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우다영 기자] '인신보호법' 누군가 감옥이나 시설 또는 특정 환경에 부당하게 갇혀 인신의 자유를 제한당하고 있을 때 법원에 석방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형사제도에 따라 체포·구금된 경우가 아니라 위법한 행정처분이나 사인(私人)에 의해 그런 경우에 빠졌을 경우 구제하자는 취지다.
만약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부당하게 갇혀있다'고 주장하며 석방(?)을 요구한다면 이 법을 적용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한 동물권 단체가 코끼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인신보호법을 청원했는데 최근 법원이 기각했다. 이 사연은 동물을 법적인 시선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거리를 남겼다. 최근 국내에서도 동물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의견이 폭넓게 교환되고 있다.
우선 미국 사연부터 보자. 22일 BBC 등에 따르면, 미국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동물권 단체 '비인간권리프로젝트(NRP)'가 동물원 코끼리 5마리의 석방을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은 코끼리들이 지능 높은 동물임을 인정하면서도, "인신보호법은 인간에게만 적용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2023년 NRP는 법원에 코끼리들의 자유를 요구하며 인신보호법(Hebeas Corpus)을 청원했다. 이 단체는 체옌마운틴동물원(CMZ)에서 생활하는 코끼리들이 만성 스트레스와 뇌 손상 등 정형행동(stereotypic behavior)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정형행동은 동물원, 실험실 등 좁은 공간에 사는 동물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타나는 반복행동이다. 단체는 코끼리들이 더 넓은 공간과 적절한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는 인증된 보호소로 옮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동물원 측은 "코끼리들이 충분히 관리와 보호를 받고 있다"고 반박하며, 단체의 소송이 "법적 시스템을 남용하고 있다. 소송으로 후원금을 모으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NRP가 공개한 소송 타임라인에 따르면 2023년 12월 법원은 코끼리들 중 루루와 잠보의 정형행동 영상을 증거로 인정했지만, "인신보호법은 인간에게만 적용된다"며 청원을 기각했다. 이에 NRP는 2024년 1월 대법원에 항소하며, "코끼리들이 현재 동물원 환경에서 벗어나 더 적절한 보호소로 이송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공개 변론을 진행했으나, 올해 1월 NRP 소송을 최종 기각하며, "코끼리는 법적으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판결을 냈다.
대법원 마리아 베르켄코터 판사는 판결문에서 "코끼리들이 지능이 높은 동물임은 인정하지만, 콜로라도주 헌법상 인신보호법은 인간에게만 적용된다"고 명시했다.
"사람이 아니라면...동물은 물건?"
동물의 법적 지위와 생명권에 대한 논의는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져 왔다. 특히 국내 현행법상 동물은 '물건'으로 규정하고 있어 동물단체 등은 이를 꾸준히 지적해 왔고, 지난해 6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동물을 "사람을 제외한 길짐승, 날짐승, 물짐승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사전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동약의 공유 재산"이다.
이렇듯 민법, 형법, 헌법상 모두 동물은 물건으로 규정돼 왔다. "동물이 물건이다"라고 직접 명시하는 조항은 없으나, 민법 제98조에 따르면 물건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정의에 따라 동물은 유체물(물리적 실체)로 간주하고, 민법상 물건으로 취급된다.
즉, 반려동물에 상해를 입히면 형법상 재물손괴죄가 적용된다. 주인에게 학대당하는 동물을 구조할 수 없는 문제도 주인의 '소유물'로 규정돼 있어서다.
또 민사집행법상 반려동물은 압류 대상에 포함된다. 압류 금지 품목에 동물이 없어서다.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조차 예외 없이 압류 대상이다. 이에 지난해 6월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하지 않고, 법적 지위를 개선하기 위한 민법 개정안과 민사집행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민법 개정안은 제98조의 2(동물의 법적지위) 1항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민사집행법 개정안은 제195조 압류가 금지되는 물건으로 동물보호법에 따라 "반려동물 및 그밖에 영리 목적을 위한 보유가 아닌 동물"을 포함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물뿐만이 아닌 자연 모두에 '법인격'을 부여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제주특별법 개정안인 '생태법인' 제도가 국회 발의됐다. 이는 대리인을 통해 권리를 주장하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제주도에 서식하는 고유종이자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가 첫 사례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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