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가 될 수 없는 '비건우유' 새 이름을 찾아서

  • 임병선 기자
  • 2022.02.12 00:00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임병선 기자] 영양 공급과 맛 면에서 우유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두유, 아몬드 음료, 귀리 음료 등을 부르는 명칭에 대해 당국과 업체,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식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인간은 오랫동안 고소한 풍미와 단백질을 갖춘 우유, 소젖을 가공한 음식을 즐겨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축산업에 따른 탄소배출, 동물권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유당불내증(유제품 속 유당을 소화하지 못하는 증세)에 대한 인식도 증가하며 우유 대신 마실 음료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음료 시장에서는 곡물이나 견과류를 이용한 음료 판매량이 크게 늘어났다. 두유, 아몬드 음료, 귀리 음료 등이 대표적 '우유 대체 음료'다. 국내 우유 대체 음료 시장 규모는 2016년 약 83억 원에서 2020년 약 431억 원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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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음료, 귀리 음료 등 홍보자료와 제품설명 등에는 우유 대신 사용하기 좋다는 글귀가 기재돼 있다. 실제 마트나 편의점에 방문해 이런 음료를 찾아보면 우유 코너에 비치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우유가 들어가는 메뉴에 두유와 아몬드 음료, 귀리 음료 등을 우유를 대신하는 옵션으로 제공하고 있다.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경기도 남부에 위치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메뉴판에 귀리 음료 옵션이 '오트 밀크'라고 표기돼 있다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경기도 남부에 위치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메뉴판에 귀리 음료 옵션이 '오트 밀크'라고 표기돼 있다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귀리 음료, 아몬드 음료 등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우유 대신 마시면 좋은 음료로 자연스럽게 자리잡는 가운데, 명칭에 대해서는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쓰이는 통칭은 사실상 잘못된 표기이기 때문이다.

우유 대체 음료는 '비건우유'라는 명칭으로 소비자에게 친숙하다. 국내 검색 시장을 대부분 점유하고 있는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검색어 분석 '데이터랩'을 통해 상대적 검색량 추이를 살펴본 결과 '비건우유(비건밀크)'라는 명칭이 이런 우유 대체 음료를 부르는 통칭으로 쓰이고 있다. 2022년 1월 기준 '비건우유(비건밀크)' 월간 검색량은 식물성 음료, 대체우유, 식물성 대체우유 등 명칭과 비교해 같은 기간 4~33배 많다.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식품유형별 기준규격에서 우유류를 '원유를 살균 또는 멸균처리한 것(원유의 유지방분을 부분 제거한 것 포함)이거나 유지방 성분을 조정한 것 또는 유가공품으로 원유성분과 유사하게 환원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식음료 판매점과 대형마트, 제품 설명 등에서는 우유라는 명칭이 사용되지 않는다. 또 축산협회, 한우협회 등은 이를 근거로 우유 대체 음료에서 '우유'라는 말과, 대체육에서 '육'이나 '고기'라는 이름을 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가 기타 음료를 우유로 착각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부터 식약처는 우유 대체 음료를 통칭하는 말을 규정하는 데 착수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앞서 뉴스펭귄에 '대체육이나 대체 우유는 고기나 우유가 아닌 게 맞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어 우유라는 단어가 빠진 명칭으로 결정될 전망이다.

다만 뉴스펭귄이 자체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 '핑크펭귄폴'에서는 식물성 대체우유라는 명칭이 가장 선호됐다. 이는 많은 소비자가 '우유'라는 명칭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달 10일부터 1달간 197명을 대상으로 한 '두유나 아몬드 음료, 귀리 음료 등을 부르는 통칭이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주제의 설문조사 결과, 식물성 대체우유라는 대답이 응답자 중 42.9%로 나타났다. 뒤를 이어 비건밀크가 22.7%, 대체유가 11.6%, 대체 단백질 음료 8.6%, 우유 대체 음료 6.6%로 나타났다.

명칭 후보는 현재 업계, 언론 등에서 흔히 쓰이는 통칭 중 5가지를 선택지로 담았다. 다만 식물성 음료라는 표기는 음료의 정확한 특성을 담지 못한다는 점에서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사진 본사DB)/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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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유라는 말을 뺀다면 새로운 통칭은 무엇이 돼야 할까.

이 논란에서 답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우유라는 말을 빼는 것이 정책적, 언어적 측면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우유라는 말이 빠지면 단백질 공급 기능을 담당하는 음료라는 특성을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핑크펭귄폴에 참여한 대학생 이 씨(26)는 우유 대체 음료 통칭과 관련해 "핑크펭귄폴 선택지 중 확실한 의미를 전달하는 적절한 명칭이 없는 것 같아 댓글로라도 의견을 제시하고 싶었지만 막상 직접 생각해보니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표적 아몬드 음료인 아몬드브리즈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매일유업은 아몬드브리즈, 어메이징 오트 등 자사 제품을 '식물성 음료'라는 명칭으로 홍보한다. 이는 대표적 귀리 음료 오틀리 측도 마찬가지다. 

반면 같은 제품을 자사 메뉴에 활용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의 경우 아몬드 음료와 귀리 음료 등을 식물성 대체 우유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같은 제품에서 규정에 따라 '우유'라는 명칭을 거두려는 음료 업체와 우유를 대체할 수 있는 음료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카페 업체 간 인식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채식을 한다고 해서 '우유'라는 명칭을 고집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도 있다. 국내 채식단체인 한국채식협회 관계자는 최근 뉴스펭귄과 전화통화에서 "이쪽에서도 명칭에 대해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현재는 적절한 표현이나 명칭이 없어 일반 시민들 이해를 돕기 위해 우유나 고기라는 말이 붙는 것 같다"며 "정해진다면 당연히 따르겠지만 현재로써는 명칭 정립이 안됐으므로 자체적으로도 명칭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글 내에서 쓰이는 명칭 '우유 대체 음료'는 우유에서 기대하는 영양 일부를 섭취하기 위해 먹는 음료로써, 우유처럼 미립자가 액체 중에 분산된 것을 이르는 '콜로이드' 상태 음료를 부르는 말임을 명시한다. 또 우유 대체 음료라는 명칭이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명칭은 아니나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없어 기사 내에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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