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달린 여행자의 방황
[뉴스펭귄 손아영] 떼를 지어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그들은 왜 늘 다른 곳으로 떠나는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시원하게 하늘을 나는 새들의 날갯짓을 보면 마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새들에게 이주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생존에 필요한 먹이와 번식을 위해 떠나는 것이죠. 일 년 내내 먹이가 풍족한 곳은 많은 새들과 야생동물의 거처이기도 해서 위험이 큽니다. 그래서 많은 철새가 가장 풍족한 먹이를 필요로 하는 시기인 육추(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키우는 시기)에 먹이 경쟁을 피하기 위해 이주를 택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많은 새들이 이주의 과정에서 생존의 위기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변화 때문이죠.
새들의 눈을 가리는 빛과 전파
새들은 지구 자기장과 빛을 활용해 방향을 찾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현재의 지구에는 셀 수없이 많은 인공 신호들이 자리하고 있죠. 전 세계에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송전선, 기지국, 무선통신으로 발생하는 전파 간섭이 지구 자기장의 신호를 어수선하게 만들면서 새들의 감지기관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길을 잃은 새들이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탈진의 위험도 높아지죠. 또한 도심과 산업개발구역의 심각한 빛 공해는 새들이 별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듭니다. 특히 새들은 절벽이나 나무와 같은 장애물은 잘 인식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인공 장애물은 잘 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빛 반사를 일으키는 유리 건물과 창문은 새들의 충돌사고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가 됐습니다.
새들의 기억을 삭제하는 서식지 파괴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로 인한 서식지 파괴도 새들의 이주를 막는 주요 요인 중 하나입니다. 불안정한 기후변화와 지속적인 개발, 농경지의 확장 등으로 해안선이 달라지고 사막이 넓어지는 등 지형이 바뀌면서 새들의 머릿속에 저장된 지리학적 지도가 바뀌어 길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늘 쉬어가던 장소가 달라지면서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이주 경로와 멀어지게 되고 이주 기간이 길어지면서 먹이 공급에도 차질이 생깁니다. 이는 자연스레 탈진으로 이어지죠. 인간이 아무 곳에나 버리는 쓰레기도 한몫을 하게 됩니다. 낯선 곳의 먹이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새들이 구미가 당기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워 먹게 되면 체내에 쌓인 쓰레기가 소화관을 막거나, 쓰레기로 배를 불렸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기아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죠.
새들을 살리는 작은 친절
일상에서 우리가 새들의 이주를 도울 방법은 다양합니다. 첫 번째는 집 근처에 넓고 단단한 그릇에 물을 담아두는 것입니다. 새들은 유체학적 비행을 위해 깃털을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깨끗한 물로 자주 목욕하고 깃털 고르기도 해야 합니다. 또 새들은 과도한 도시의 불빛에 쉽게 방향을 잃기 때문에 밤에는 야외의 전등과 장식용 조명을 꺼두는 것이 좋습니다. 안전과 보안상의 문제로 불을 모두 끄는 것이 어렵다면 낮은 와트의 전구로 교체하거나 움직임 감지 센서를 달아 새들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원이나 마당에서 식물을 기르는 분들은 화학물질이 든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에게 불청객으로 여겨지는 설치류나 곤충 등은 새들의 이주 과정 중 재충전을 위한 주요 먹이 자원이 되기 때문이죠. 살충제를 쓰지 않는다면 새들이 이들을 잡아먹는 천연살충제가 되어줄 것입니다.
여행이 방황이 되지 않도록
매일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 갑자기 다른 모습이 되어 있다면 어떨 것 같나요? 내가 알던 지름길이 사라지고, 내가 모르던 벽이 생기고, 내가 좋아하던 식당이 사라진다면 정말 당황스럽겠죠. 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떠나던 길이 계절마다 바뀌고 오염돼 방황하게 되죠. 직접 그들의 날개를 꺾는 것만이 앞길을 막는 것은 아닙니다. 힘찬 날갯짓을 할 방향을 잃게 만드는 것도 그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죠.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뉴스펭귄에 후원으로 힘을 실어주세요.
- [펭귄의 서재] 패스트푸드는 왜 자꾸 당길까?
- [펭귄의 서재] 기후'변화’가 기후'위기’가 된 이유
- [펭귄의 서재]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 [펭귄의 서재] 지구의 허파는 아직 숨을 쉬고 있다
- [펭귄의 서재] 멸종위기 동물에게 온 편지
- [펭귄의 서재] 사지 말라 해도 사게 되는 브랜드
- [펭귄의 서재] 사막 위 낙타에게 털이 필요한 이유
- [펭귄의 서재] 나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존재가 아니에요
- [펭귄의 서재] 정말 댐(Damn)인 댐(Dam)
- [펭귄의 서재]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 [펭귄의 서재] 위기에 처한 새를 돕는 3가지 방법
- [펭귄의 서재] 믿었던 토마토의 배신
- [펭귄의 서재] 내가 아는 거라곤 다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 [펭귄의 서재] 알러지 여자와 아토피 남자가 만나면 생기는 일
- [펭귄의 서재] 동물과 인간의 단 한가지 차이점
- [펭귄의 서재]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가짜 뉴스
- [펭귄의 서재] 도구는 장인 탓을 할 수 있다
- [펭귄의 서재] 힐링(healing)을 주었더니 킬링(killing)을 받았다
- [펭귄의 서재] 지구의 조각은 인류세를 알고 있다
- [펭귄의 서재] 그린(Green)으로 그린 속임수
- [펭귄의 서재] '지구 농부'를 아시나요?

