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그리는 노래
[뉴스펭귄 손아영] 여러분은 특정 계절마다 생각나는 노래가 있나요? 비 오는 여름날 창문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듣고픈 노래, 눈 내리는 겨울날 들뜬 마음을 더해주는 노래, 계절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을 주는 다양한 노래가 있죠. 그리고 여기 계절을 노래로 표현하는 기상학자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와있는 여름부터 누군가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겨울까지, 그가 노래하는 날씨는 어떨지 함께 살펴볼까요?
장맛비 쏟아지는 여름날, 빗방울 전주곡
그는 실내에서 장맛비가 쏟아지는 도심 풍경을 바라보는 입장이 되면 프레데리크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듣고 싶다고 하는데요. 쇼팽은 폭풍우에 갇혀 밤늦도록 돌아오지 못한 연인 조르주 상드를 걱정하며 이 피아노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피아노 음으로 띄엄띄엄 수놓은 굵은 빗방울 소리가, 요즘처럼 장맛비가 거센 여름날 우리네의 걱정을 대변하는 듯하죠. 한편 지구가열화는 장맛비의 또 다른 변수이기도 합니다. 해수 온도가 상승해 증발량이 늘어나면 계절풍의 길목에서 더 많은 먹구름이 생겨나 장맛비도 더 거세집니다. 반면 계절풍을 비껴가는 곳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 물 부족 현상이 심해지죠.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 추세가 이어진다면 홍수와 가뭄의 대조가 지역별로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여름날 무더위를 식히며 시원하게 내리는 것 같던 장맛비가 무섭게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지난 시간을 품은 가을, 첼로 소나타 4번
첼로는 두터운 몸집에서 나오는 중후한 음색으로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깁니다. 장 밥티스트 바리에의 '첼로 소나타 4번' 2악장에서는 두 대의 첼로가 서로 우아하게 대화를 나누는데요. 이 음악을 들으며 낙엽 진 숲을 걷다 보면 지난 계절의 풍파를 견뎌온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것 같기도 하죠. 실제로 단풍잎 하나에는 지난 한 해 동안 날씨와 함께 살아온 이파리의 여정이 담겨 나타납니다. 지구가열화로 여름이 길어지고 가을은 점차 짧아지며 나무의 생체 시계는 교란되고 단풍의 색도 둔탁해집니다. 지구가열화는 특히 낮보다는 밤 기온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해 가을에 야간 기온이 덜 떨어지며 단풍도 곱게 물들기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덕분에 나무들은 더위를 피해 점점 북쪽으로 옮겨가고, 산지에서도 점점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추세입니다. 단풍은 식생의 분포에 따라서도 색의 배치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단풍의 향연도 후대 사람들에게는 먼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슬픈 겨울 얼음의 노래, 'My Heart Will Go On'
겨울 바다를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 중 하나는 디카프리오와 윈슬릿의 명장면으로 탄생한 영화 <타이타닉>의 'My Heart Will Go On'입니다. 지구가열화가 진행되며 머지않아 북극해의 얼음이 여름철마다 모두 녹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들려오고 있는데요. 북극해가 녹으면 극지를 오갈 뱃길이 열려 시간과 기름을 모두 줄일 수 있어 경제적이지만, 문제는 해빙이 뱃길을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해빙은 타이타닉 사고의 원인이기도 했죠. 얼음은 햇빛을 차단해 지표가 달구어지는 것을 막습니다. 기온 상승으로 얼음 면적이 줄어들면 대기의 기온이 오를 뿐만 아니라 극지의 얼음층은 더 많이 녹아내리죠. 기온이 임계점을 넘으면 빠른 속도로 극지의 얼음층이 사라져 지구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빙산이 떠다닌다는 수차례의 경고를 무시한 채 속력을 높이고 탑승 좌석을 늘린 대신, 위험에 대비한 구명보트는 턱없이 부족했던 타이타닉호의 비극이 우리가 처한 기후위기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는 듯합니다.
우리의 계절이 슬픈 노래가 되지 않도록
계절의 노래는 우리가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스피커에서 찾지 않아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리쬐는 햇볕에 노래하는 매미의 울음소리, 소복이 쌓인 눈 위를 걷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 노래는 늘 기쁘고 평화롭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거세게 쏟아지는 장맛비의 고음은 온 세상을 뜨겁게 달궈놓은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를, 힘 없이 떨어지는 낙엽의 저음은 자연에 찾아온 슬픈 위기를 노래하는 듯하죠. 앞으로 우리의 연주는 자연에 어떤 노래를 선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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