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사라지고 있다
[뉴스펭귄 손아영] 사계절을 누릴 수 있다는 건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질 수 없는 특권입니다. 한국은 그 특권을 누리는 국가 중 하나죠.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을 경우 60년 뒤 한국의 1년 중 절반은 여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기상청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과 같을 경우 여름은 최대 6개월, 겨울은 한 달에 불과한 사계절 변화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생명도 사계절과 함께 사라지고 있죠. 해양쓰레기로 다리를 잃은 새부터 이제는 한국에서 자취를 감춘 쇠똥구리까지,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생명에 대한 기록, 함께 살펴볼까요?
육식이 뜨고 소똥구리는 졌다
소똥구리가 똥을 굴리는 이유는 그 안에 알을 낳고 이를 땅속에 묻어 애벌레를 부화시키기 위함인데요. 이 행위는 사실 생태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소똥에는 소가 섭취한 풀에 붙어 있던 풀씨도 함께 들어있는데, 이 씨앗을 소똥구리가 땅속으로 넣어주니 싹이 트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 되죠. 또 소똥구리 성충이나 애벌레가 소똥을 먹고 난 뒤 누는 똥은 분해가 되어 토양을 기름지게 합니다. 하지만1970~80년대를 거치며 소똥구리는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육류 소비가 증가하던 시기와 절묘하게 겹치죠. 소의 먹이가 풀에서 사료로 바뀌면서 소똥구리가 먹을 똥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육류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단일 품종의 가축을 한정된 공간 안에 잔뜩 모아놔야 했고, 이는 바이러스의 온상이 될 확률을 높였습니다. 결국 이를 예방하기 위해 소에게 항생제가 들어간 사료를 먹이게 된 것입니다. 소량의 항생제도 소똥구리처럼 크기가 작은 생물에게는 매우 치명적이죠.
진짜 청개구리는 인간이다
국내 청개구리는 수원에서 처음 발견되어 ‘수원청개구리’로 불리는데요. 이 토종 청개구리는 슬프게도 현재 800개체가 채 남지 않은 멸종위기 1급 동물입니다. 개구리는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짝짓기를 위해 수컷이 목청껏 노래하고, 암컷이 알을 낳으며 번식하는데요. 이 사이클을 도는 과정에서 크게 두 차례의 개구리 학살이 벌어집니다. 첫 번째는 알을 낳기 위해 본능적으로 안전한 공간으로 이동하는 개구리가 도로를 건너다 로드킬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블랙홀입니다. 과거 농경지에 설치된 배수로는 흙으로 만들어져 수풀이 우거지면서 개구리에게 아주 좋은 서식지가 되어줬습니다. 하지만 배수로가 깊고 폭이 넓은 콘크리트로 바뀌면서 개구리가 한번 빠지면 살아나오기 힘든 죽음의 공간이 된 것입니다. 멸종위기가 만연한 지금, 작은 생명을 짓밟는 인간의 욕심이 진짜 청개구리 심보가 아닐까요?
나의 쓰레기가 칼이 된다면
SNS에서 왼쪽 다리 절반이 잘린 새 한 마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 새의 이름은 ‘댕기물떼새’로, 한국에는 10월 하순부터 찾아와 3월경까지 머무르는 겨울 철새입니다. 그의 다리가 그렇게 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바닷가에 방치돼 있던 폐그물에 걸린 것이 아닐까 유추할 뿐이었죠. 인간이 버린 해양쓰레기로 고통받는 생물은 댕기물떼새뿐만이 아닙니다. 그물에 휘감긴 채 잘록해진 물범, 플라스틱 조각으로 배를 채우다 아사한 어린 알바트로스까지 수많은 생명체가 바다에 켜진 경고등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손을 떠나는 것들의 여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도심의 거리에서부터 계곡, 강가에 버려진 쓰레기는 결국 바다로 유입되기 쉽기 때문이죠.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이 ‘플로깅(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운동)’이라는 경쾌한 생명 살림을 지속하는 이유입니다.
색을 잃어가는 사계절
앞서 이야기한 생물들은 사실 과거에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자연이었습니다. 개굴개굴 울어대는 경쾌한 음색부터 열심히 소똥을 굴리는 성실함까지, 정겹고 당연한 일상이었죠. 하지만 기후위기와 동반된 멸종위기로 사계절과 함께 자연의 색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오늘 아침 마주한 맑은 햇살도, 그 아래 일렁이는 나뭇잎도,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새소리도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퍼지는 계절입니다.
*해당 기사는 도서출판 '블랙피쉬'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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