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꾼보다는 살림꾼이 되고 싶은 양반
[뉴스펭귄 손아영] 여기 인간중심의 세상에서 모든 동물의 해방을 외치는 양반이 있습니다. 바로 밴드 ‘양반들’의 보컬이자 글을 쓰는 작가로 활동 중인 전범선 씨입니다. 그는 인종, 성별, 계급뿐만 아니라 종을 초월해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임꾼보다는 살림꾼으로, 사냥꾼보다는 사랑꾼으로 살고 싶은 그의 진솔한 기록, 함께 살펴볼까요?
물고기 말고 물살이
SNS를 즐겨 찾는 사람이라면 귀여운 동물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특히 ‘반려동물’로 사랑받는 강아지와 고양이는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소나 돼지, 닭이 릴스 영상으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그들은 곧 먹이, ‘고기’로 분류되기 때문이죠. 육식주의적 언어는 인간의 인지부조화를 지탱하기 위해 설계됐습니다.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 말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우리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도축된 동물의 살을 먹자’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물이 식탁 위에 올라오는 과정을 모른 채 하기 위해 소’고기’, 돼지’고기’, 물’고기’처럼 ‘고기’라는 단어를 붙여 죄책감을 덜곤 하죠. 그중 물고기는 이상하게도 인간의 먹이가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로 불릴 수 있는 이름이 없는 종입니다. 살해되는 것이 육상생물에 비해 조금 더 수월한 존재여서일까요? 오늘부터라도 그들을 ‘물살이’(수상생물의 순우리말)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요?
비건이 우유를 먹지 않는 이유
주변에 비건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고기뿐만 아니라 우유나 치즈 등의 유제품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우유를 먹지 않는 이유는 ‘비건’이란 표현의 시초에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영국은 식량 배급제를 실시했는데, 베지테리언으로 등록된 사람들은 고기 대신 우유와 계란을 조금 더 받아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채식주의자이자 비건 소사이어티를 설립한 영국의 동물 권리 옹호자인 ‘도널드 왓슨’은 베지테리언이 우유를 먹는 행태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베지테리언(Vegetarian)의 첫 세 글자와 마지막 두 글자를 합친 ‘비건(Vega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를 소의 사체뿐만 아니라 젖마저 먹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육식을 위해 도축되는 수송아지보다 유제품을 위해 모성 착취와 송아지 살해를 겪은 후 도살되는 소의 고통이 훨씬 더 크다고 봤기 때문이죠.
동물을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
요즘 비건은 글루텐 프리(밀에서 볼 수 있는 단백질 혼합물인 글루텐이 제외된 식품)나 키토(지방 섭취를 늘리고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식단)와 같은 다양한 식습관 중 하나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비건은 취향이기 전에 엄연한 정치사상입니다. 동물권 활동가들이 단순한 캠페인을 벌이는 것 이외에도 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동물 해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죠. 오천만 국민 모두가 당장 비건이 되는 것은 힘들지만, 2%부터 시작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혁은 인구의 2~3.5%가 바뀔 때 발생했습니다. 대한민국은 1919년 삼일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6년 촛불행동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었죠. 다시 말해 100만 명에서 175만 명이 비건이 된다면 희망적인 이야기를 논할 수 있습니다. 영국, 독일 등에서도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비건이 급증하며 전체 인구의 1%를 넘어섰죠. 우리가 조금 더 자주, 꾸준히 비건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채식주의가 새로운 로큰롤
로큰롤은 본래 자유, 사랑, 평화를 위해 노래하는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는 1975년 아내 린다를 만나 채식주의자가 된 후 지금까지 동물권 운동에 몸담고 있고, 인기 팝스타인 빌리 아일리시도 집안 전체가 채식운동을 하고 있죠. 한국에서 동물 해방을 외치고 있는 전범선, 그 또한 채식주의를 새로운 로큰롤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데 이유가 없듯 비건 또한 공존을 위한 당연한 흥얼거림이 되는 시대가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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