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작가의 신기한 중고생활
[뉴스펭귄 손아영] 여기 줍고 고치고 사고팔며 가끔 나누기도 하는 SF작가가 있습니다. 중고생활을 일상화하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환경을 보호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죠. 덕분에 지금도 낡은 물건들에 둘러싸인 채 아주 오래된 습관처럼 일기와 수필 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그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함께 살펴볼까요?
선의가 효율적으로 퍼지기 위한 조건
그의 아버지는 예전부터 물건을 수리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덕분에 집 안에는 주워다 고쳐 쓰고 있는 선풍기만 예닐곱 대에 달하죠. 그중 하나를 중고장터에 팔아봤지만, 요즘같이 저렴한 선풍기가 잘 나오는 시대에 중고 선풍기를 1만 원대에 파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그래서 동네 주민센터에 기증하기로 합니다. 내게 남는 자원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하지만 담당자에게 돌아온 답변은 “새 것이 아니면 기증이 불가하다”는 것.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옆 동네의 주민센터에도 문의를 해본 결과, 놀랍게도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라는 기쁨 섞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기초수급자들에게 기증할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며 그는 생각했습니다. 제도와 절차의 개선 없이는 개인의 선의와 노력만으로 자원을 적절히 분배하고 환경을 지키는 것은 불가하다고 말이죠.
하지 않는 게 좋은 환경보호
하루는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그에게 200원을 입금했습니다. 이벤트 적립금인가 싶어 확인해 보지만, 얼마 전 보낸 중고 서적 10권의 판매가격이었습니다. 대부분 상태가 성치 않아 가격이 그리 책정되긴 했지만 그의 마음에는 쓴맛이 돌았습니다. 그 10권의 책은 원래 가지고 있던 책이 아닌, 러닝 중 발견한 버려진 책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환경을 보호하고 조금의 수고비를 벌고자 했던 괜한 욕심 탓에 수많은 자원이 낭비된 게 안타까웠습니다. 버려진 책을 그냥 두었으면 폐휴지를 수거하시는 분이 잘 가져가거나 전문 업체에서 한꺼번에 처리했을 테니 재활용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굳이 중고서점까지 운송해 버리게 된 것이죠. 그 과정에서 택배 기사도 쓸모없이 무거운 짐을 날랐고, 서점 직원도 못 팔 물건을 확인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게 됐습니다. 상하거나 마음에서 멀어진 책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해 형체를 잃어버리는 일은, 가끔은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그였습니다.
에어컨, 틀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폭염이 덮치기 전 ‘29℃’라는, 나름 버틸 만한 더위 속에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지금이야 선풍기와 아이스팩으로 그럭저럭 버틴다지만, 쓰러질 듯한 폭염이 다가오면 그땐 어떡하지?‘ 전기세가 무서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고민입니다. 특히나 그의 집에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구세대 모델의 에어컨뿐이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냉장/냉동 설비가 4대나 있는 집이라 이미 누진세 폭탄을 맞고 있죠. 엄청난 열을 뿜어내는 냉장고를 에어컨의 추운 바람으로 덮는 아이러니는, 그에게 기후위기를 심화시킨다는 죄책감까지 심어줍니다. 하지만 에어컨을 틀지 않고 더위 속에서 일하느라 일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면, 그것 또한 환경적인 낭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더위는 시간이 지나면 물러가고, 에어컨을 틀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저절로 오고 있다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아끼기에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슬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나의 노력이 이렇다 할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기운이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끼는 날들 속에는 아깝게 버려지는 가치를 발견하는 기쁨과 그렇지 못한 세상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슬픔이 공존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듯, 우리가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이라도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죠. 오늘도 아끼는 날들을 보내고 있을 모두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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