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밝다."
빛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지만 늘 좋지만은 않은 '두 얼굴'을 지닌다.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인공조명은 언제부턴가 '공해'로 여겨질 정도다. 빛공해는 야간의 과도한 인공조명이 인간과 생태계에 피해를 주는 현상을 말한다.
지나치게 밝은 빛 아래서 장시간 일하거나 생활하면 빛의 자극으로 몸의 리듬이 깨지고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겨 건강까지 위험해진다. 인간처럼 스스로 불을 끄거나 빛을 차단할 수 없는 생태계는 더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인공조명으로 낮과 밤을 착각한 야생동물은 번식과 이동, 사냥 등 생존 전반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은 이미 빛공해에 많이 노출된 나라다. 2016년 국제 연구진이 위성 사진을 통해 각국의 빛공해 정도를 측정한 결과, 전세계 80%가 빛공해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에서 빛공해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89.4%였고 주요 20개국(G20) 중 이탈리아 다음으로 심각한 빛공해를 겪고 있었다.
이제 '별 헤는 밤'이 낯설어진 건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로 빛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박성원 미래학 박사는 "도시에 불이 꺼진다는 말만 들어도 다들 불안해한다"며 "우리는 도시에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어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도시가 쏘아 올린 빛,
야생까지 퍼지다
세계 주요 야생생물 서식지도 빛공해 영향을 받고 있다. 영국 엑시터대 국제조류센터 연구진은 전세계 중요생물다양성지역(KBAs) 하늘의 75%가 인공조명의 영향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이 보호지역은 우리나라에 약 40곳이 있다.
도시를 가득 채운 인공조명이 야생까지 퍼져 나가는 건 빛이 대기를 통해 훨씬 먼 지역까지 확장하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IUCN은 인공조명의 영향이 1% 미만인 하늘을 '맑음'으로 규정하는데, 보호지역의 하늘은 29.5%만 '맑은' 상태다.
빛공해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도 있다. 2020년 IUCN은 유럽햄스터를 멸종 직전 단계인 '위급(CR)종으로 분류했는데, 개체수가 급감한 원인 중 하나로 빛공해를 꼽았다. 도시에 사는 유럽햄스터들이 과도한 불빛에 스트레스를 받아 목숨을 잃는 것이다. IUCN은 현재 추세라면 유럽햄스터가 30년 안에 멸종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여름 밤잠을 깨우는 매미의 울음소리도 빛공해와 관련이 있다. 원래 매미는 햇빛에 반응해 활동하는 '주광성 곤충'으로 밤에는 잘 울지 않았다. 하지만 야간에도 반짝이는 조명이 만든 빛공해와 열대야 현상으로 매미들은 한밤중에도 낮인 줄 알고 우는 것이다.
빛에 갇힌 동물들
목숨까지 잃어
몇몇 야생생물은 깊은 밤 어둠과 함께 생존하도록 진화해 특히 빛공해에 취약하다. 초여름 밤에 달이 뜨면 새끼 바다거북은 반짝이는 빛을 따라 바다로 향하는데, 이때 광고판이나 가로등 조명을 빛으로 착각해 엉뚱한 곳으로 향하다 차에 치이거나 수영장에 빠져 익사한다.
빛에 의존해 짝을 찾는 나방은 인공조명 불빛 주위를 맴돌다가 땅에 떨어지고, 짝을 유인하기 위해 스스로 빛을 내는 반딧불이는 강한 인공조명 불빛에 묻혀 결국 번식에 실패하고 만다. 새도 예외는 아니다. 매년 수백만 마리에 달하는 새들은 불빛에 사로잡혀 이주 경로를 벗어나 구조물에 부딪혀 죽는다.
도시만 문제는 아니다.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야생생물이 인근 리조트에서 발생하는 빛에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20년 덕유산 국립공원의 빛공해를 분석한 김영재 영남대 교수와 성찬용 한밭대 교수는 덕유산리조트 인근의 빛공해가 가장 심하다고 평가했는데,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법정보호종은 삵과 하늘다람쥐 등 15종에 달했다. 이 리조트의 불빛은 가장 번화한 무주읍내만큼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승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원은 "생물들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생존 환경을 선택하는데, 빛공해 영향을 받아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며 "빛공해를 방치하고 넘어간다면 자연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위험한 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어두운 자연 회복하려면
"단색광으로 바꾸고, 조명 시간 줄여야"
홍승대 한국조명디자이너협회 회장은 "어두운 밤을 이상하게 느끼는 우리는 이미 빛에 중독됐다"며 "적어도 도심과 생태계가 맞닿는 하천이나 산에서는 백색광을 자제하고 단색광을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하늘로 퍼지는 상향광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이미 만연해 막기 어렵다"며 "최소한 조명을 켜는 시간이라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년 전 처음 등장한 빛공해는 다른 문제들과 달리 생태계에 서서히 영향을 미쳐 심각성이 간과됐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함께 살아가려면 인간인 우리가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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