탓에 목초지의 풀을 뿌리까지 뜯어먹었고, 이들의 단단하고 뾰족한 발굽은 목초지를 식물 없이 황폐한 땅으로 만들었다. 이는 곧 봄철 황사를 일으키는 심각한 사막화의 원인이 됐다. 현재 사막화와 토지 황폐화가 진행중인 몽골의 국토는 전체의 76.9%에 이른다.
옷장 속 비명이 멈추는 날을 위해
옷 소재로 활용되는 동물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간의 옷장뿐 아니라 인간의 식탁 위에도 자주 오른다는 것이다. 육식이 너무나 익숙해진 세상에서 그들의 피부를 벗겨내고, 털을 빼앗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 큰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음식 앞에 이들의 죽음이 당연해지지 않는 세상에서는 옷장 속 이들의 고통 또한 당연해지지 않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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