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인간이 개발을 명목으로 빼앗은 동식물들의 보금자리를 원래의 주인들에게 돌려주자는 ‘리와일딩(Rewilding, 재야생화)’ 패러다임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자연을 무조건 그대로 두라는 의미와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때로는 생물다양성 회복을 위해 생태계 피라미드에서 사라진 일부 종을 복원하는 활동이 포함되기도 한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가 시민들에게 리와일딩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사진 이동재 기자)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가 시민들에게 리와일딩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사진 이동재 기자)

이화여자대학교 강의실에서 열린 환경 교육 프로그램 ‘야생학교’에는 리와일딩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이 모여 강의를 듣고 의견을 나눴다.

강사로 나선 생명다양성재단 김산하 대표는 시민들에게 리와일딩 개념을 소개하고, 사라진 늑대를 다시 데려옴으로써 침체된 생태계를 되살린 외국 국립공원 사례도 공유했다.

김산하 대표는 리와일딩을 “훼손된 생태계가 다시 온전해지도록 종의 재도입 혹은 철저한 무개입을 통해 상실 또는 저하됐던 각종 생태계의 원리를 복원하고 인간의 관리와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지난 수천 년간 북미, 남미, 오스트레일리아 등 인류가 이주를 통해 정착한 대륙들에선 수많은 몸집이 큰 대형 동물들이 인간 활동에 의해 멸종됐다.

김산하 대표에 따르면 대형 동물들은 생태계의 공학자라고도 불릴 만큼 생태계에서 중요한 존재다. 단순히 먹이그물 안에서의 기능을 넘어, 주변 생태와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식물의 열매는 너무 크고 단단해서 대형 초식 동물만이 씹어먹고 배설하거나 씨를 뱉어 번식시킬 수 있다. 김 대표는 대형 동물이 존재하는 상태에 적응한 생태계가 대형 동물들의 갑작스러운 멸종으로 인해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며 대형 동물을 중심으로 한 리와일딩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사진 wikipedia)/뉴스펭귄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사진 wikipedia)/뉴스펭귄

대표적인 대형 동물 복원을 통한 리와일딩 사례로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복원 프로젝트가 꼽힌다.

19세기까지 옐로스톤 국립공원 지역에는 불곰, 흑곰, 늑대, 퓨마 등 다양한 대형 동물들이 자유롭게 서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본격적인 목축이 시작되면서 가축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형 동물에 대한 사냥 행위가 본격화됐고, 대다수 대형 동물이 사라지거나 멸종위기에 처하게 됐다.

김 대표에 따르면,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자 먹이사슬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엘크와 코요테 등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들의 먹이 경쟁이 과도해지면서, 가령 엘크의 주식인 식물들이 다 자라기도 전에 전부 뜯기는 등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물들의 사망이 겨울에 몰리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포식자가 먹고 남긴 동물의 시체는 여러 동식물의 먹이가 되면서 영양분을 순환시키는데, 포식자가 없어진 동물들의 시체가 주로 폭설이 내리는 짧은 시기에만 집중돼 생태계 순환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인간이 멸종시킨 대형 포식자를 다시 생태계로 불러오면서였다. 1995년 미국의 생태학자들은 무너진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14마리의 늑대를 방생했다.

1995년 미국의 생태학자들은 무너진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14마리의 늑대를 방생했다. (사진 wikipedia)/뉴스펭귄
1995년 미국의 생태학자들은 무너진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14마리의 늑대를 방생했다. (사진 wikipedia)/뉴스펭귄

약 30여 년이 흐른 지금 늑대의 개체수는 300~350마리로 늘어났다. 늑대가 생태계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으면서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폭발과 붕괴를 반복했던 엘크의 개체수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엘크가 먹이로 삼는 나무 식생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실제로 강변의 버드나무와 사시나무들이 늑대 도입 이전에 비해 현저히 높게 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수변 식생이 회복되면서 댐을 지을 재료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던 비버를 포함해 독수리, 오소리, 여우 등 동물이 돌아온 것도 관찰됐다.

동물들의 시체도 이전처럼 특정 시기에 집중되지 않고 균등하게 분배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이러한 과정을 ‘영양 단계 활생(Trophic cascade rewilding)’이라고 설명했다. 생태계 피라미드에서 사라졌던 계단을 복원한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영양 단계의 다양성이 회복된다는 것은 먹이그물이 더 정교해지고, 복잡해지고, 촘촘해지고, 풍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를 통해 먹이그물이 수직과 수평, 양 방향으로 모두 확장되고, 단계의 수가 늘어나며 매 단계마다 관계의 수와 복잡성이 늘어날 기회가 창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김 대표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리와일딩 성공 사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긴 하지만, 늑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고 핵심적이었다는 사실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리와일딩 문화가 퍼지면서 (야생동물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져 유럽 등지에서도 늑대의 개체수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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